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다.
여름이다.
물기를 머금은 나무처럼 온 몸이 축 늘어져있다.
습하고 더운 날씨가 모든 의욕을 꺾어버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싶은 마음도, 입맛도, 친구를 만나 안무를 묻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열기를 차단하고, 에어컨을 켠다.
끈적한 몸을 말려주는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것도 잠시 에어컨 바람은 30분 이상 쐬기가 힘들다.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에, 오른 전기세 걱정에 몸과 마음이 얼어 붙는 느낌이다.
에어컨을 끄고 그냥 여름 더위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문득 작년 여름 농활을 생각한다.
매년 여름이면 농활을 갔다. 3박 4일 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한 해 중 가장 많은 땀을 흘리는 시간이다.
여름의 더위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열심히 받일을 하다보면, 땀이 비오듯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이때 흘리는 땀 만큼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농삿일을 하며 땀을 비오듯 쏟아내고 나면, 개운하기까지 했다.
입고 있는 옷을 짜내면 물이 흐를 정도로 다 젖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여름은 덥고 움직면 땀은 나는 거니까.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땀에 젖고 나면, 개울가에 뛰어들었다.
땀에 절은 채로 개울에 들어가면, 뼛속까지 시원해졌다.
땀에 절은 채 먹었던 수박 한 입, 뼛속까지 시원했던 개울, 문득 올려다본 푸른 하늘.
모든 것이 선명한 순간이었다.
농촌에서는 당연했던 땀이 도시에서는 불쾌했다.
조금이라도 덜 흘리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못견디겠다 싶으면 에어컨을 틀었다.
농촌은 자연의 변화에 예민하다. 날씨의 변화는 작물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은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기에, 결국 받아들여야 한다.
겸손해져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던 한 어른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저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지독한 더위에 잠 못 이룬 새벽, 농촌의 더위를 생각한다.
더위를 받아들였던 그날,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개운하다 여겼던 그 날들을 생각한다.
땀에 절어 올려다봤던 푸른 하늘은, 더운 날씨에 고생이 많다는 듯 맑고 청명한 위로를 준다.
그 하늘에 서운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던 모든 순간들을 떠올린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여름날의 새벽, 에어컨을 끄고 다시 눈을 감는다.
온 몸을 끈끈하게 감싸는 미세한 땀을 느끼며,
다시금 잠을 청한다.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