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아닌 그 무엇도 될 필요가 없어

민들레가 들려주는 이야기

by 고요


봄이되면 온갖 꽃들이 세상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올해는 유독 꽃들이 너도 나도 먼저 피워대느라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저쪽에는 목련이 팝콘처럼 피어 있고, 위쪽엔 산수유와 개나리가 노랗게 피었고,

그 옆엔 벚나무가 흐드러지게, 진달래도 수줍게, 철쭉마저 벌써 나올 준비를 한다.

꽃들이 제각기 앞다투어 피우는 동안, 땅 아래에도 봄이 내렸다.

봄이되면 유독 땅을 보며 걷는다.

하늘 가까운 곳에서 피어난 꽃들보다 땅 아래에서 솟아난 꽃들에 시선이 간다.

작은 틈새도 비집고 들어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너는 도대체 어떤 삶일까.


온실 속에서 자라 정해진 순서를 거쳐 나에게 온 화려한 꽃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온갖 꽃나무보다,

땅 아래 빈틈에서 피어난 너의 이야기에 오래도록 귀를 기울인다.

너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상상된다. 너의 이야기는 들을 수록 궁금해진다.






한번이라도 좋으니, 넘치는 사랑을 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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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집 담벼락 틈새에 자리잡은 너는,

이 집에서 새어나오는 어떤 이야기를 듣고 있겠지.

'오늘은 아이가 울음을 멈추지 않았어.

채워지지 않는 사랑에 아이는 서럽게 우는 것 같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충만하지도 않은 그 어딘가 딱 그만큼의 사랑만 받으며 자란 아이는

계속해서 시그널을 보내.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고, 한번이라도 좋으니, 넘치는 사랑을 달라고.



닿지 못한 마음에 아이는 오래도록 울고 있어.

내 모든 생을 주어서라도 너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한줌의 흙마저 네게 주고 싶다.

단 한순간이어도 좋으니 너를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고 싶다.

꾹꾹 눌러담아 넘쳐 흐르게,

콸콸 쏟아지는 물처럼.






나는 똥도 될 수 있고, 나비도 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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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얼굴을 빼꼼히 내민 민들레가 말을 걸어 온다.

"여긴, 하수구인데, 너는 왜 여기살아?"



"나는 작은 틈새, 한 줌의 흙에서도 자라난다.

하수구라도 개의치 않아.

나는 언제든 나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

나는 언제든 똥도 될 수 있고, 나는 하수구가 될 수도 있어.

그리고 나는 나비가 될 수도 있고, 흐드러진 꽃밭이 될 수도 있어.


나는 나로 충만해서, 언제든지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있어.

너는, 너로 가득 차있니?

네가 아닌 그 무엇도 될 필요가 없어.

너는 그냥 네가 되렴.

그럼 너는 뭐든지 될 수 있단다.

너를 버리려 노력할 필요도, 너를 채우기 위해 발버둥칠 필요도 없어."



오래도록 멈춰서서 민들레의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되어야, 나를 버릴 수 있다고?'

문득 서러움이 밀려와 몸을 일으켜 다시 길을 걷는다.

여전히 내가 되지 못한 나에게

애써서 너를 버릴 필요가 없다고 다독이며,

민들레의 말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그냥 네가 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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