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지 않았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나가는 말

by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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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자서전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은 딸이 쓰는 아빠의 삶이라고 해야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아빠를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아빠를 만나고 아빠의 삶을 기록하면서 제가 치유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빠만 좋아하는 줄 알았던 할머니에게 받은 상처, 우리의 성장기에 부재할 수밖에 없었던 아빠에 대한 부채감, 오빠의 귀에 대한 고통..



상처를 받았지만 상처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아플게 뻔한데 뭐 하러 돌아보나요. 하지만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상처인지도 모릅니다.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더 아픈 건지도 몰라요. 아니 어쩌면 똑바로 보고 나면 그렇게 큰 상처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똑바로 들여다볼수록 상처는 더 작아지는 것이니까요.



아빠의 자서전을 쓰는 동안 저의 상처도 똑바로 봐야 했습니다. 아빠의 삶이 나와 무관하지 않은데, 그의 삶을 기록하려면 내 삶도 기록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쓰면서 많이 울었고 많이 행복했습니다. 아빠는 참 복 받은 사람이에요. 신께서는 아빠 몫의 복을 말년으로 모두 몰아넣으신 것 같습니다.



별을 보며 들판에서 자던 그 아이의 설움이 이 책으로 위로될 수만 있다면, 저는 계속해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처음 의도했던 것은 ep.10까지는 쓰고 책으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빠의 칠순 날은 다가오고 쓰는 일은 계속 밀리다 보니 계획한 대로 할 수가 없더라고요. 이 책은 아빠의 칠순 선물이기 때문에 마감기한을 맞추려 합니다. 우선 초판을 내고, 매년 업그레이드를 하는 것으로 저 자신과 합의를 봤습니다.



그래서 '나가는 말'은 아직 나가지 않았습니다. 아직 채 기록되지 못한 아빠의 기억들이 있고, 그 기억은 저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이 아직 너무도 많습니다. 기록하다 보니 깨닫습니다. 아빠의 얼굴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요. 자식들을 위해 희생한 한 가지의 얼굴만 있는 게 아니라, 너무도 다양한 얼굴을 가진 복합적인 인간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궁금합니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아빠의 얼굴이 더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기억이 계속되는 한, 기록도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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