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바람과 웅덩이
나는 그간 따가운 비를 피하려 우산을 꺼내 들었고,
시린 바람을 막으려 바람막이를 걸쳤고,
미적지근한 웅덩이에 발이 젖지 않으려 장화를 신었다.
사실 그저 비와 함께 녹아내리고,
나무의 흐느낌을 따라 바람과 긴 산책을 하고,
웅덩이의 운율에 맞춰 정적을 노래하며 춤을 추면 되거늘.
어쩌면 나는 비보다 따가운 시선을 피하려 우산을 꺼내 들었고,
바람보다 시린 말들을 막으려 바람막이를 입었고,
웅덩이보다 미적지근한 관심에 젖어들지 않으려 장화를 신었던 것이니라.
부디 이 비가 나를 녹여주고,
녹은 나를 바람이 업어 정처 모를 여행을 떠나 주다가,
웅덩이에 나를 포근히 내려주길.
그러면 나는 가장 순수한 형태로
들리지 않을 노래를 부르고, 보이지 않을 춤을 출 것이다.
두려움이 묻지 않은 맨몸으로 진정한 자유를 되뇌다,
끝나지 않을 듯 끝날 이 장마처럼 아쉬운 마음으로 행복을 속삭이며 잠에 들 것이다.
영화 <菊次郎の夏 (기쿠지로의 여름)> directed by ビートたけし (기타노 다케시), 1999.
菊次郎の夏菊次郎の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