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무슨 색이에요?

엄마가 초록색이었으면 좋겠어.

by 반짝반짝 민들레

야야(구 딸기모찌)와 냐냐(구 우유모찌)는 아직 공기가 차가운, 봄이 되기 직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27개월. 그 전까지는 집에서 가정보육을 해왔다. 쌍둥이라 어린이집 일찍 보내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지만, 그래서 15개월에 보낼 기회가 오기도 했었지만 직접 원에 전화해서 어린이집을 취소했었다. (이후 공포의 18개월 전후를 맞이하며 살짝 후회도 했다) 그리고 둥이들도 열심히, 엄마인 나도 열심히 한 해를 성실히 보낸 후 작년에 미처 보내지 못했던 그 어린이집에 감사하게도 아이 둘 다 입소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와서 이번엔 놓치지 않고 입소를 시켰다.


왜 어린이집이 천국이라고 하는지 이전엔 몰랐다. 3월 한달까지도 몰랐다. 왜냐면 3월 한달동안 낮잠을 안재웠으니까. 그 이후에 낮잠자고 간식까지 먹고 하원하니, 삼시세끼에 간식까지 올려드렸던(?) 나의 과거가 생각나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아이들은 원에 적응하면서 지독히도 아팠다. 3월 마지막 주부터 감기에 걸리기 시작해서 어느 주엔 병원을 나흘을 다녀오기도 하고, 약을 달고 살았다. 그러다 날이 좀 더워지기 시작하며 감기가 조금 사그러드나 싶더니, 광복절을 기점으로 야야와 냐냐는 계속 번갈아가며 아팠다. 그래서 1주일을 가정보육을 했는데, 아이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너무 힘들었다. 끼니지옥, 병수발지옥, 징징지옥 등등.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얘들아, 어린이집은 선생님들도 많고 친구들도 많고 장난감도 많고 정~말 재밌는데, 너희는 어린이집 안 가고 싶어?"

그랬더니 야야가 한다는 말이, "어린이집에는 엄마가 없잖아요."

집에선 심심해서 멍 때리는 시간도 꽤 되고, 그러다 짜증나면 온갖 짜증을 다 표출하고. 본인들도 힘들건데 그래도 엄마가 있는 집이 좋다니. 그런데도 난 '가정보육 1주일 이상은 아니된다'고 속으로 계속 중얼대기나 했다. (정말.. 정말로 힘들었다)



어린이집 적응 초반에, 귀여운 인형 하나를 받아왔다. 이름이 '마음이'란다.

다리가 4개인건지, 팔이 4개인건지 모르겠는 그 인형한테 달린 색깔 공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얘들아, 우리끼리 약속 하나 할까? 여기 주황색은 나 화났어요, 노란색은 나 슬퍼요, 초록색은 나 행복해요, 분홍색은 나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말이야"

그 후로 아이들과 나는 서로에게 "지금 무슨 색이야?" 라는 질문을 자주 했다. 어린이집에서도 선생님께 색깔 이야기를 했는지, 선생님께서 알림장에 색깔의 의미들에 대해 물어보셨다.

그걸 시작했을때가 28개월이었는데, 이제 32개월이 되었다. 닷새만 있으면 아이들이 태어난 지 1000일이 된다. 4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이제는 제법 나와 대화가 잘 된다.


저번 주, 하원 이후 돌봄 공백이 있어 단기돌봄을 이용했고 두 분의 선생님이 와 주셨다. 돌봄이용이 모두 끝난 뒤에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어제 오셨던 선생님이 좋아, 오늘 오셨던 선생님이 좋아?"

야야가 말했다. "어제 선생님."

"아, 그럼 야야는 오늘 오셨던 선생님은 싫어?" 좀 극단적으로 물어보니 현명한 야야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오늘 왔던 선생님도 좋은데 나는 어제 왔던 선생님이 더 좋다고 말하는거야."

그야말로 우문현답이다.


늘 엄마가 무슨 색인지 궁금한 아이들은 내가 조금이라도 화가 난 것 같아보이면 유난히 더 엄마의 마음 색을 물어보곤 한다. 그건 아이들이 우는 와중에도 마찬가지이다. 아까 자기 전, 땡깡을 한참 부리다 결국 울음보가 터진 야야를 보던 나도 속에서 그야말로 천불이 나 우는 아이를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그랬더니 엉엉 울면서도 "엄마 지금 무슨 색이에요?" 란다. "엄마 지금 주황색이야." 라니까

"엄마가 초록색이면 좋겠어요..." 라며 마저 엉엉 울었다.

약삭빠른 냐냐는 옆에서 "엄마 지금 남색이야, 남색." (좀 더 색이 업데이트 되어 남색은 힘들어요, 가 되었다) 이라며 한마디 보탰다.

그 모습들을 보니 '에휴...' 싶어서 "엄마 이제 초록색 됐어. 이리와봐." 하고 우는 야야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아이들이랑 있으면 많이 덥다.

출산하고 난 후에 이전에는 없었던 지옥불같은 더위를 얻었더랬다.

그런데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엔 아무리 열대야라도 크게 덥지가 않다.


아이들이 있기 전엔 브람스를 특히나 좋아했고, 차이코프스키도 좋아했다. 단단하고 든든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묵직해지는 그런 느낌이 참 좋았다. 그런데 이젠 모차르트 이상으로는 듣지 못하겠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전공자가 음악을 편식하면 되나. 싶어서 쇼스타코비치의 무슨 음악을 들었는데 정신이 너무 없어져서 얼마 못 듣고 꺼버렸다. 가장 많이 듣는 작곡가는 바흐, 모차르트. 헨델이나 아예 바로크 시대의 음악도 좋고 르네상스 음악도 종종 듣는다. 고전은 하이든, 모차르트까지인 것 같다.

베토벤도 2악장류는 차분하고 좋은데, 불 붙은 듯 정열적인 느낌은 내가 아직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나는 그래도 지금 초록색이다. 듣는 것이야 짧은 인생 내가 좋은 거 듣다 가면 되지.

아이들은 정말이지 내 인생에 더 없는 초록초록,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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