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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

고요한 절망

by 이시현

눈을 감으려 해도 감아지지 않는다.

보이는 건 오직 공허뿐이다.

나는 두려움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

눈을 감고 다 잊고 싶어도 항상 마음에 남아있다.


무기력은 압력이 되어 나를 힘껏 짓누른다.

귀가 저려오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러나 살아남으려 애써 팔을 휘젓지 않는다.

암흑 속에 서서히 잠기는 걸 그저 느끼기만 한다.


빛이 나를 비추는 순간에도

내 몸은 계속해서 가라앉고 있다.

행복은 한순간이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두렵다.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빨리 지나간다.

하지만 시간을 길게 붙잡아두려 하지는 않는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떠나보낸다.


그렇지만 모순적이게도,

나는 이 모든 것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무언가 나를 여기서 건져주기만을 기다리며 천천히

깊이 잠수한다.






영화 <Évolution (에볼루션: 새로운 탄생)>, directed by Lucile Hadžihalilović (뤼실 하지할릴러비치),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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