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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an 05. 2024

인간에게서 뺏을 수 없는 단 한가지

꼬꼬무 '이남이 할머니'와 '사랑하는 우리 아빠'의 삶을 통해 배운 것들


그 어떤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세상의 비극과 불의의 사건들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내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생존자이며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의 경험에서 꺼내어 올린 통찰의 정수 역시 이것이었습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겠지만 단 한가지, 주어진 상황에서 나의 태도를 선택하고 나만의 방식을 선택하는 자유만은 빼앗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혹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재난적인 상황으로 더는 게임을 할 수 없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치 않는 삶이었다며 비관하는 것을 그만두고, 나의 이 난이도 높은 삶에 다시 몰입하는 것을 결심하세요. 그 터널의 코너를 돌면 어쩌면 터널의 출구입니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연대하고, 긍정하고, 희망을 찾으세요. 그 어려운 길이 우리에게 더 어울립니다. 

(허지원 교수 중앙일보 칼럼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중)





지난주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이남이 할머니 편'을 보았다. 캄보디아에 사는 한 할머니가 자신은 사실 '한국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녀는 한국말을 한 마디도 할 줄 몰랐고, 생김새마저 한국인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그녀의 삶의 괘적을 쫓던 중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만났다.  역사의 무게를 어떻게 한 개인에게 이렇게까지 지울 수 있을까 싶을 삶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일제 강점기 일본 군 위안부로 갑자기 끌려가게 된 '남이'는 동남아시아를 다니며 일본 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매일이 고통의 연속이었고, 도망치다 잡히면 말할 수 없는 폭행을 당해야했다. 어느 일본 군은 '남이'를 칼로 찌르며 성폭행을 하기도 했다. 이 고통의 끝은 어디일까, 막막한 터널의 한 복판에 서 있던 어느날, '일본 패망'이 선언되었다. 일본군들은 도망가는 순간에도 위안부들을 학살했다. 치부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무참히. 


다행히 살아남은 위안부 여성들은 배를 타고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일본인 남성이 그녀를 붙잡았다. 자신과 함께 이곳에 살자고, 너를 아끼며 사랑하겠다고. '남이'는 그 남자를 믿고 조국에 돌아가기를 포기했다. 낯선 땅, 캄보디아에.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남자는 '남이'를 두고 떠나갔다. '남이'의 뱃속엔 그 남자 사이에서 생긴 아이가 있었다. 이방인 여성이 낯선 땅에서 홀로 아이를 낳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이 캄보디아 남자와 재혼을 했다. 그 남자와의 사이에서 3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 남자와는 오래 살 수 없었다. 폭행이 이어졌고, 남자는 죽었다. 


또다시 홀로 아이를 키워야했다. 이번엔 4남매가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갔다. 그러나 1970년대 '킬링필드'가 일어났다. 캄보디아의 폴포츠는 외국인, 지식인, 부르주아 등을 닥치는대로 죽였다. 200만명의 삶이 그의 손에 스러졌다. 그 중 남이의 아들도 있었다. 외국인이었던 남이는 죽을 힘을 다해 캄보디아인이 되어야만 했다. 모국어도 고향의 추억도 살기위해 모두 버려야했다. 그녀가 왜 한국어를 한 마디도 기억하지 못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한국에 그녀의 사연이 알려지고, 그녀의 가족과 고향집 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패널들이 그녀의 기구한 삶에 할 말을 잃고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이 이토록 불행할 수 있을까. 마음이 아려왔다. 그러나 또 다른 질문이 솟았다. 그녀의 삶을 불행하고 불쌍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찾아오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빅터 프랭클 박사가 말한대로 '삶에 대한 나의 태도'이다.  




그녀의 삶을 생각하는데, 아빠의 삶이 떠올랐다. 집 없이 들판에서 잠을 자야했던 어린시절, 겨우 산에 움막집 하나 지어놓고 매일 어머니와 나무를 하던 어린 아이. 무책임한 아버지가 죽고, 가장이 되어 돈을 벌어야했던 14세의 청소년,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매일 돌덩이를 나르는 가장의 삶. 멀리서보면 아빠의 삶은 너무 고단하고 불쌍하다. 그러나 아빠의 삶에는 아빠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 안에서 만났던 다정한 이웃들, 청소년 아빠의 삥땅질을 모른척 해주던 주인 할머니, 아빠에게 추파를 던졌던 직장동료.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삶 속에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한 인간이 있다. 


아빠는 지금도 자신의 삶에 매우 감사하며 살아간다. 굶기가 일쑤였던 어린시절에 비하면 이렇게 풍족하게 먹을 수 있다는게 감사하다는 아빠. 자기의 집이 있다는게 감사하다는 아빠. 제 아무리 온갖 불행이 찾아와도, 삶을 대하는 태도 만큼은 불행도 건들 수 없다. 모든 불행과 아픔을 온 몸으로 통과해내고 사랑하기를 선택한 아빠를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남이' 할머니의 삶 역시 멀리서 보면 불쌍해서 가슴이 미어지는 사연이다. 어떻게 한 개인에게 이토록 잔인한 불행이 찾아올 수 있을까. 그러나 아무리 불행한 현실이라도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는 건, 결국 자신의 선택이다. 할머니는 온 몸으로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을 통과해냈다.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았고,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불행보단, 평화가 가득했다. 다른 이를 품어주고, 안아주며 오히려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할머니의 손녀들은 모두 할머니를 위대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불행을 온 몸으로 끌어안고도 사랑하기를 선택한 한 개인의 경이로운 삶이다. 



우리 삶에 찾아오는 현실을 우리는 통제할 힘이 없다. 그걸 알기에 평가를 내리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만들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두려워서. 때론 '어차피 해도 안돼'라는 말로, '현실이 진짜 개같아'라는 불평으로. 이것은 통달도, 해탈도 아니다. 마음대로 안돼는 삶이 두려워 피하는 것 뿐이다. 



우리는 현실을 통제할 힘은 없지만, 신뢰할 수는 있다. 이 현실을 통과할 '나'를. 온 몸으로 받아들여도 결코 스러지지 않을 '나'를. 나에게 찾아오는 현실을 평가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얻게 될 깊은 평화를 신뢰할 수 있다. 두려움과 불안이 없어야 평화가 찾아오는건 아니다. 두려움과 불안이 있어도 평화로울 수 있다. 그것에 좋고 나쁨을 부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 자체가 평화이다. 



24년 우리에게 또 어떤 일들이 찾아올까. 알 수는 없지만, 몰라서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남이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사랑하는 우리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은 자신의 현실을 온 몸으로 통과해 낼 힘이 있다. 그리고 그 삶을 끝까지 사랑하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남김 없이 비우고 사랑만 남기고 싶다. 줘도 줘도 끝없는 사랑의 화수분을 온 몸으로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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