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의 세 번째 봄

너희들 참 많이 컸다.

by 반짝반짝 민들레

아이들이 쑥쑥 자라 이제 28개월이 되었다.

욕 나오는 18개월을 지나, 지금은 욕 더 나오는 28개월. 바로 그 '이십팔'개월인것이다.



올해 3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는데, 딸기모찌(1호)는 적응을 금방 했고, 우유모찌(2호)는 한 달 넘게 적응기를 거치고 나서야 이번주 월요일부터 겨우 적응이 됐는지 울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이 기관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가정보육 할 때 전혀 걸리지 않던 감기에 호되게 당하는 중이라 안쓰럽긴 하지만, 27개월동안... 난.. 할 만큼 했으므로..... 하하.



오늘 오전엔 오랜만에 남편이랑 약 70% 진 석촌호수 벚꽃을 구경하러 갔다. 어제 남편이 급 석촌호수에 벚꽃을 구경하러 가자고 하길래 "벚꽃 약 70% 졌을걸?" 했더니, "약 70% 사람들도 없겠지" 라고 답해서

아, 그렇구나...!를 외치며 기분 좋게 승낙했다.



남편과 약 850여일만에,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나란히 석촌호수 산책길을 걸었다. 석촌호수 서호 쪽으로 내려가면 바로 보이는 무대인지 광장인지 그곳에서 호수를 내려다 보았는데, 노랗고 커다란 잉어가 여유롭게 움직이며 물이끼를 먹는 것 같았다.

호수 위로는 벚꽃잎이 눈처럼 떨어져 있고.

날씨는 아주 쨍하지 않고 적당히 맑음.

석촌호수 전체를 크게 쭉 훑어보았더니 며칠 전까지 아주 파스텔톤으로 화사했던 벚꽃나무들의 색이 오늘은 살짝 톤다운되어 차분해 보였다. 이 쪽이 더 좋았다. 여기서 더 좋은 건, 꽃잎이 모두 지고 초록빛으로 변한 벚꽃나무 사이로 비치는 투명한 햇빛을 받으며 기분좋게 산책하는 그 순간.

그 순간이 조만간 올 거란걸 어제보다 좀 더 따스해진 공기를 통해 담뿍 느끼고, 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의 언어는 날이 가면 갈 수록 더 고오급이 되어서 이제는 종종 나(엄마)를 어이없게 만든다.


우유모찌는 22개월부터 서너단어를 조합해서 꽤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딸기모찌는 그다지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아 너무나 걱정된 나머지 언어센터에 상담을 예약하고 아이를 데리고 갔다.

좀 급한감이 없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일란성 쌍둥이를 키우다보니 한 명은 말을 잘 하고 다른 한 명은 말을 잘 못하는 게 엄마로서 조급했다. 그리고 아이한테 문제가 없을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냥 그 '문제 없다'는 말을 전문가한테서 듣고 내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다. 그래서 갔던 센터에서는 당연히 '문제 없다'는 결론을 들었고, 나는 그 후로 딸기모찌한테 전혀 조급함을 느끼지 않았다. 정말 이상하고 신기한 건, 센터 다녀온 그 다음날부터 아이가 갑자기 두어단어를 연결해 말하려고 노력하더니, 24개월이 됐을땐 우유모찌보다는 부정확한 발음이지만 뭔가 말 하는 게 재밌어진 아기가 된 것 같아보였고, 지금 현재는 내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다.



몇개월 전, 가족이 산책을 나갔는데 우유모찌가 아빠 손을 잡고 공원을 같이 걷다가 아이 아빠가 "ㅇㅇ이 지금 뭐 보고 있어?" 하고 물으니 우유모찌 왈, "초록초록 풀 보고, 파란 하늘 보고, 그리고 아빠 보고 있지." 하더란다. 남편이 평상시에 뭐에 감동받는 성격이 아닌데, 이 얘기는 한 며칠간 얘기 꺼낼 때마다 눈을 번쩍였다.



저번주에는 동네 놀이터에 마실 나갔다가 떨어지는 벚꽃들을 우유모찌가 이렇게 가만히 보더니 "기분이 안좋아" 하길래 "왜 기분이 안좋아?" 물어보니 "꽃이 바닥에 자꾸 떨어져서 불쌍해" 라고 했다. 계속 그걸 보면서 "불쌍해... 불쌍해..."를 읊조리며 본인 주머니에 꽃들을 자꾸 담아대니 옆에 있던 딸기모찌가 "바람이 쌩 불어서 꽃이 떨어지는거야" 라고 친구를 위로(?)해 주었다.



어제는 우유모찌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차를 보더니 "아니, 왜 차들은 눈을 뜨고 잠을 자는거야?" 라고 해서 날 또 어이없게 만들었다. 딸기모찌는 매일마다 날 보며 "엄마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러 갈거야" 라고 한다.



귀여운 이 생명체 둘은, 공원에 버려져 있던 민들레 한 송이를 집에서 만 하루 잘 키우고 그 다음날 민들레가 시든 모습을 보더니 "민들레가 너무 불쌍해.."하며 아침부터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



나는 28개월동안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 사이 아이들은 몸도 크고 생각은 더 많이 컸다.

본인들보다 연약한 존재들을 위해 눈물도 흘릴 줄 알고, 쌍둥이로 자라다보니 어쩔 수 없이 양보해야 하는 순간에는 쿨하게 양보도 할 줄 알고. 엄마아빠랑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며 몸은 힘들지만, 마치 내가 새로 자라나는 것 같은 설렘과 감사함을 느낀다.


물론 많은걸 내려놓게도 한다... 내 바닥이 어디까지인지도 알게 해 준다. 고맙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태어나도 이 아이들의 엄마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 아이들 덕분에 '나'라는 인간의 하드웨어 자체가 아예 탈바꿈한 것 같다.

아니, 소프트웨어도. 아니 그냥 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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