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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Dec 15. 2023

미소상점

프롤로그


 아직은 어스름 푸른 새벽, 휑하던 거리에 조금씩 차들이 늘어나고 인도에 나부끼는 낙엽을 밟는 소리가 점점 많아진다. 저 머다 무슨 생각을 하고 걷고 있는 건지 아니면 하고 있지 않은 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표정하고 목표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이 주변은 신경 쓰지 않은듯 오로지 앞만 보고 바삐 걷는 모습이 마치 컨베인 벨트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라고 그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게 지하철을 향하다 우뚝 멈춰서 가만히 그 사람들을 바라봤다. 가자기 멈춰선 내 어깨를 치고 가는 사람은 미안해 하기는 커녕 왜 길을 막고 있냐는 듯이 얼굴근육을 총 동원해서 나를 쏘아보다 제 갈 길을 간다.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걸림돌 같은 사람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과연 이 사람들과 같았던 걸까 아니면 달랐던 걸까?



 스마트 워치의 알람이 울리고, 시간을 확인 한다. 7시 10분. 지각하지 않는 마지노선의 시간. 지금이라도 출발해야 겨우 늦지 않게 도착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약육강식의 질서가 존재하는 원시림 같은 회색 빌딩으로 가고 싶지 않다.

 입사이레로 5년이 흘렀다. 그 때와 다름없이 아직도 나는 최약체 초식동물이다. 아래 년차 진급을 위해 나의 상사들은 어쩔 수 없이 내 직급을 올려주어 대리가 되었지만 오히려 사회초년생 때보다 더 비참하다. 과장님께 굽신 거리고 후배들에겐 쓴 소리 한 번 못하는 찌질 한 계급의 초식 동물.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자리를 잡고 괜찮아 질 줄 알았다. 빠르게 직급이 올라가면 후배들의 롤 모델이 되고 인정받는 핵심사원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가장 큰 오해였다. 생각보다 나의 능력을 증명시켜주기가 너무 어려웠고, 너무 갑갑했다. 끝없는 루저 생활을 앞으로 더 얼마나 해야 할까? 별안간 나를 무시하던 후배 김대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보다 1년 늦게 입사한 주제에 어느새 내 승진 순서를 넘보는 여자 직원들이 좋아하는 기생오라비 같은 녀석의 얼굴이었다. 세상에 질린 오늘에도 그 녀석을 떠올리다니 내 스스로가 한심하다. 세차게 고개를 저어 기생오라비의 얼굴이 흩어지게 한다.  



 나의 이미지는 남들이 보기에 늘 어두컴컴한 사회의 부적응자 또는 불만덩어리이다. 단체 생활에 있어서 불필요한 존재이며, 무가치한 사람임을 확인했다. 그토록 원하던 취업이라는 문턱을 3년 만에 겨우 넘었지만 사회생활은 너무 어렵기만 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가뜩이나 무거운 발을 힘겹게 들어 올려 지하철역을 등지고 사이골목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직은 밤인듯 어두컴컴한 골목 끝, 아무도 찾지 않게 생긴 외관의 낡은 여관을 찾아 들어갈 생각이다. 가방 안엔 세상을 떠나게 해줄 완벽한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

 어젯밤에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화려했던 골목은 지금은 쓰레기와 전단지만이 조용히 나부끼고 있다. 마치 쓸쓸한 내 마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땅위 모습을 하나라도 흘려보지 않는다.


 ‘빠바바밧’ 갑자기 켜진 네온사인에 눈이 부셔 나도 모르게 간판을 올려다 본다.

<미소상점>

‘여기는 뭐하는 곳이지? 언제부터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지?

 초라한 골목에 비해 노란색의 밝은 간판이 유독 더 튄다. 잠깐 멈춰 내가 하려던 일을 5분정도 미루기로 하고, 유리에 딱붙어 가게 안을 들여다 본다.

‘여기는 뭐하는 곳이지?’

순간, 문이 열리고 빨려 들어가듯 몸이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어서오세요. 미소상점입니다. 어떤 미소를 찾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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