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없으면 글로 기록하면 됩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들어가는 말

by 고요

어느날 아빠의 방에서 뒹굴어다니는 증명사진을 하나 보았습니다.

그 안엔 익숙하지만 낯선 한 남자가 있었어요. 젊었을 때의 아빠였습니다.

그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왜 아빠는 옛날 사진이 한 장도 없지?"


IE001231486_STD.jpg 우리 부모님의 사진이 아닙니다 :)

엄마의 사진첩엔 어린이부터 양갈래머리 소녀, 결혼 전 처녀일 때의 사진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엄마의 결혼식 사진 카테고리에 끼어 있는 모습이 가장 어릴 때의 사진입니다. 그보다 더 어릴 때의 사진은 한 장도 없습니다. 방에서 발견한 증명사진도 결혼하기 얼마 전에 찍은 사진이더라고요.



코가 오똑하고 잘생겼던 아빠의 모습이 낯설었다가 신기하기도 했다가, 문득 상상해봅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그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아무리 떠올려보려해도 잘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게 아빠는 아빠니까요.

아빠가 아닌 다른 모습은 알지도 못하고 생각해 본 적도 없으니까요.

그래선 안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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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태어날때부터 아빠가 아닙니다. 내가 거쳐 온 모든 성장 과정과 같이 아빠도 똑같은 성장의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었습니다. 아빠를 아빠로부터 해방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살았고, 사랑했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사진이 있었다면 상상이 쉬웠을 것입니다. 김제의 초가집에서 밥그릇을 들이키고 있는 9살 난 엄마를 보면서 삶을 상상했던 것처럼이요. 하지만 그에겐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사는게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사진 찍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진 찍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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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믿을 수 없습니다. 제 사진첩 속 아빠는 세상 행복한 표정들 밖에 없으니까요. 삶이 바빠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는 것으로 정리해야겠습니다.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몸은 사진보다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빠의 팔에 남은 화상자국이 쉴 새없이 일해야했던 그때의 삶을 말해주고, 오빠와 저를 끔찍이도 자랑스러워하는 말투에서 배우지 못한 서글픔을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진은 필요 없습니다. 몸의 이야기를 들으면 됩니다.

몸은 우리의 삶을 모두 기억하고 있고,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차근히 말해 줄 테니까요. 기쁩니다. 이제라도 아빠의 삶을 돌아보고 싶단 마음이 들어서요. 2022년 11월부터 2주에 한 번 아빠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1-2주에 한편씩 글을 올렸습니다. 이제 아빠의 칠순이 다가옵니다. 책으로 만들어 선물로 드리려고 합니다. 블로그에 이웃님들이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딸이 아빠의 삶을 기록해주다니, 아빠는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전해드리며 아빠에게 묻고 싶습니다.


'아빠,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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