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무서운 아기호랑이들
아이들과 자기 전 책을 읽었다.
애들 이모가 전래동화집을 선물해줘서 또 새 책이라고 좋아라하며 관심 갖더니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가지고 와서 읽어달라고 했다.
얼마 전, 아이들이랑 뒹굴거리며 누워 놀다가 생각나는대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중 두 가지가 <흥부놀부>와 <해와 달이 된 오누이>였다. 흥부놀부는 제비 다리를 부러뜨린 놀부가 나쁘다고 했다. 그리고 문제의 오누이 이야기에서는 호랑이가 엄마를 꿀꺽 하는 게 너무 싫다고 야야와 냐냐 둘 다 오열을 했다. 그래서 도중에 이야기를 멈췄지만 '그래도 해피엔딩이야' 식으로 대충 좋게 이야기 마무리를 지었다. 엄마 잃은 측은한 오누이한테 해피엔딩이 웬 말이냐 싶었지만 그래도 '해와 달이 되었으니까 다행'이라는 어이없는 결론을 내며 울던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오늘, 그 내용을 또 읽어달라고 책을 들이민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한글을 알지 못하니 대충 책표지 그림을 보고 가져왔겠지만 난 호랑이가 엄마를 꿀꺽 했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얘네들은 울 것이다, 예상이 되었다. 역시나 호랑이가 나쁜짓을 했다고 말하고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호랑이가 엄마 옷으로 갈아입고 등장하는 장면에서 야야는 크게 터졌다.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애 우는 거 보고 나까지 울 수밖에 없었다.
"야야는 왜 그렇게 많이 울었어?"
"호랑이가 (엉엉) 엄마를 (엉엉) 꿀꺽해서 싫어 (엉엉) 그럼 이제 엄마 못보잖아 (으어엉)"
정말 눈물이 났다. 엄마가 있는데 왜 울어, 하고 야야를 꼭 안아주었다. 옆에서 냐냐는 "내가 지켜줄게 야야" 하길래 "그럼 엄마는 누가 지켜줘?" 하고 정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던졌더니 아이 둘 다 "내가! 내가 엄마 지켜줄거야!" 했다. 작디작은 얼굴에 너무나 아기낙엽같은 빨간 입술로 당당하게 엄마를 지켜준다고 말하는 그 모습들을 보니 이건 사랑스럽다로 표현이 안 될 정도의 벅참이 확 올라왔다.
지켜준다니. 지킨다는게 무얼 뜻하는지 우리애들은 알려나.
요즘들어 많이 느낀다. 분명 내가 애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애들이 나를 더 많이 사랑하고 있을거라는거. 나를 그만큼씩이나 사랑해달라고 한 번도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이런 고결한 사랑을 과연 이렇게나 듬뿍 받아도 되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애들은 나를 너무나 맹목적으로 사랑해준다. 이게 맞나? 생각해보다가 내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나도 엄마가 내 전부였던 때가 있었다. 엄마가 빨래 개키는 모습만 봐도 재밌고 기분 좋았던 그 때 그 시간들.
오늘 서울스카이 갔다가 우연히 딸둥이 아버님이신 택시기사님을 만났다. 기사님의 딸둥이들은 둘 다 결혼하셨단다. 키우시는 내내 너무 행복하셨다고. 집까지 약 5분 남짓 되는 시간이었지만 기사님은 신호가 걸릴때마다 우리 애들을 보시며 정말 활짝 웃어보이셨다. 그 모습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도 한 30년 뒤엔 저런 부모의 모습이려나...?
벌써 닷새만 있으면 33개월이 된다. 빨리 자란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글렌굴드의 골드베르크 1955년 음반이 생각난다. 나는 너무나도 당연히(?) 81년 음반이 좋지만 어쨌든 지금의 우리애들은 55년 음반같이 활기차고 시끄럽고 사랑스럽다.
엄마 안 지켜줘도 되니까 세상을 조금만 천천히 알아가자.
꽤 오랫동안 호랑이를 무서워해주면 좋겠다. 내가 어미로서 내어줄 건 크게 없지만, 뭐가 무섭고 두렵다고 하면 언제든 뜨뜻한 품은 내어줄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