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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파랑새 Feb 10. 2023

감(?)이 떨어진다.

집에 대해 생각해 보다.


감(甘).     


'가을'하면 여러 생각들,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근사한 단풍, 들판에 무르익은 곡식, 길가에 핀 코스모스 풍경 등.     


가을의 여러 풍경들 중 감나무를 생각해 본다.      


특별히 마당에 서있는 감나무가 근사한 느낌이다. 감나무의 살짝 굽은 느낌도 좋고, 나무의 질감도 좋다. 더 좋은 것은 감나무 잎이다. 엷은 붉은색을 토해내는 홍시의 그 유혹도 좋다. 


마지막 씨 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석과불식(碩果不食)’.  감나무 끝에 매달린 홍시의 가르침이다. 사람도 먹고, 새도 먹고, 다음 생을 위해 남겨 놓는 자연의 이치 혹은 순리.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풍경. 떨어지는 감을 마주치는 것은 ‘우연’이 가져다주는 행운이다. 그렇다고 그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나는 경북 봉화 지인의 집을 가끔 방문한다. 깊은 산골 어느 곳에 위치한 집이다. 그곳에는 작은 기와집이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처럼 꽤나 기풍, 멋이 있다. 집터가 산기슭에 자리 잡은 만큼 그 집은 산세와 어울리고, 그 집 앞마당과 나무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 있다. 산에 집이 있는 풍경이니, 자연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집 앞마당에는 한 그루 감나무가 서있다. 집과 산세와 어우러진 그 감나무가 좋다.       




감(感).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로망이다. 나는 마당에 서있는 한 그루 감나무를 상상해 봤다.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들은 ‘아파트=집’ 일 수 있다. 이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그림과 동경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더 큰 혹은 더 근사한 아파트. ‘00 타워팰리스’ 같은. 딸도 그럴지 모른다.      


나는 산골, 그것도 아주 깊은 산골에서 자랐다. 그래서일까. 아파트를 집으로 인정하는 데는 좀처럼 내키지 않는 마음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심리적 장애(?) 일 수도 있다. 도시에 살고 있고,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 아파트를 집으로 인정하지 않는 묘한 심리적 딜레마이다.      


그런 내가 도시에 와서 정 붙이고, 마음 붙이고 살고 있는 곳이 지금 사는 곳이다. 특히 지금 사는 아파트를 좋아한다. 조금 낡은 아파트이지만 문만 열면 코 앞에서 마주하는 숲과 나무들, 새들 소리. 이 때문에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마음의 장벽을 크게 느끼지 않고 살고 있다. 


이곳에 장점은 또 있다. 소위 '마을' 느낌이 있다. 지인들도 몇 있고, 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어떤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늘 열려 있는 곳이다. 나는 아파트 단지 내 호프집도 좋아한다. 언제든 편하게 갈 수 나만의 ‘펍(Pub)’이다. 아파트이지만, 집으로 타협할 수 있는 나만의 이유들이다.      


그렇게 별 탈 없이 이곳에서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아파트 소유에 대한 욕심이 없지 않지만, 그런대로 별 욕심 없이 살고 있다. 일종의 '안분지족(安分知足)'이다.  

    



한참 부동산 광풍이 불던 때 살던 곳에서 전세기간이 만료되어 이사를 했다. 단지를 떠나지 않고 다른 동으로 이사했다. 부동산 광풍으로 전세가격이 너무 올랐다. 비상식적이었다. 이런 상황이 불편했다.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으로 여기고 적응하고, 때로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나는 집은 주거이고, 주거는 기본권의 범주에서 보편적 권리로 접근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부동산 광풍에 편승하는 한탕주의와 부동산 재테크가 삶의 기술이 된 사회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세태 또한 불편하다. 부동산을 향한 끝없는 대중들의 욕망은 우리 사회의 발전 경로를 왜곡시킨다. 적어도 주거 목적으로 하는 집은 대중들의 욕망으로 채워지는 부동산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감나무가 서있는 근사한 마당이 있는 집은 아니어도, 지금과 같은 아파트라면 소유의 욕심 없이도 그럭저럭 만족하면서 지낼 수 있다. 부동산 광풍과 같은 불편함만 아니라면.


나의 이런 푸념이 누군가에게는 분명, ‘감(感)' 떨어지는 소리일 것이다.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인 2018년 아파트 단지 내 작은 도서관(‘넓은 세상도서관’) 문집에 쓴 시의 일부를 인용해 본다. 당시에 웃고 넘어갔던 시이다. 


미래는 낙관적일까.


‘나는 누구인가?’      


(중략)

나는 2007년에 태어난

하안북초등학교에 다니는 5학년 강나래이다.

나의 꿈은 나무의사, 식물학자이다.

나는 매우 평범한 성격이다.

그리고 싼 걸 좋아한다.

나는 미래에 집을 사고 빚을 지지 않고 살 수 있을지

걱정된다.     


( 이 글은 2021년 넓은 세상도서관 문집에 기고했던 글이다. 일부 보완해서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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