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케도 잘 버텨주었다. 1000일.
나는 결혼을 빨리 한 편이었다. 신혼생활과 동시에 시작된 대학원 생활은 '나 하나도 감당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저 멀리까지 뻗어나가게 해주었다. 그래서 일찍 결혼한 것 치고는 아이를 늦게 가졌다.
이제 정말 아이를 가져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한지 약 3개월만에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그 아이들이 바로 지금의 야야와 냐냐 되겠다.
난 내가 무척이나 예민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되려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민한 내가 딸을 키운다? 생각만 해도 힘들 것 같았다. 남편과 아들 묶어서 놀러 보내놓고 나는 좀 내 시간을 가져야지, 라는 생각도 했었다. 외동아들 하나만 두신 시어머님과 종종 통화하면 '아들 낳고싶다'는 말을 꼭 했는데, 어머님은 그때마다 딸이 더 낫다며 정색을 하셨다.
임신의 기운은 아무튼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쎄하다'라는 표현이 좀 맞으려나. 아무튼 쎄해서 임테기로 먼저 확인을 한 뒤에 바로 병원에 갔는데 피검사 수치가 무척 높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유가 쌍둥이어서..)
5주때 임신을 확인하고 그 다음주에 초음파를 보러 갔다. 남편이랑 같이 갔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산부인과에 남편은 출입할 수가 없어서 나만 초음파를 봤다. 의사 선생님께서 "음, 잘 있네."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고 인사드렸는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어? 이게 뭐지?" 하셨다. 그 순간, 내 심장은 급작스럽게 빨라졌고 도대체 무슨 일이지 싶고 무서웠다. "뭐... 뭐가 잘못됐나요...?" 딱 이렇게 질문드렸다.
"뭐야, 와! 쌍둥이다!" 의사선생님의 탄성.
"네? 안되는데요?" 라고 받아쳤던 기억도 난다. 정말 안되는 일이었다. 상상도 못했다. 아니, 그냥 임신은 모체 하나에 태아 하나. 늘 이게 맞다는 입장이었는데 쌍둥이라니. 내가?
병원에서 나와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근처 스타벅스에서 컵을 사왔다. 저쪽에서부터 헤실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오빠.. 쌍둥이래."
정말 이 말을 꺼내는 그 순간의 기분이 아직도 생각난다. 너무 절망적이었다. 내 인생에 아이는 딱 하나라고 생각했고, 성별까지 욕심내면 나쁘지.. 싶었지만 이왕이면 아들이길 바랐다. 그냥 그런 생각으로 초음파 보러 갔던건데 너무 엄청난 이야기를 들어서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리는 기분이었다.
남편과 난 집으로 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진짜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정확히 이틀 뒤, 남편은 두 아이를 잘 키워보자고 날 위로했다. 별로 와닿진 않았다. 8주차에 아이들 심장소리 들으러 오라고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그 2주의 시간이 나에게는 정말 끝도 없어보이는 땅굴을 파고 또 파는듯한 그런 시간들이었다. 잠도 잘 안오고 우울하고 눈물만 났었다.
어쨌든 2주를 그렇게 보내고 심장소리를 들으러 갔다. 그런데 이 아이들 심장 bpm이 178로 똑같았다.
"아주 잘- 있습니다." 라고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딱 그때, 뭔가 내 마음이 손바닥 뒤집듯 확 바뀌는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 쌍둥이 임신에 호의적이었나, 생각해보면 딱 그때였다.
그리고 성별확인을 할 수 있는 16주까지.. 남편은 맹목적으로 기도했다. 제발 딸둥이를 주세요.
"오빠.. 이미 성별은 정해져있어. 그렇게 해봤자 소용이 없다니까?" 라고 손사래 쳐도 그때의 남편은 '딸둥이'에 너무 꽂혀 있었다. 본인이 꾼 태몽이 딸둥이 태몽이니 (앵두 두 자루가 나왔었다) 무조건 이 애들은 딸일거라고. 그렇게 소소하게 재밌고 행복한 임신 초기를 잘 넘기고 성별확인 날, 남편은 "둘 다 뭐가 안보이네." 라는 의사 선생님 소견에 오열을 하며 감사하다고 한 스무번은 인사드리고 병원을 나왔다.
임신기간은 일란둥이를 품고 있는 몸이었어서 배가 너무 크고 무거워 아주 즐거웠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음악도 아주 많이 듣고 책도 많이 읽고 우리집 고양이랑도 돈독한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했다.
출산을 하고 아이들을 돌까지 키우면서 남편이랑 정말 많이 싸웠다. 둘이 살 때는 싸울 일이 없었는데 쌍둥이를 키우면서 서로의 바닥을 너무나 많이 보게 되었달까. 최악까지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 시기엔 '과연 저런 사람이랑 어떻게 앞으로 50년 이상을 살지' 라는 생각을 매일 했던 것 같다. 돌 이후엔 다른 힘듦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돌 전까지는 거의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댔는데, 돌잔치를 기점으로 많이 좋아지고 두돌이 지난 이후엔 또 다른 힘듦이 왔지만 신생아때 그리고 돌 전까지의 힘듦보단 낫지 않나 싶다.
확실히 아이들이 크면 좀 낫다는 말이 맞긴 한 것 같다. 지금은 그래도 아이들과 소박하게 티키타카도 되니까.
나는 아이를 둘이나 키울 그릇이 못 된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치만 아주 이 다음에 나에게 또 다시 생이 주어진다면, 나는 이 두 아이들을 낳을 것이다.
분명 그때가 오면 '둘은 오바다..' 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그래도 이 두 아이들이 아니면 안된다.
그 누구보다 아이들을 별로 안 좋아했던 나와 남편이지만, 또 낳는다면 꼭 지금의 우리 아이들이어야 한다.
1000일. 뭔가 첫돌, 두돌보다 더 와닿는 '1000일'.
그냥저냥한 엄마를 둔 내 딸들아. 축하한다.
남편 너도 축하하고, 나 자신아.. 정말 잘했다.
얼굴에 밥풀 묻었다고 하면 "엄마 이따가 배고플 때 먹으라고 붙여놨어." 해 주는 사랑스러운 내 딸들.
아무도 사가지 않는 꼬마 트리의 마음이 슬플 것 같다며 "내가 트럭 가지고 가서 꼬마 나무 사오면 되지." 하는 배포 큰 32개월 내 딸들.
고맙고 사랑한다. 앞으로도 잘 해보자. 이 어미 좀 많이 가르쳐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