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우린 사랑이라 부르네.
‘어린 애가 생선 눈깔을 좋아하네?’
어른들이 신기하다는 듯 생선눈깔을 맛있게 씹어 먹는 나를 쳐다본다. 생선눈깔은 어린 나의 소울푸드였다. 작고 동그란 알갱이를 입에 넣으면 고소하고 톡톡 터지는 식감이 무엇보다 좋았다. 오징어도 살보다 입을 더 좋아했다. 그때 나는 오징어 입이 눈이라고 생각했고, 엄마에게 오징어 눈깔을 어서 달라고 성화였다. 그것이 우리의 눈과 같은 부위라기보단, 맛있는 부위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생선눈깔을 쳐다도보지 않게 된건, 중학생이후. 더 정확히는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부터다. 또래 할머니들에 비해 키가크고 덩치도 있던 할머니는 늘 허리를 뒤고 젖히고 걷곤 하셨다. 허리가 굽어진 시골 할머니들에 비해 우리 할머니의 허리가 반대로 젖혀진 이유는 차가운 도시 할머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차가운 도시 할머니의 방에만 유독 냉기가 돈다고 생각할 정도로 할머니는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잘 웃지도 않았고, 다정한 말 한마디 할 줄도 몰랐다. 소녀감성의 엄마에겐 그런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언제나 오빠와 아빠가 우선이었고, 엄마와 나는 뒷전이었다. 노인정에서 18번이 엄마 욕이었고, 할머니의 엄마 욕은 돌고 돌아 엄마 귀에까지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엄마와 할머니의 거리는 아득히 멀어져만갔다. 나 역시 나를 좋아하지 않는 할머니를, 내 엄마를 미워하는 할머니를 좋아할 이유가 없었다.
어느날 식탁에 생선이 올라왔다. 할머니는 멀쩡한 생선 살점은 놔두고 바로 머리를 뚝 떼어 내시더니 아그작 씹어드셨다. 그 모습이 괴기스러워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나의 소울푸드였던 생선눈깔이 어쩐지 할머니와 연결된 것만 같아 그 이후 다시는 생선눈깔을 먹지 않았다.
할머니와 이별한지 10년이 넘었다. 할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은 호스피스병원이었다. 어느날 자꾸만 배가 아프다던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 보니, 소장암이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암 진단을 받고 1년 만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만났던 할머니에게선 더 이상 차가운 도시 할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살짝만 쳐도 금방 스러져버릴 것만 같이 비쩍 마르고 색을 잃은 시든 장미 꽃 같았다.
할머니와 이별 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할머니는 내 마음속 아주 깊고 어두운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방에 빛이 비춰진 건, 아빠의 자서전을 쓰게 되면서부터다. 아빠의 칠순을 맞아 자서전을 쓰기로 했다. 더 정확히는 어릴적 사진이 한 장도 없는 아빠를 기억하기 위한 기록물을 쓰기로 했다. 그 핑계로 아빠의 삶을 듣고 싶었다.
고단한 아빠의 삶 속에서 문득문득 할머니가 묻어났다. 집이 없어 들판에서 별을 보며 잠들던 어린아이 곁엔, 어린 자식을 바깥에서 재워야만했던 할머니의 설움이 보였다. 나이 많은 재혼남과의 결혼 생활 내내 매 맞고 살아야했던 할머니, 무능력한 남편이 일찍 죽고 홀로 6남매를 책임져야했던 할머니의 삶이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된 할머니에게 큰아들은 얼마나 큰 의미였을까.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린 가장이 되어야했던 큰아들에게 느끼는 할머니의 미안함과 가난에 대한 설움은 어떤 깊이었을까. 그제야 할머니의 생선대가리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지독한 가난을 통과한 할머니에게 생선 대가리는 소중하고 귀한 음식이었다. 자신은 비쩍 마른 생선 대가리를 씹으며, 오동통한 살점은 모두 오빠와 나에게 주던, 그것은 할머니만의 사랑법이었다.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어 사랑할 줄 몰랐을 뿐,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할머니의 외로움과 고통이 이해될수록 서글픔이 밀려온다. 지금 아는걸 그때도 알았다면, 우리의 관계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안타까움이 짙어질수록 얼굴도 본적 없는 할머니의 남편을 원망하게 된다. 나쁜건 할머니의 남편인데 왜 할머니와 내가 멀어져야만 했을까.
할머니의 남편을 원망하다, 그녀가 남기고 간 소중한 아들을 생각한다. 사랑하는 나의 아빠. 사랑하고 싶은 당신을 대신해 당신의 아들을 더 많이 사랑하겠다고 조용히 읊조린다. 당신의 아들은 당신과 달리,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사랑받기 충분한 사람이라고 당신을 안심시켜본다.
아빠의 자서전을 쓰며 깨달은 건, 남들이 보기에 불행한 삶이지만, 불행이 감싸고 있는 인생 안에는 다정한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 가장이 되어야했던 나의 아빠가 단순히 불행하지만은 않았던 이유는, 그 안에서 만난 무수한 인연들이 아빠에게 다정했기 때문이다. 아빠의 어머니인 할머니에게도 찰나같은 다정한 순간들이 있었으리라고 믿는다.
산에서 나무를 하다 문득 올려다 본 푸른 하늘이, 집 없이 떠돌아야했던 시절 기꺼이 음식과 방을 내주던 이웃들이, 당신 곁을 스쳐온 다정한 인연들이 할머니 곁에 있었으리라고 믿어본다.
다시는 할머니를 사랑할 기회가 없지만, 할머니가 남기고간 그의 아들을 더 깊이 사랑하는 것으로 그 설움을 대신 한다. 할머니가 누리고 가지 못한 수많은 복들이 그의 아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며. 어쩌면, 할머니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할지도 모르겠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안했던 아들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산다면, 나에게는 친절하지 않았던 행운들에게 오히려 감사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모지고 아픈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 준 할머니 덕분에, 우리는 오늘 행복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