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애들이나 보라고요?

워킹맘, 전업맘. 눈에 보이지 않는 서로의 고충을 한번쯤은 토닥여줍시다.

by 반짝반짝 민들레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딸기모찌가 낮잠을 안자려고 해서 유희실에서 윗반 언니들이랑 같이 놀고 있는데, 그래도 괜찮냐고 물어보시기에 '아휴, 뭐 안자는거야 자기 몫이죠 하하하. 고생 많으세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고 끊으려는데, 선생님께서 근로자의 날 등원 여부에 대해 물어보셨다. 이미 수요조사서를 보내놓은 상황이라 왜 다시 물어보시는지 순간 궁금해져서 여쭤보았다.

"아, 수요조사서에 등원하겠다고 표시했는데 다른 이유가 혹시 더 필요하신건가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급식이랑 뭐랑 뭐랑... 언급하시면서, 이미 수요조사서를 취합한 상태라면 그 자체로 그날 일손이 얼마나 필요할 지 결론이 났을법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으셨다. 들을수록 아리송하고 이상해져서 바로 여쭤봤다.

"맞벌이가 아니면 보낼 수 없는건가요?"

그랬더니 그건 아니란다. 그럼 그게 아니면 무엇일까. 대충 전화를 끊고 찝찝한 기분이 들어 남편이랑 상의해보고, 먼저 어린이집에 보낸 동기들에게도 물어보았다. 내 동기들 대부분이 전업맘이라 나랑 입장이 같아 좀 더 현실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는데, 어쨌든 결론은 '보육이 필요하다면 맞벌이든 아니든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도 수요조사 안내문을 읽고 이렇게 이해를 했다. 그리고 우리 집은 보통 내가 아이들 가정보육을 할 때는 사람을 써서 같이 아이들을 보든지, 그 날 시간이 되는 친정식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든지 한다. 혼자 착착 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아이 둘을 짜증 하나도 없이 하루종일 웃는 얼굴로 돌보기란 나에겐 절대로 어렵기도 하거니와, 정신이 없어서 밥도 전혀 못 먹는다. 그래서 수요조사서가 왔길래 냉큼 보육 신청한다고 체크를 해서 아이들 편으로 보냈는데 이런 연락을 받은 것이었다.


좀 더 구체적인 답변을 얻고 싶어서 자주 들르는 맘카페에 이런 사정을 글로 올리고 댓글을 기다렸다. 이번에 기관에 처음 보내는 초보학부모라, 내가 혹시 실수한 게 있다면 당연히 정정하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보통 긴급보육은 맞벌이 가정의 수요로 인해 돌아가는 것', '실질적으로 긴급보육은 맞벌이에 연차도 못 쓰는 가정을 위한 게 맞다'라는 좀 적대적인 답변이 달렸다. 내가 알던것과 달랐다. 긴급돌봄이라는 게 꼭 맞벌이들만 이용할 수 있는게 아니라 우리집처럼 둥이들을 부모 중 혼자 봐야하는 가정 또한 충분히 이용이 가능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긴급돌봄이 마치 맞벌이들의 전유물인양 월권행위를 하는 모습에 기가 찼다.

꽤 오래 드나들던 카페였는데 그냥 미련없이 탈퇴했다.


(탈퇴하기 전에 약이나 바짝 올리고 탈퇴할까, 별 유치한 생각들을 다 했다. 예를 들어 - 벌이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셔서 뾰족하신가본데, 집에서 뒹굴뒹굴 노는 제가 긴급보육 이용한다고 하니 부아가 치미시는가봐요. 노여움 푸시고 한푼이라도 많이 버시옵소서 - 같은, 초딩들도 안 할 것 같은 유치한 말을 할까 말까... 한 2분 고민하다가 그냥 말았다. 잘 참았다 나 자신.)


나는 전업이지만 워킹맘들의 고충을 너무나 잘 안다. 내가 이렇게 애들만 키우기에도 정신이며 육체며 고단한데, 워킹맘은 그 허울 좋은 '워킹맘'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과 한숨이 오갈지.

언젠가 돌봄선생님과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워킹맘이라는게 누구 좋으라고 생긴건지 모르겠어요. '워킹맘'이라고 하면 으레 '돈도 벌고, 살림도 하고, 애들도 보는 엄마'라고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 그렇게 알아듣잖아요? '워킹대디'는 잘 안쓰이는데, 왜 '워킹맘'만 말 그대로 '워킹맘'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워킹맘은 밖에서도 돈 벌어오고 집에서도 육아, 살림직접 하면서 사람 쓸 돈 세이브 하니까 결과적으론 돈 버는 거 아니에요? 그럼 워킹맘은 투잡인데, 도대체 이런 프레임을 누가 만들어놓고 일하는 엄마들 대다수를 고통스럽게 하냐는거죠."

날이 선 이야기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전업인 내가 봐도 워킹맘은 너무 힘든 역할이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저 일을 겪고 나니, 어째서 다 같이 연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헐뜯는 것인지가 너무 궁금하고 또 속상했다. 누가 더 힘든 역할인지 그걸 따져서 득 될 게 없는데, 서로 다르지만 사회 전체로 봤을 땐 반드시 연대해야 하는 두 무리가 왜인지 서로를 너무 싫어한다.


어쨌든 결론은, 난 근로자의 날에 사람을 쓰기로 했다. 꾸역꾸역 나 혼자 보면서 애들한테 엄마의 감정 진폭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아까 하원하러 가서 담임선생님께 근로자의 날 보육 신청 취소해달라고, 가정보육 하겠다고 하니 선생님께서 무척 당황하시면서 아니라고, 꼭 보내달라고 하셨지만 이미 그런 말을 들은 상태에서 애들을 보낸다는 것도 어지간해서는 안될 일이라 그냥 말았다.


실질적으로는 무슨 실질적으로...ㅎㅎ







keyword
작가의 이전글쌍둥이의 세 번째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