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모녀의 등원 전 병원길

너희들... 정말 큰 거니?

by 반짝반짝 민들레

어젯밤, 냐냐가 목이 아프다고 했다.

종종 목이 아프다고 '관심 끌기용'으로도 말하기에 물어보았다.

"목이 어떻게 아픈데?"

그러자 양 손을 쫙 펼치고 "이렇게 아파. 따끔따끔해." 했다.

아이들의 병원은 늘 등원하기 전에 가기 때문에 가기로 마음 먹었으면 그냥 가면 되는 것이었지만, 차도 없이 유아차도 없이 애 둘을 각각 한 손씩 잡고 병원을 오가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열에 대여섯번은 애들아빠가 동행해주는데, 출근하는 사람을 아침부터 더 피곤하게 하기 싫어서 굳이 병원간다고 말을 꺼내진 않았다.


"어떤 병원 갈거야?"

"손등에 도장 찍어주시는 선생님한테 갈거야!"

아이들이 다니는 병원은 두 군데 정도인데, 한 군데는 대기가 어마어마하지만 약이 잘 듣는 편이고 (결국은 약이 세다는 것) 한 군데는 애들 아주 아기때부터 다니던 곳으로, 대기는 크게 없지만 바이러스 검사나 수액주사 등이 갖춰지진 않은 작은 곳이다. 후자의 병원이 아이들 손등에 도장도 찍어주고 의사선생님-간호사선생님-약사선생님 순으로 비타민 캔디를 수금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에 아이들은 그 곳을 더 좋아한다.


아침에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먹이고, 등원준비 하기 전에 비타민C젤리와 유산균캔디로 유인(?)해서 꽤 수월하게 두 아이를 입혔다. 어린이집 가방이랑 낮잠 가방은 우선 놓고 가자, 빠른 판단을 하고 아이들 어깨도 내 어깨도 모두 가뿐하게 해서 집을 나섰다.


꽤 추운 월요일 아침이었다. 약 670m 되는 거리를 두 아이들 손을 양쪽에 잡고 걸어야 한다. 우리집 유아차는 웨건인데 애들이 요즘 좀 길어져서 웨건 태우는 게 더 힘들고, 운전을 할래도 어느 소아과나 주차가 곤란했다. 그래서 그냥 걸어가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어린이 보호구역의 횡단보도에서는 정지 깃발을 들고 계시는 할아버지가 반갑게 아이들을 맞아주셨고, 어느 집이 이사를 가는건지 아주 커다란 이삿짐 차가 길 한쪽에 버티고 서 있었다. 냐냐는 큰 차를 무서워해서 자꾸 무섭다며 내 손을 계속 꽉 잡았고, 야야는 본인이 지켜줄거라며 입으로 가드해줬다. 가는 길에 아주 작은 승용차를 보고 그림책에 나오는 아주 작은 토끼 '꼬뭉이' 같다며 깔깔댔다.

그렇게 웃음을 총총총 떨구며 도착한, 도장 찍어주시는 소아과.


냐냐는 그냥 목이 살짝 부은거였다. 그 진료를 보는 내내 이전과는 다르게 정말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키가 1m도 되지 않는 작은 아이가 진료의자에 떡하니 앉아 의사선생님 지시를 아주 잘 따르는 모습이 꽤나 깜찍했다. 두 아이 모두 손등에 만족스러운 도장을 받고 비타민캔디까지 챙겨서 병원을 나섰다. 약 타러 간 약국에서도 "여기 있는 건 전부 약사선생님 물건이니까 눈으로만 봐야해." 라는 내 주문을 잘 따라주었다. 약사선생님께서도 비타민 캔디를 건네주셨는데, 그때 냐냐는 오늘 오전 중 처음으로 짜증을 냈다.

"야야가 가진게 더 좋단말이야!!!"

순간, 비타민캔디를 다른 캐릭터로 바꿔달라고 했던 이전의 어떤 부모님이 떠올랐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렇게 하고싶지는 않아서 냐냐에게 말했다.

"냐냐야, 나중에는 냐냐가 좋아하는 걸 선생님께 직접 말씀드려볼까? 오늘은 이걸 가지도록 하자. 늘 냐냐가 하고싶은 걸 다 할 수는 없는거야."

냐냐는 순순히 수긍했다. 너무 다행히 약국 선생님도 지켜봐주시기만 하셔서 감사했다. 그렇게 약국에서도 볼일을 끝마치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는 오늘 너희들한테 너무 감동받았어. 어쩜 그렇게 언니같이 진료도 잘 받고, 의사선생님 물건 만지지도 않고, 약국에서도 눈으로만 구경 잘했어? 정말 언니같다!"

그러자 냐냐가 물어보았다. "엄마, 감동이 뭐예요?"

"감동이 뭐냐면, 너희들이 오늘 정말정말 멋지게 행동해서 엄마 마음이 아주 크게 행복해진거야. 감동 많이 받았어."

야야와 냐냐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나의 대답을 듣고 눈꼬리가 가늘어지는게 보였다.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많이 컸을까.

혼자서 애 둘을 병원에 데려갔던 적이 오늘만 있진 않았다. 이전에도 몇 번 급해서 다녀오긴 했었지만, 다녀오면 너무 진 빠지고 애들은 말도 안 듣고 힘들어하고 나도 결국엔 폭발하고..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180도 달라진 모습이어서 아직까지도 어안이벙벙하다. 세 돌을 찍고 또 생각이 훅 큰 것일까?


그러기엔 오늘 새벽에 나의 수면권을 상당히 침해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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