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의 난이도 스네어
아이들이 처음으로 문화센터 발레 수업에 참여했다. 12월생인 우리 아이들은 아직 만3세가 되지 않아 올해까지는 어린이집이나 열심히 보내야겠다, 생각했지만 어느 날 냐냐가 나에게 발레 포즈 비슷하게 보여주며 "엄마 이게 뭐게?" 하길래 애들아빠한테 말하니 당장 문화센터 대기를 걸어두라고 했고, 꽤 기다린 후에 둘 다 등록할 수 있었다.
이전까진 한 번도 문센(문화센터)에 다녀본 적이 없었다. 가정보육 할 때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봐주신 돌봄선생님께서는 문센에서 하는 것들 이상으로 아이들과 여러가지를 집에서 다 해주셨다. 20개월을 아이들을 봐주셨으니 지금 현재 32개월 인생 중 절반 넘는 기간을 돌봄선생님과 함께 한 것이다. 선생님과의 마지막 날, 나는 선생님 앞에서 오열을 했다. 아이들을 이만큼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 선생님 없이 어떻게 아이들을 볼까 걱정도 되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 이상 좋은 선생님은 만날 수가 없다. 아닌게 아니라, 저번 주 단기 돌봄으로 모셨던 두 분의 선생님은 정말이지 선생님을 잘 만나는 게 얼마나 큰 복인가, 너무나 깨닫게 해주신 분들이었다. 그래서 단기돌봄이 끝나고, 돌봄선생님께 안부 겸 아이들 발레복 입은 사진을 보내드렸는데 정말 기뻐해주셨다.
발레복도 미리 입어보고, 발레슈즈도 미리 신어보면서 잔뜩 신이 났던 야야와 냐냐는 정작 발레수업에 가서는 드러눕고, 울고, 엄마한테만 안겨있기만 했다. 하필 이 날 야야는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지 못해서 잔뜩 피곤하고 예민해 있었기 때문에 평소같으면 웃어 넘길 상황에서도 냅다 울기부터 했다. 나도 머리로는 '아이가 피곤하니까 그렇지' 생각하면서도 옆에 할머니가 같이 앉아있는데 둘 다 엄마한테만 달라붙어서 칭얼대니 화가 슬슬 올라왔다. 나중에는 어떻게든 엄마한테 붙어있겠다는 아이를 계속 옆으로 밀어내면서 "너 자꾸 이러면 그냥 나갈거야." 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또 미안해져서 미리 준비해둔 꼬마 약과를 입에 넣어주고, 어르고 달래서 겨우 40분의 시간을 채웠다. 이 날 야야는 자기 직전까지 오열을 하다가 곯아떨어졌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힘든 건 내 감정 컨트롤을 빠르게 해야 한다는 것, 또 예측 불가능한 일들도 자꾸 벌어진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 신생아 때의 기억이 많이 없다. 어떻게 새벽을 버텼지? 싶고, 사진첩을 봐도 아이들 사진이 많이 있지 않다. 신생아들은 산후관리사님들이 계실땐 너무 잘 자고 잘 먹고, 관리사님들이 가시기만 하면 어떻게 알고 남편 퇴근해서 오는 시간까지 울고 잠도 안 잔다. 남편이 퇴근이 늦은 직업이라 나 혼자 11시 넘어서까지 매일 울면서 버텼으니 당연히 그 힘든 시기를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아이들이 크면서 나도 조금 요령이 생기고, 나와 너무나 잘 맞는 돌봄선생님과 함께 육아를 하니 육아난이도가 훅 내려갔다. 이게 뭘까, 생각해보니 '예측 가능한'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도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많이 운다. 그렇지만 그건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감정 컨트롤도 처음엔 너무 힘들어서 병원과 상담의 힘을 빌렸다. 아무리 둥이 육아가 힘들다고 해도 나 정말 분노조절장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느껴서 약도 먹고 상담도 받았는데 결국엔 내 기초체력이 제대로 받쳐주지 않아서였다. 아이들을 키워야하니 어찌저찌 키우기는 하지만 날 전혀 다스리지 못하는 상태였으니 안 힘들리가 없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그렇다고 아이들한테 화 나지 않는 거 아니고 몸이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나도 단련이 되었고 조절도 할 수 있고 웬만큼은 예측도 할 수 있으니 나아지지 않았을까.
내일이면 아이들 태어난 지 1000일이다. 아까 배고파서 감자전 하나 부쳐서 소심하게 무알콜 맥주를 홀짝이며 볼레로 연주 영상을 보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스네어 드럼이 눈에 들어왔다. 그 곡은 스네어가 정말 극악의 난이도일 것이라고 평소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내 그동안의 1000일을 떠올려보니 스네어 주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나는 이 육아랑은 전혀 맞지 않는다며 밤마다 친정엄마한테 울면서 전화했던 시간들, 잘 되어가다가도 어긋나서 혼자 베개에 머리 박으며 자책하던 시간들, 그리고 손발도 마음도 맞는 사람들 만나서 조금씩 익숙해진 시간들.
나는 그렇게 볼레로 스네어 드럼 주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대체.. 라벨은 어떤 마음으로 스네어를 약 15분동안 같은 리듬으로 쭉 연주하게 만들었을까.
무서운 라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