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아저씨 어디 있어요?
아이들이 32개월 되고부터 미디어를 조금씩 노출하기 시작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영상을 보여주면 왠지 나중엔 조건반사가 될 것 같아서 그냥 틀어주고 싶을 때 음악영상이나 그림책 영상을 20분 내로 틀어주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빠진 영상은 2017년 빈 필의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라데츠키 행진곡이다.
나중에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우리가족 모두 신년 음악회에 가서 신나게 박수치는게 이 어미의 작은 소망인데, 야야와 냐냐는 요즘 이 라데츠키 행진곡 영상을 보며 신나게 박수를 치고 있다. 음악소리가 작으면 "엄마, 지금은 박수 안 쳐요?" 하고 소곤대다가, 이내 음악소리가 커지고 두다멜이 모션을 크게 취하면 짝!짝!짝!
두다멜의 표정이 매우 풍부해서 아이들도 재미있는지 두다멜이 보이지 않으면 "지휘자 아저씨 어딨어요?" 하면서 계속 두다멜을 찾는다.
약 30개월 넘는 기간동안 우리집 거실 티비는 장식품 상태로 있었다. 아이들이 자면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 시간을 티비로 태울 수는 없다. 우리집 고양이도 나를 기다리고, 자기 전 음악도 들어야 하고, 활자도 조금 눈에 담고 자려면 아이들 취침 이후 두 시간은 순식간이다.
그러다 이제 티비도 제 역할을 하게 되니 뭔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 남편한테는 "이사가면 거실에 티비 없앨거야. 그냥 애들한테 아예 티비를 안 보여줄까봐." 라고 선언했지만, 아이들 30개월즈음 됐을 무렵부터 슬슬 악기들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라데츠키 행진곡을 시작으로, 신나는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 경쾌하기 그지없는 카르멘 서곡, 그야말로 악기들의 초호화 향연인 꽃의 왈츠.. 그리고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볼레로.
딸들은 악기 중 바이올린이 가장 좋단다. 그래서 1/16사이즈 바이올린을 사줄까.. 고민을 했지만 우선은 귀여운 키티가 그려진 장난감 바이올린을 사주었다. 요즘 한창 오케스트라 영상을 좋아하면서 또 서로 바이올린 장난감을 안고 다니겠다고 투닥투닥 싸우고 있다. 내년에 유치원 들어가면 그땐 리얼 바이올린을 사주고 되든 안되든 긋는 방법이라도 일러두려고 한다.
"이거 엄마가 좋아하는 음악이에요?"
음악을 틀어두면 종종 아이들이 나에게 물어본다.
"응. 이거 엄마가 좋아하는 음악이야."
"그럼 엄마는 기분이 초록색이에요?"
어김없는 색깔 질문. "응. 엄마는 이거 들으면 기분이 너무 초록색이야." 하면 활짝 웃는 예쁜 아이들.
좋아하는 걸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뿌듯하다.
먹을 것이나 물건으로 나누는 기쁨이 아니어서 더 좋다.
하마터면 없어질 뻔한 티비도 되살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