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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파랑새 Feb 07. 2023

꼰대 아빠, 나쁜 아빠

아빠 잔소리는 무죄(?)

중학교 3년을 마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의 겨울방학 프로그램으로 딸과 한 가지 약속을 걸었다. 책 한 권을 읽고 아빠랑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약속 시간은 딸이 제안하기로 했고, 약속을 정했다.


딸은 2곳의 학원을 다니고 있다. 최근에 한 개의 학원 프로그램이 추가됐다. 소위 '사교육' 프로그램이 3개나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딸은 스마트폰과도 매우 열심히 사귀는 중이다. 방문을 닫고 들어가서 자기 만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서 미뤄 짐작하는 것이지만, 가장 열심히 많은 시간을 내어 사귀는 것이 스마트폰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딸은 학기 중에도 새벽 한, 두 시까지 잠을 안 자는 것이 다반사였다. 방학 때는 언제 자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두시는 넘기는 것 같다. 거의 강하게 확신하고 있다. 딸은 스마트폰과 강력한 만남을 하고 있고, 개인 시간의 상당을 스마트폰과 보내고 있다고.


이런 의구심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는 딸이 학원을 다니는 것을 기특하다고 보지 않는다.(물론 진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과 사귀기 위한 최소한의 변명 내지 안전판으로 두는 것으로 보고 있다.(이도 딸이 정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가령 이런 것이다. '공부(여기서는 백 퍼센트 학원 공부이다)하느라 너무 피곤해서 잠시 스마트폰을 하면서 쉬는 거야.' 같은 핑계 말이다.(그냥 나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방학 중인데도 집에서 쉬거나 놀지 않고, 액면 그대로 반나절은 학원을 가는 것으로 보이니, 겉으로(형식적으로)는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딸의 성실한(?) 삶에 대해 아이 엄마는 대견스럽게 여기는 편이다. 나는 사교육을 긍정하는 편은 아니므로, 딸은 학원 가는 것은 엄마랑 의논하고 결정하고 있다. 나는 옆에서 못 마땅해하거나, 가끔 잔소리나 하는 존재로만 여겨진다. 이 부분은 나도 적나라하게 느끼고 있다.




학원 교육 등 아이 교육 문제를 논할 때는 나는 거의 왕따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나는 딸에게 종종 이렇게 말한다.

 

"학원 안 가도 돼. 방학 때는 놀고 쉬는 거야. 가끔 운동이나 하고 책이나 보면 돼. 대학을 꼭 가야 하는 것도 아니야. 대학이 텅텅 빈다니까. 너 좋아하는 것 하면 돼."


그러면 딸은 나를 한심하게 보는 것이다.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 아빠 취급을 한다.(ㅠ) 아이 엄마는 딸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을 의사결정의 우선으로 한다.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하면 밀어주고, 존중하고 믿어주자이다. 아이 엄마도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나 사교육 시스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그런 사회문제 보다도 아이와의 관계를 우선한다. 결국 딸과 아이엄마는 하나로 뭉친다.


나는 이런 아이 엄마의 태도에 살짝 불만을 제기한다. 왜 사회에 대해서 비판의식이 있으면서도, 아이 문제에 대해서는 예외로 가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이의 사교육을 팍팍 밀어주고 있고, 대한민국 사교육을 지탱하는데 기여하는 꼴이 되고 있다.  


이런 나에게 아이 엄마는 몹시 못 마땅해하고 가끔 분기탱천할 때도 있다. "아이의 사기를 꺾고 있고, 심지어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다."라고 핀잔을 준다. 더 디테일하게는 "나의 말버릇(태도)이 문제다."라며, 지적을 한다.


나는 부처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 속에서 '사교육과 아이의 성장이라는 시대의 고민'을 이야기하면, 아이 엄마는 꼴락, 손가락 '손톱이 길었다'라고 지적질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아이 교육에서는 딸과 아이엄마에게 '연전연패'이다. 숫자 싸움에서 늘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하여, 궁리했다. 딸과 단판을 했다.('단판'도 나의 주관적 생각이다)


"딸, 다 좋다. 학원을 가든 알아서 해라. 다만 아빠랑 책은 한 권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자. 시간은 네가 정하도록 해라."


딸이 어떤 연유에서 인지, 흔쾌히 동의했다.('흔쾌히'도 나의 주관적 생각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 읽기' 약속이었다.  


딸은 조지오웰의 <1984>를 선택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딸이 인터넷으로 그 책을 주문했고, 나는 그것을 보면서 책 읽기 약속을 제안했다. 딸이 책을 읽는 시간은 일주일 정도 걸리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나는 속으로 '과연 그 시간에 읽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약속 일정이 다가오니까 연기를 요청했다.


역시, 딸은 스마트폰과 맹렬히 사귀고 있었던 것이다. 연기된 일정이 바로 오늘 2023년 1월 7일(화) 저녁 8시였다. 역시 딸은 이날도 약속을 배신(!)했다. 이에 나는 딸이 아빠와 약속을 가볍게(소홀하게) 여긴다고 간주했다.  마침 아이엄마도 옆에 있었다.


딸을 소환(?)하여, 근엄한 척 폼을 좀 잡고, 품위 있게(!) 잔소리를 시작했다. 약속을 두 번이나 어긴 탓에 딸은 살짝 위축(?)된 듯 보였다. 그 역시도 진짜인지, 모면을 위한 딸의 제스처(?)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오랜만에 승기(?)를 잡았다.  아이엄마도 이날은 웬일인지 아무 말도 않고 지켜보는 모드였다.


나는 일장 연설을 마치고, 아이와 다시 약속을 잡았다. 이번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약속 일정을 제시했다.

 "네가 약속을 두 번이나 어겼으니, 내가 일정을 잡겠다. 이틀을 주겠다. 이틀 후 저녁 8시다."

이렇게 상황이 종료됐다.    


조금 있다가 딸 방을 노크했다. 한 마디 했다. 아까 했던 잔소리 중 다시 강조했다.


"딸, 아빠를 지금처럼 '꼰대아빠'로 만들래. 아니면 (네가 약속을 계속 어겨서) '나쁜 아빠'로 만들래. 그것은 오직 네 선택에 달려 있단다. 나는 '좋은 아빠'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나는 조금 전 잔소리에서 "아빠는 네가 자꾸 약속을 안 지키면 네 삶에 더 개입해서 핸드폰을 압수해서라도 네가 약속을 지키도록 할 마음도 가지고 있다. 결국 아빠가 나쁜 아빠가 되는 것 아니겠어. 지금처럼 가끔 잔소리하는 '꼰대아빠'가 낫지 않아. 선택은 네 몫이야."라고 했었다.


사실상 반 협박(?)이었다. 스마트폰 하고만 사귀려고 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속수무책 마지막 '저지선(바리케이드)' 설치였다.


브런치를 통해 딸과 가끔씩 옥신각신하는 이야기를 쓰면서, 딸과의 약속 프로젝트를 챙겨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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