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민들레

지치지 않는 기대

by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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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뒹구르르르. 툭, 뒹구르르르. 애꿎은 돌멩이만 발에 채이고 있다. 그토록 사랑했던 민들레가 나를 보며 웃고 있지만, 모른척하는 중이다. 눈을 마주쳤어도 못 본 척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언제나 나를 환영해주던 민들레, 괭이밥이 머쓱해하는게 느껴졌지만, 나도 모르겠다. 얼굴에 잔뜩 심술이 묻어 더 이상 땅을 보지 않는다. 욕할게 없는지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거슬리는 것을 찾는다.



'민들레는 소재가 너무 흔합니다. 너도나도 다 민들레 이야기를 쓰네요.'

글쓰기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선 매스처럼 아프다. 사랑하는 민들레는 흔하디 흔한 소재가 되버렸다. 아니 그것보단 보란듯이 민들레를 사랑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내 글이 오히려 민들레를 더 흔하게 만들어버렸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어버린 느낌. 온 세상이 새카맣게 타버린 베이글 같다. 나를 향해 건네는 미소조차 검게 그을려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면, 속수무책이다. 먹구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매일 글을 쓴지 1년이 다 되어간다. 매일 글을 쓰던 어느날 답답함이 밀려왔다. 마음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또 다시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내가 쓰는 글이 읽히는 글인지, 자기 감정에 취해서 쓰는건 아닌지,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글인지 모든 것들이 궁금했다. 마침 동네에서 글쓰기 수업이 열렸다. 왠지 어르신들이 많을 것 같은 제목에 며칠을 고민했지만, 지금 나에게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글쓰기를 배울 수 있다면, 호호 할머니 할아버지와도 기꺼이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막상 신청해보니, 연령대는 다양했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글쓰기 선생님은 에세이 수상작들을 함께 읽으며, 구성을 배우고, 각자 쓴 글을 제출하면 합평을 하지고 하셨다. 잘 쓰여진 글을 읽으니, 이렇게 쓰면 될 것 같았다. 첫시간 수업을 들은 후 바로 글을 제출했다. 나름의 솔직한 고민과 오랜 깨달음이 담긴 글이었다. 나름 잘 썼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두번째 수업에 들어갔다. 현실은 보란듯 나의 자부심을 비웃었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발가벗겨진 것 같았다.



가소로운 자만심이었다. '소재가 흔하다, 에피소드가 담기지 않았다, 글쓴이의 심리가 보이지 않는다.' ... 다양한 비평을 선물받았다. 이렇게 글을 끝낼 수 없어서, 다음날 피드백을 참고해 글을 수정했다. 디테일한 에피소드와 밝히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도 넣어서. 이번엔 좀 나아졌겠지 기대하며 다음 수업에 들어갔다. 이번엔 현미경을 들고 온 몸 구석구석이 살펴지는 기분이었다. 좀 더 세밀하게 까발려졌고, 구석구석 비평을 받았다. 비평의 내용은 첫 시간과 비슷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어느 지점에서 답답함을 느꼈던 것인지. 내 이야기를 하는게 익숙하지 않는 내게 글쓰기, 그것도 에세이는 특히 쉽지 않았던 것이다. 에세이야말로 자기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글쓰기니까. 내게 부족했던 것이 '내 이야기'였고, 그것이 바로 나의 숙제였다.



내 문제를 마주한 것이 다행이면서도 아팠다.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을 보게 되었으니. 더 아팠던 건 사랑하는 민들레가 거절당한 것이었다. 흔해 빠진 민들레를 주제로 가져온게 선생님은 마뜩찮은 것 같았다. 글쓰기는 신선해야하는데, 민들레는 길가에서도 글 속에서도 흔해 빠진 주제였다. '너는 어딜가든 천덕꾸러기 신세구나.'



며칠 글을 쓰지 않았다. 부족한 점을 알았으니, 이제 더 성장할 수 있겠다고 자신을 다독여봤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먹구름이 지나가길 기다려야했다. 내 안 깊숙한 곳에 있는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다시 일어나 글을 쓸 거라는걸. 단지 시간이 조금 필요한 일이라는걸. 간신히 내 봤던 용기가 보기좋게 부끄러움으로 되돌아 왔을 때, 내 글이 내게 의미를 잃었을 때, 무엇보다 사랑했던 존재가 거부당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할 힘이 내겐 없다.



그럴 땐 가던 길을 멈춰선다. 때론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기도 하고, 에라 모르겠다 발라당 누워 하늘을 쳐다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곳이 내 자리는 아니다. 내가 걸어가는 길일 뿐. 내게 거절당해 머쓱해하던 민들레와 괭이밥이 차분히 나를 기다려준다. 내가 다시 일어나 걸어갈 수 있을 때까지. 재촉도, 판단도 하지 않는다. 기다릴 뿐이다. 얼마간 누워있었던가, 문득 고개를 돌리니 가만히 옆에 앉아있던 민들레와 눈이 마주친다. 웃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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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래도 너가 좋아'


길가에 흔해 빠진 민들레, 사람들의 글 속에서도 흔하디 흔한 민들레. 하지만 우리는 흔한 것들에게 빚지며 살아간다. 흔한 공기에게 숨을 빚지고, 흔한 바람과 햇살에게 온기를 빚지고, 흔한 풀꽃들에게 미소를 빚지고 있다. 무얼 써야할지 몰라 막막해하는 사람들의 글 속에도 민들레는 기꺼이 들어와 우리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고 있다.



다시, 글을 쓴다. 역시나 흔하디 흔한 민들레가 주인공이다. 아스팔트 사이를 비집고 피어난 민들레가 나와 같아서, 좁디좁은 도시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나와 같아서 도저히 민들레를 외면할 수 없다. 흔한 민들레를 통해 마음을 토해낸다.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길을 걷는다. 민들레에게 미안한 얼굴로 작별인사를 건넨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민들레는 환한 미소로 화답한다. 곁에 있던 괭이밥도 덩달아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한다. 또 한번 발걸음을 빚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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