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주는 일이 점점 망설여집니다.
어릴 때 친구와 나누던 공동 일기장, 시시때때로 주고 받던 편지에 대한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러나 그 기억들은 커갈수록 아스라이 멀어져 갑니다.
어른이 되면 마음을 주는 일이 점점 힘들어진다고는 하던데, 나에게조차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마음을 주는 일이 힘겹습니다.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아득히 멀어졌고, 심지어는 이웃의 글에 댓글을 다는 일조차 제겐 버겁습니다. 카카오톡에 생일인 친구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선물을 건넵니다. 마음보다 돈이 들어간 선물이 제겐 더 가볍습니다. 물론 돈이 들어간 곳에 마음도 담겼겠지만요. 돈으로, 물건으로 포장한 마음 말고, 날것의 마음을 전하는 일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며 이유를 물었습니다. 왜 마음을 건네는 일이 이토록 힘겨운 걸까.
얼마 전 엄마와 있었던 일을 계기로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습니다.
엄마는 아빠의 자서전을 읽은 외삼촌의 이야기를 전해왔습니다.
'뭐 자랑스러운 과거라고 왜 이렇게 과거 일을 자세하게 썼느냐'라고 물어오셨고,
이야기는 기가 너무 세서 남편의 기를 누르고 있는 저로 항 했습니다.
아빠의 자서전을 쓰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와 고통을 예쁘게 포장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가 어떻게 좋기만 하겠습니까. 그의 착함 덕분에 오빠와 저는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는걸요. 물론 지금까지도요.
온 마음을 넣어 자서전을 썼고, 칠순잔치가 끝난 이후로 3주간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온 마음을 넣으려면 안 좋은 기억을 잠시 마취시켜야 하는데, 마취에서 깨고 나면 오히려 더 아픈 법이지요. 온 마음을 넣고 나니, 괜스레 부모님이 원망스럽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나보다 오빠가 먼저인 부모님, 자기중심적인 엄마의 행동들, 단지 착하기만 한 아빠.
마취 풀린 마음이 진정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매스를 들이 민 것입니다. 며칠을 아파하다가, 이제서야 내 마음을 조금씩 직면해 봅니다. 그러다 마음의 한줄기에 늘 떠다니는 질문에 닿았습니다.
'왜 마음을 주는 일이 점점 더 망설여질까?'
제가 전했던 마음엔 늘 기대가 담겨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 선물, 심지어 누군가의 글에 달았던 댓글에도 말이지요. 그런데 다들 경험하셨겠지만, 나의 기대에 현실이 어디 부응하던가요. 단 한 번도 현실은 나의 기대에 부응해 주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은 기대 이상으로 다가오고, 원하는 것은 기대에 한참을 미치지 못하지요.
마음을 줄 때 기대도 같이 주었었나 봅니다. 아빠의 자서전을 썼을 때 가족들이 그것을 읽고 행복해할 것이라고, 아빠의 삶을 격려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었나 봅니다. (물론 가족들은 행복해하셨어요. 그것은 외삼촌의 질투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조차, 외삼촌의 말에 동의하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행복한 건 행복한 거지만, 나는 기가 세서도 안되었던 것이죠. 외삼촌의 말이 제게까지 전해져 온 것이 화가 났습니다. 부모님 선에서 끊을 수 있었을 말일 텐데, 그 말을 제게 전해왔다는 건 부모님도 같은 생각을 하신다는 것이니까요. 나의 사랑이 거절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정성을 다한 아빠의 자서전이 바닥에 내동댕이 처진 기분이랄까요.
네, 물론 부모님은 저를 사랑하십니다. 간절히 사랑하시기에 누군가 내 딸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했을 때 마음이 너무 아프셨겠지요. 그래서 말씀을 전해오셨을 겁니다. 그래선 안됐습니다. 그건 본인의 마음을 위한 것이지, 제 마음을 위한게 아니니까요. 지금까지 내가 나의 부모에게서 받았던 상처가 어떤 것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습니다. 이젠 어렴풋이 알지 말고, '직면'을 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더 이상 여기에 에너지를 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거든요.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빨리 직면하고, 부모님께 제 마음을 이야기하고 털어내야겠습니다. 두 분의 마음이 어떨지 보단 제 마음이 먼저니까요. 이 글의 주제는 이게 아니니까, 이야기는 우선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마음에 담긴 기대는, '허수'입니다.
허수는 아무리 많아도 진짜 숫자가 아닙니다. 내게 있는 것이 아니지요. 어릴 때 편지 쓰는 일이 즐거웠던 이유는, '내가 이렇게 편지를 쓰면 친구가 이렇게 좋아하겠지? 이런 답장을 하겠지?'라는 기대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롯이 편지를 쓰는 '나'에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를 생각하며 떠오르는 감정들, 즐거웠던 기억들 때문이었습니다.
아빠의 자서전을 쓸 동안 행복했던 이유는 자서전을 쓰는 '나'에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느덧 기대로 바뀌어 결국 보기 좋게 거절당한 것이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마음을 주지 말까요?
그건, 안됩니다. 내 마음도 순환되지 않으면 썩으니까요.
그렇다고, '기대를 하지 않도록 합시다'라는 말은 너무 교과서적입니다. 너무 진부하고, 와닿지도 않는 말입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끝내버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대신 저는 '잊어버리도록 합시다'라는 말로 바꾸려고 합니다. 마음을 기꺼이 주고, 주고 난 이후에는 잊어버리는 겁니다. 내가 마음을 주었다는 사실조차도요. 물론 잘 잊히지가 않습니다. 특히나 저처럼 감정이 예민한 사람은 사소한 것까지도 기억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시도해야 합니다. 마음을 주고 난 후에는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고, 다른 새로운 것들을 찾아 떠나는 것이지요. 내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으니까요. 잊어버리는 축복을 누리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다정한 마음에 닿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마음을 주고 싶은 다른 존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요. 잊는다는 건 그래서 축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잊으며 살아가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