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Jan 22. 2024

나는 당신이 염려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가슴을 열고 삶을 받아들이는 방법



나는 한 번이라도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적이 있던가.


머릿속엔 늘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있다. 시나리오에 따라 삶이 바뀌길 바라면서. 

작년 6월 미술치료에서 '나무'그림을 그렸다. 

모두가 자기의 나무를 그린 반면, 내 나무는 그림에 다 담기지도 않았다. 화면 구석에서 위아래, 그리고 반절이 잘린 그림이었다. 그때 나는 나를 이 작은 화면 안에 다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 큰 꿈과 이상이 있는데, 여기에 나를 다 담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멀리서 다른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숲에서 나만 덩그러니 떨어진 채 있었고, 다른 나무들은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나와 나무들 사이엔 커다란 호수가 있어 만나기도 어려웠다. 내 버드나무는 홀로 고고하게, 다 담지도 못한 채 외롭게 서 있었다. 



지난 6월 그린 나의 나무그림




당시 나는 언제든 떠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여기가 아니라고, 나와 잘 맞는 다른 곳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채, 여기가 종착지는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나무 그림을 다 그리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하게 나는 더 큰 나무라고, 더 큰 꿈을 가진 존재라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럴수록 현실이 더 괴로웠다. 나의 현실은 여전히 '지금, 여기' 있으니까. 나는 어제처럼 오늘 같은 장소에서 눈을 뜨고, 같은 사람을 만나고, 같은 곳에서 일을 하니까. 늘 답답함을 느끼며 살았다. 



7월, 일본의 작은 시골 마을에 다녀오고, 그곳에서 자기들만의 속도로 카페를 운영하며, 지역 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호스트를 만났다. 살고 싶은 삶이 조금은 명확해졌다. 8월 임신을 하게 되면서, '지금 여기'에 있는 아기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11월, 한 권의 책을 만나며 가려진 눈이 떠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를 공상하며 살았다. 나는 '지금 여기' 있는데, 자꾸만 과거와 미래로만 가려고했다. 눈 앞에 있는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였던 적이 과연 있었던가 싶었다. 두려움과 욕망에 이끌려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그리며, 삶을 내가 원하는대로 통제하려고했다. 그러나 삶이 어디 쉽게 통제가 되던가? 그랬다면 모두가 원하는대로 살았을거다. 그랬다면 세상은 진즉에 멸망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몇 만년을 이어져 온 우주의 에너지를, 백년도 못사는 나의 에너지로 통제할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왜 세상이 내 뜻대로 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왜 저 사람이 달라져야 나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러는 사이 나는 나를 얼마나 깊은 절망과 괴로움에 빠뜨렸던걸까. 





현실을 바꿀 순 없어도, 이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온 몸과 가슴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지금, 여기' 내가 있는 바로 이 순간을 사는 것. 우리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할 수가 없다. 샤워 할때는 샤워만 하고, 밥을 먹을 땐 맛있게 밥을 먹는 것. 누군가를 만날 땐, 그 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것. 지금 나는 글을 쓰고 있으니 글쓰기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는 전부이고, 이것이 지금 이 순간 나의 성공이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원하는 것을 가진 나도, 매력적인 남편과 결혼한 내가, 월 몇 백을 버는 내가, 깨달음에 이른 내가 나는 아니다. 

슬픔에 젖은 내가, 좁은 집에 사는 내가,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몸부림치는 내가 나는 아니다. 

나는 그저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자다. 나와 그것을 동일화하지 않는 순간부터 작은 자유를 경험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것은 평생 내 곁에 달라 붙어 유착되지 않는다. 내가 그러려고 하지 않는 한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고통도, 평생 가져가고 싶었던 행복도 모두 지나간다. 그리고 그것을 경험한 나만 남았다.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다. 대신에 가슴을 열고 현실을 받아들이자고 결심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현실을 받들어 모시는 것. 그것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왠지 그것이 신을 모시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가 노동이고, 노동이 기도다'라고 말하던 대천덕 신부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가슴을 열기, 매일 하는 일에 몰입하기, 맛있게 밥을 먹기


어느날 문득 더이상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꿈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내 마음엔 조금씩 선명해지는 꿈이 있다. 나만의 속도대로 살 수 있는 삶의 환경을 만들고, 공동체를 만드는 일. 그런데 그 일들이 '지금 여기' 내가 살고 있는 현재 속에서 조금씩 이루어져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느날엔 나무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어졌다. 다시 나무 그림을 그린다면, 숲속에 있는 여러 나무 속에 함께 서 있는 나무를 그리겠다. 튀지도 않고, 별 볼일도 없지만, 주변 나무들과 어울리며 숲을 이루어가는 그런 나무가 그리고 싶어졌다. 별 것 없는 삶인데, 나는 이 삶이 참 감사하다. 어느날엔 나도 어쩌지 못하는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어느날은 별 감흥 없이 지나가기도 하고, 또 어느날엔 말할 수 없는 행복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모든 순간이 기쁨으로 충만하다. 내 삶이 충분히 만족스럽다. 


너무 애쓰지 말고, 힘을 조금 더 빼고 지금 여기의 현실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겠다. 내 안의 '참 나'가, 내 안의 '신'이 우리를 이끌어 갈 것이다. 우린 그저 모든 순간을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면 되겠다. 그러면 충만하겠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의 의미를 이제는 조금 알겠다. 



나는 여러분이 염려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인간에게서 뺏을 수 없는 단 한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