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과 도마복음 비교
가짜뉴스의 시대, 말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지고 책임지는 이는 없는 놀라운 시대다.
Chat GPT 등 생성형 AI의 발전은 가짜뉴스를 조금 더 쉽고 퀄리티 있게 만들어 낸다고 한다.
몇 가지의 키워드만 제공하면 그럴듯한 이야기를 순식간에 만들어내니, 그럴만도 하다.
가짜뉴스를 만드는 일은 쉽고, 또 그걸 믿는 것도 쉬우니 세상이 이토록 쉬웠던가.
쉽게만 살려고 하는 이들에게 오늘 도마는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요한복음 20,25
모든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봤다고 흥분하여 말하는데,
도마는 자신이 직접 본 것이 아니니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직접 만져보고 느껴야 자신은 믿겠다고 한다.
이 말로 인해 그는 기독교 역사에서 '믿음 없는 자'로 폄훼되어져 왔다.
아마 가룟 유다 다음으로 '나쁜 예'로 많이 평가 되어 왔을 것이다.
도마는 정말 믿음이 없는 자일까?
내가 도마라면 엄청 억울할 것 같다.
거기 있는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보고 만져본 후 믿은 것 아닌가?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는 이유로 보지 않고도 믿어야하는 처치에 놓였다.
내가 직접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닌데,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 믿는다는 것이야말로, 그것이야 말로 무책임한 것 아닌가!
도마는 군중심리에 따르지 않고, 자신이 직접 보고 느끼며 깨달아야 믿겠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8일 뒤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시 찾아오신다.
이번엔 도마에게 직접.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직접 보여주고 만져주시며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말한다.
자신의 오감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도마는 그제야 온 마음을 담아 고백한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요한복음 20,28
본인이 직접 보고 만지며 깨달음을 통해 만난 하나님.
그 분은 바로 '나'의 하나님인 것이다.
그러나 영혼을 담은 도마의 고백 앞에 예수는 이렇게 응답하신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요한복음 20,29
이 문구로 인해 도마는 아주 오랫동안 믿음이 없는 자로 치부되어 왔다.
이 문구는 정말 도마의 불신앙을 책망하는 믿음이었을까?
정말 우린 덮어 놓고 믿어야 하는 것일까?
도마복음 원본
외경에 포함되어 있는 도마복음을 보면 오늘 도마의 말과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다.
'도마복음'은 예수의 어록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예수의 신비로운 탄생, 기적, 병고침, 십자가와 부활, 심판 등에 대한 내용은 전연 없고,
오직 예수의 말씀만 있기 때문이다.
도마복음이 예수의 말씀을 통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깨달음'이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 이것이 도마복음이 강조하는 신앙이다.
이는 자칫 영지주의와 범신론에 빠질 위험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믿음만 강조되어온 기독교의 역사에 도마복음의 깨달음 신앙은 적절히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오강남 교수의 저서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은 도마복음 해설서이다.
그는 비교종교학자답게 도마복음을 불교, 유교 등 여러 종교의 가르침과 비교하여 기록하고 있다.
도마복음의 '깨달음' 신앙은 불교와 유교 그리고 힌두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신앙이다.
도마복음이 '깨달음'을 강조한다면, 요한복음은 '믿음'을 강조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요한복음의 예수의 말씀을 다시 이해하자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네 안에 이미 하느님이 있는데, 왜 밖에서 찾니?
자기 안에 있는 하느님을 만나는 사람은 이미 복을 받았단다.
도마는 덮어 놓고 믿기보다, 치열한 고민과 수행을 통한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의 깨달음을 원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신앙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솟구치는 신앙을 원했던 것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기적과 병고침만한 게 없다.
이단을 보면 대중 앞에서 병고치는 행위를 보이면 손쉽게 대중의 마음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도마는 쉽게 얻을 수 있는 모든 권위를 배제하고 오로지 예수의 말씀만 기록한 이유가 뭘까?
기적과 병고침 등 기적을 통한 믿음은 표면적인 믿음 밖에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내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믿음이다.
하느님은 구름 위에 계시는 것도, 공기 중에 떠도시는 것도 아니다.
하느님은 내 안에 계시다.
나는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만났는가?
어제 공동체 친구들과 '신이 정말 있느냐'를 서로 이야기했다.
한 친구가 이런 답변을 했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잘 모르겠고,
저는 그저 내가 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고 좋습니다.
신이 있으면 믿고, 없으면 믿지 않겠다는 말은 공허한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신앙은 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인간은 잠재의식과 무의식 등 놀라운 깊이를 가진 생명체다.
상상 이상으로 더 놀라운 깊이까지 들어갈 수 있고,
깊이 들어가다보면, 결국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태초의 나, 참 나이기도 하다.
그러니 인간이 얼마나 신비롭고 놀라운 존재인가.
그러니 인간은, 생명은 얼마나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가.
그러니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도마복음의 목적은 개인의 신앙이 아니다.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발견하다 보면, 결국 내 옆에 있는 이의 하느님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안에 또한 우리 밖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사람들이 가짜뉴스에 더 쉽게 빠지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덮어놓고 믿다보면, 내 편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이 외로운 것 같다. 외로운 이들에게 오늘 도마복음의 신앙이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