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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Dec 21. 2023

가짜웃음 #1-1

#1

“하하하하 진짜 웃기다. 눈물이 다 나네!”

“경서 씨는 진짜 잘 웃는다. 웃음도 많고 엄청 호탕한 게 사람이 밝다 밝아. 학교 다닐 때 친구 많았겠어.ㅎㅎ”

“에이 선생님이 웃겨서 그렇잖아요.”

 내 얼굴을 심하게 일 그러 트리며 상대를 위해 더 큰소리로 웃는다. 나를 보고 웃지만 사실은 자신 때문에 웃는다는 말에 동의 못하는 표정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모르는 척 한껏 밝은 척한다. 내 심연의 아픔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꽁꽁 숨겨두기 위해서 하는 의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루종일 억지로 쥐어짜듯 웃다 보면 오늘 하루도 재밌게 즐겁게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주문과도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렇게 하다 보니 이제는 이것이 진짜 행복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든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터벅터벅 복도를 지나 출구 쪽으로 걷는다. 병원 복도 조명도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는지 하나씩 꺼지며 내 뒤를 쫓아온다. 마치 밝은 기운을 잡아먹고 어둠이 번져가는 복도가 내 감정과도 같은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본다.

‘저리 가!’

 이내 앞을 바라보며 어둠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건물을 빠져나온다.

진짜 외로움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지---잉" 울리는 진동소리에 핸드폰 액정을 확인해 보니 엄마다.

"경서야 퇴근했니?"

 "응"

"혼자 있어?"

"퇴근하는 중이에요. 왜요? 곧 버스 타야 해요. “

"그래... 그.. 전에... 사람 죽었다고 한다."

"누구요? 누굴 말...........!!"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 허락도 없이 왜!

"경서야 듣고 있니? 감옥에서 죽었는데 아무도 시신을 찾아가지 않는다고, 그래서 나한테까지 어떻게 연락이 왔나......."

 '풍덩'

나는 심연의 바닷속으로 빠져들었고, 바깥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발버둥 칠 힘도 없어 저 바닥으로 점점 가라앉을 뿐이다.  다시 보면 녹아버린 내 몸과 마음처럼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녹여버리겠다고 다짐했는데 출소를 2년 앞두고 갑자기 이렇게 가버리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 거지? 내가 그동안 어떻게 참아왔는데, 내가 어떻게 참으면서 견뎌왔는데 함부로 평화롭게 죽어버리다니 너무 화가 나 표정이 일그러졌다.

"… 끊을게요."


-12년 전-

"오늘 우리 지역엔 강한 바람과 함께 폭설이 내린다고 합니다. 외출을 자제하시고..."

"응 경서엄마. 경서 걱정 하지 말고 내 어머니 밥이랑 잘 챙기고 있을게."

저벅저벅 발소리와 함께 낡은 나무 마루 바닥의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오늘따라 을씨년스럽다. 시내에서 식당일을 하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엄마의 남편은 소름 끼치는 미소를 머금고 내 방문을 조용히 잠그며 들어온다.

"경서야. 숙제 다 했니?"

"네? 아 지금... 아 엄마는요?", "엄마는 오늘 버스가 끊겨서 못 오신다고 하네. 아빠가 숙제 봐줄게."

"네? 아.. 아니 저 혼자 할 수 있는데요. 할머니는요? 할머니 물 떠다 드리고 올게요……. “

왠지 단 둘이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본능적인 생각에 방을 벗어나려는 순간 내 손을 낚아채며 웃는다.

"할머니는 걱정 마. 원래 일찍 주무시잖니."

그러고는 나는 곧 내동댕이 쳐지고 순식간에 맨 몸이 되어 그 더러운 손과 입으로 내 영혼과 몸 전체가 유린당하고 찢겨 나간다.

“도와주세요."

아무리 크게 소리쳐 봤지만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아니 포기했다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눈 오는 산 중턱 외딴집에 나를 도와주러 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나는 얼른 이 사람의 시간이 빨리 지나 절정이 오기를 온몸에 힘을 풀고 천장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남자는 그런 내가 저를 받아들였다 생각하는지 내 눈을 보고 비릿하게 웃는다.




-현재-

멈췄다 쉬어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왜 항상 똑같은 시간에 눈이 떠지는 것인지 잠이라도 잘 자면 그 악몽은 다시는 꾸지 않을 텐데, 왜 나는 그 과거로 돌아가 그 장면을 반복해서 보고 있는 것일까?

 괴로움은 곧 흐느낌으로 바뀌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산중턱 외딴집의 12살 약한 소녀였던 나처럼 그 누구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할 수 있는 한 제일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몇 분이 흘렀을까? 기진맥진한 상태로 한참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벌써 5시다. 이제 출근을 해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이 집을 벗어나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가면 악몽 같은 그때의 일이 잊혀진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지만 서둘러 바깥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오늘은 다른 날 보다 좀 더 눈이 부어있고, 눈밑 그림자도 꽤 내려온 것이 아무래도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것 같아 화장을 더 진하게 덧씌운다.

 초점 없이 늘 지나던 길을 오직 한 가지 생각만 하며 힘없이 걸었다. 그 사람은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되었다. 나의 12살을 잔인하게 갈기갈기 찢어놨다. 그때부터 그는 내가 19살이 되어 그 집을 나오기 전까지 엄마가 없기만을 기다렸고, 나를 보며 역겹게 입맛을 다졌다. 그럴 때마다 의미 없이 방으로 도망쳤다.  확실한 도피처가 필요했다. 그를 피해 최대한 멀리 가겠다는 생각으로 서울의 대학을 가지 않고 지방의 4년 장학생으로 기숙사가 있는 대학을 선택했다.


합격자 발표 날 이 지옥에서 탈출했다는 안도감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고 그 날로 가방을 꾸려 학교가 있는 지방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대학생활의 시작은 너무 완벽하고 행복 그 자체였다. 똑같이 집을 떠나온 친구들과 함께라 그런가 부러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불안했다.

4년 장학생으로 들어간 덕분에 자연스레 과대표가 되었고, 나의 어두운 면을 모르는 사투리를 쓰는 과 동기들과 어울리며 행복한 것 같은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불과 그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5년 전-

 그 사람은 나를 도저히 못 잊겠다며 비오는 날 밤 기숙사 앞으로 나를 찾아왔다.

“지이이이잉” 수업시간에 울리는 핸드폰 진동에 화면을 확인해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곧 수업에 방해가 되어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다시 수업에 집중하려는데 문자를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경사야, 잘 있었지? 대학 공부한다고 도통 집에 오질 않으니 아빠가 우리 경서 보고 싶어서 직접 찾으러 왔다. 아니 뭐 이렇게 먼 곳으로 대학을 가서 찾아가기 힘들게 만드니. 아빠 지금 간호과 사무실 앞인데 어디니? 과사무실로 바로 가려다가 전화했는데 안 받는 구나.”

“쿵” 너무 놀라 쥐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큰 소리에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뭐에요? 괜찮아요?” 교수님의 부름에 대답조차 못하고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야 뭐해? 괜찮아?” “과대 무슨 일이야?” “얼굴이 많이 창백한데? 무슨 연락받고 그러는거 같은데?” 나를 향한 수군거리는 소리는 이미 서로 엉키고 섞여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문 쪽으로 나가려다 어이없이 쳐다보는 교수님을 향해 떨리는 눈동자를 애써 부여잡으며 말한다.

 “아..저...교수님 집에 어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서 급하게 나가봐야할 것 같아요...저 죄송합니다.” 교수님의 대답을 들을 여유조차 없다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뒤돌아 듯 급하게 강의실을 나왔다. 무슨 정신으로 과사무실 앞까지 뛰어갔는지 모르겠다. 제발 나를 아는 사람들이 그 사람을 만나지 않기를 부디 아무도 그 사람을 그리고 나를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뛰어갔다.

 헐레벌떡 뛰어온 나를 발견한 그 남자는 퀭한눈으로 전신을 훑으며 역겹게 웃는다. 마치 숨겨둔 사자의 먹잇감을 찾아낸 하이에나 같은 모습이다.

“어휴 딸, 아빠 보고 싶어서 이렇게 뛰어 온 거야? 머리가 다 헝크러졌네.”

까무잡잡한 손으로 내 볼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려는 손짓에 흠칫 놀라 손을 쳐낸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에요? 아니, 여긴 왜 나타난 거에요?”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마주치진 않을까 내 말이 과 사무실 안까지 들리는 것은 아닐까 화가 난 목소리를 가까스로 누르며 말했다.

 “잠깐 우리 얘기 좀 하자. 아빠가 너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데, 어쩜 이렇게 매몰차게 대하니? 이런 식으로 계속 하면 모든 것을 엄마와 학교에 얘기 할 수밖에 없다 이거야. 지금이라도 엄마한테 전화해? 과사무실 앞이니 안으로 들어가 볼까?”

 그의 손아귀를 벗어났다는 것은 착각이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나는 이 사람 앞에 끌려와있다. 그러면 '그렇지 당신이 나를 쉽게 놓아줄 리가 없지.' 내 눈빛은 또 다시 텅 빈 상태가 되었다. 이런 나의 상태가 어떤지 안다는 듯 그 남자의 입 꼬리 한쪽이 올라가며 내 어께에 넌지시 손을 올리며 말했다.

 “진짜 한 번이면 된다. 경서야.”


 그 남자와 택시를 타고 학교와 정 반대 방향에 있는 바닷가 마을로 찾아 들어왔다. 젊은 사람들은 절대 찾지 않을 어느 허름하고 낡은 여인숙 앞이다. 남자는 여인숙의 오래된 모습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보냈을 주인 할머니께 3만원을 드리고 작은 방으로 나를 잡아끌 듯 들어갔다. 남자는 눅눅한 이불을 급하게 펼치고 그 위에 나를 급하게 눕혔다. 저항 없이 순순히 눕는 나를 보더니 이 남자는 12살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자신을 받아들였다 생각이 들었는지 히죽 웃었고 곧 몇 개월간 밀린 숙제를 한다는 듯이 내 몸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갔다. 10분만 참으면 된다. 10분이면 이 짐승 같은 새끼는 지쳐 쓰러질 것이다. 멍하니 천장 구석을 쳐다보니 거미줄에 힘없이 매달려 있는 작은 흰나비가 보였다. 한참을 파닥이다 이내 지쳤는지 움직이 멈췄고,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거미가 나비에게 접근한다. 마치 그 사람에게 걸려든 내 모습 같아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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