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ep5
'순진하다'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 마음이 꾸밈이 없고 순박하다.
2.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하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순진하다'는 깨끗한 마음을 가진 순박한 사람이 되기도,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어수룩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착한 남자'는 깨끗한 마음을 가진 순박한 사람이었다. 천성이 악하지 않은, 부탁을 거절할 줄 모르는 착하고 순진한 사람.
그에게 혼이 나거나 싫은 소리를 들은 적이 거의 없다. 지금까지 딱 한 번. 미친 중학교 2학년 시절 그의 가슴에 비수를 꽃는 말을 했다가 뺨을 맞았던 적 빼고는. 때렸다기 보단 밀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만. 본인도 딸의 뺨을 밀어 놓고는 당황하는 눈치였다. 영악했던 어린 청소년은 본능적으로 눈치를 채고 더 세게 밀고 나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 이후 착한 남자는 한 번도 나를 혼내거나 때린 적이 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표현이 짙어져갔다. 어디서 그런 다정한 말들을 배웠는지, 그와 통화를 할 때면 사랑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그의 별칭을 정할 때도 아주 자연스럽게 '착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 그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가 분명했다.
나에게 그의 순진함은 '마음에 꾸밈이 없고 순박하다'는 뜻이었지만, 엄마에겐 정 반대였다. 엄마에게 그는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늘 착한 남자의 순진함이 답답했다. 적당히 거절하는 법을 몰라 트럭에 짐을 더 싣다가 다치기도 하고, 마음을 계산하는 법을 몰라 지나치게 교회 봉사를 하다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럴때면 엄마는 늘 착한 남자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사람이 그렇게 순진해서 어따 써!"
엄마도 안다. 자신이 남편을 잘 만났다는 것을. 주변 친구들도 '유란이는 남편 복이 있다'고 칭찬 일색이다. 하지만 좋은게 늘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결혼을 결심하게끔 하는 좋은 점이 결혼생활의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는 법이니. 배우자의 냉철함과 꼼꼼한 성격이 좋아 결혼했지만, 그 성격이 나에게 적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 일에는 장단이 있는 법이다. 엄마는 착한 남자의 순진한 성격이 좋아 결혼했지만, 그 순진함 때문에 답답한 세월을 감내해야했다. '야망과 추진력이 있었다면, 평생 시시포스처럼 트럭만 몰진 않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묻어난 얼굴을 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 순진함 덕분에 엄마는 '남편 복 있는 유란이'가 되었다.
딱, 한번 순박함으로 무장했던 착한 남자의 순진함에 균열이 간 적이 있었다.
어느날 친목 회원 중 하나가 착한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사업이 너무 힘들어져 집이고 회사고 압류에 들어가 대출을 받을 수 없으니 보증을 서 달라는 내용이었다. 10년을 넘게 봐왔던 사람이고, 몇 번 돈을 빌려갔을 때도 잘 갚았었고 무엇보다 대출 금액이 크지 않았기에 착한 남자는 군소리 없이 보증에 동의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그 이상을 알아보진 않았다. 대출해주는 은행이 어디인지, 이자는 얼마인지, 대출 받는 사람이 갚지 않을 경우 어떻게 되는지 등... 착한 남자는 그저 이름만 잠시 빌려주면,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친목 회원이 반드시 갚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보증 절차는 모두 전화로 진행되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대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대출한 사람이 돈을 갚지 않고 연락도 안되니 보증인인 착한 남자가 돈을 갚으라는 것이다. 그 회사는 제3 금융권, 사채회사였고 이자만 무려 30%가 넘었다. 고작 300만원이었던 대출금은 순식간에 1,000만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날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사채의 세계인가.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조폭 같은 아저씨들이 집에 찾아올라나?' 두려움과 흥미로운 상상이 융합되어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전화 벨소리가 온 집안을 울릴 때마다 온 몸의 세포가 쭈뼜쭈뼜 했고, 흥미가 감미되어 있던 상상의 세계는 점점 두려움이 짙어져가고 있었다. 어느날엔 상상대로 대출 회사에서 사람이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인터폰 화면 안엔 상상 속 조폭 아저씨들이 아니라,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머리속 그 남자는 어린 청년이었지만 그 당시엔 조폭만큼 무섭고 큰 아저씨였다. 시간이 흐르며 그에대한 공포가 옅어진 만큼, 그의 시간은 거꾸로 갔다. 조폭처럼 무섭고 커다랐던 아저씨는 앳된 청년이 되어있었다.
전화를 걸어도, 찾아와도 해결을 보지 못한 사채 회사는 결국 소송을 걸었다. 우린 생애 최초로 소송이란 것을 준비했다. 착한 남자는 50만원을 들여 필적 감정을 의뢰해 본인이 서류를 작성하지 않았음을 증명할 준비를 했고, 나는 판사에게 보낼 탄원서를 작성했다. 할 수 있는 모든 어휘와 문장을 동원해 최대한 가슴 절절한 탄원서를 작성했다.
판결이 났다. 50%의 배상 의무만 가질 것.
사채회사는 곧바로 항소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각성한 착한 남자는 50%의 비용을 현찰로 준비해 직접 회사로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계좌이체보다, 카드 결제보다 눈에 보이는 '현잘' 더 힘이 셀 것이라는 순진한 계산이 담겨 있었다. 50%를 받고 여기서 끝낼 것인지, 그마저도 못 받을 것인지 확실하게 결정을 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착한 남자의 기세에 눌렸는지, 계산기를 두드려본 결과 50%라도 받는게 낫다는 판단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채회사는 50%를 받고 끝내는 것을 선택했다. 순진함에서 시작된 보증 사건은 그렇게 순진함의 각성으로 마무리 되었다.
착한 남자의 순진함을 순박함으로 읽던 내 세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엄마가 느꼈을 답답함이 어떤 것일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동안 그의 순진함이 내게 순박함으로 읽힐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공백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성장기에 생긴 '아빠'에 대한 공백이 착한 남자로 매꿔진 것이다. 오빠와 나의 성장기에 착한 남자는 늘 트럭과 함께였다. 언제나 밖에 나가 돈을 벌기 바빴고, 모든 양육은 엄마의 몫이었다. 입학식, 학예회 심지어 졸업식에도 착한 남자는 없었다.
가장의 무게는 곧 경제의 무게였던 그의 세상에서 착한 남자는 늘 최선을 다해 아빠 역할을 수행했다. 최선을 다했던 그이기에 우리의 성장기에 생긴 '아빠의 공백'은 원망과 미움이 아닌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채워야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보증 사건은 착한 남자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작은 균열을 내 준 사건이었던 것 같다. 미안함으로 가득 찬 나의 세상에 내준 작은 균열들, 순진함의 얼굴이 한 가지가 아닌 것처럼 그에게는 희생의 얼굴만 있지 않다. 때론 냉정하리 만큼 차가운 모습으로, 때론 사랑을 형상화 한 모습으로, 때론 색소폰을 사랑하는 열정의 모습으로. 그는 다양한 색깔로 우리 곁에 있다. 그를 바라보는 나의 세계에 난 작은 균열들로 인해 다양한 색깔이 스며들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냈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나의 아버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