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욕
모두의 실패 또는 성공의 요인. 그러므로 나의 가장 최악의 적이자 최고의 친구인 인정욕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인정욕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지금 곰곰이 생각하면 내 삶의 모든 큼직한 결정들이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하지만 나는 알지 못했던 인정욕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까. 내가 하는 말들도 예외는 아니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의 인생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하던가. 그렇다면 내 인생이라는 작품은 "나를 알아줘요"라는 색의 물감으로 온통 칠해져 있을 것이다.
최근에 들어서야 인정욕에 나를 그나마 완전히 맡기지 않게 되었다. 인정욕과 단둘이 마음속에서 깊은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를 손에 쥐고 흔들었던 이 원수 같은 내 자식인 인정욕은, 애정결핍이었다는 것.
인정욕을 알아차려주고, 경청해주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욱하지 않는다. 나처럼 인정욕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싶지 않다면, 이 욕구를 인정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결실을 알아봐 주길 원한다는 이 속삭임을 애써 무시하지 말고, 들어주는 것 말이다. 가끔 우리는 이 속삭임이 얼마나 지대한 힘을 가졌는지 잊는다. 고작 인간의 이 알량한 욕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역사의 순간들이 바뀌었는가? 수많은 위인들, 혹은 악인들이 그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에 빠진 채 선택들을 내린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잔잔한 호수에 던져져, 파장을 일으킨다.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정욕은 우리 삶에 아주 자주 소소하게 끼어들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자꾸만 신경 쓰이게 하는 작은 소음처럼 인정욕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너의 진가가 널리 알려져야만 한다고 계속해서 말을 건다.
간혹 가다 이 속삭임은 갑자기 데시벨이 높아져 모른척할 수 없게 될 때가 있는데, 모른척하지 못한 순간들이 내 많은 후회들의 원인이 된다. 쓸데없이 나불거린 자랑 때문에 침대에서 얼마나 베개를 많이 때렸는지, 인정욕은 알아야 한다. 얄궂은 것.
그래도 인정욕의 이 속삭임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아주 좋을 때도 있다. 인정욕은 나에게 내가 하는 일을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동기를 선물해 준다. 아직은 너무나도 짧은 내 삶에서의 나름대로 가장 큰 성취들은 모두 인정욕에서부터 나온 것들이다.
위에서 인정욕을 '실패 혹은 성공의 요인'이라고 소개했는데, 이 실패 혹은 성공의 여부는 인정욕의 좋은 말들과 나쁜 말들을 구분하는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데시벨이 높아지는 소음의 인정욕은 건강치 못한 인정욕의 말들이다.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인정받으려 하는 충동적인 행동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인정욕이 작은 소리로 꾸준히 내는 반복되는 소리는, 높은 확률로 우리의 내면이 진심으로 원하는 인정이다. 인정욕이 우리 마음을 대변해 주는 소리. 이 소리는 귀 기울여 들어주어야 한다. 인정욕이 우리에게 꾸준하게 반복해서 전달해 줬듯, 우리도 꾸준히, 반복적인 방식으로 인정의 욕구를 채워주려 노력해야 한다.
"나를 알아줘요."
인정욕이 말한 것을 나는 그동안 듣지 못했다. 어쩌면 듣지 않으려고 했나 보다. 인정욕이 하는 말을 들어버리면 나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했기에. 그렇지만 이제는 아니까. 인정욕이 나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많이 도와주었다는 것을. 너를 알아달라는 말, 들어줄게. 너는 떼어낼 수 없는 밉고도 고마운 나 자신이니까.
영화 <Chicago (시카고)>, directed by Rob Marshall (롭 마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