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변했어요.

부부이야기

by 작은청지기


우리는 캠퍼스에서 선후배로 처음 만났다. 선교단체 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그 인연은 연애로 이어졌다. 나는 132cm인 척추 장애인이었다. 결혼을 결심하고 아내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그분들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절제된 언어로 반대 의사를 전하셨지만, 아내에게는 훨씬 더 거친 말로 극심하게 반대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연애할 때 부모의 권면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장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들었다.


“엄마 말대로 살다가 정 아니다 싶으면 그때 이혼하면 되잖아.”


결국 우리는 처가 부모님의 반대를 극복하고, 두 집안 어른들이 함께 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결혼 후, 회사에서 10분 거리의 작은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아내는 서울에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오롯이 나만을 바라보며 집에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나는 집으로 달려가 함께 식사를 했고, 퇴근 후에는 신촌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먹으며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첫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무렵,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두 아들은 어느새 성장해 한 명은 취직을 했고, 둘째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정년퇴직 후 계약직으로 회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아내는 자녀 양육에서 벗어나 매일 아침 집을 나서 운동하고 친구들과 커피숍에서 힐링의 시간을 보낸다. 주말 역시 내가 눈을 뜨기도 전에 아내는 이미 친구들을 만나러 외출하고 집에 없다. 하지만 아내는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스로 용돈을 벌어서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럭저럭 살다 보니 벌써 30년이 지났다.


2011년 10월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부터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COPD 판정을 받고 24시간 산소기기에 의존해야 하는 삶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삶의 질이 떨어지고 활동이 자유롭지 않게 되었다. 아내와의 여행, 외출 등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2018년 1월, 인공호흡기까지 처방받게 되면서 아내와 각 방을 쓰게 되었다. 기계 소음 때문에 아내가 숙면을 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걸까. 그때부터 아내와의 대화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제 아내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은 저녁 식사 때 2시간 남짓. 그마저도 아내는 휴대폰을, 나는 TV를 본다. 가끔 함께 외출을 해도 아내는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카톡에 온 신경이 쏠려 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자유 시간을 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든다.


4년 전, 서울 외곽에 작은 아파트를 샀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내가 은퇴하면, 건강을 고려해 평지이면서 쉽게 주변을 산책하기 좋은 곳으로 이사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이사도 2년 뒤로 미뤄졌다. 이번에 세입자와 계약을 연장하겠다고 아내에게 말하면서 다음에는 꼭 이사 가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그곳에 가서 내가 우울증에 걸려도 괜찮다면 이사 가요. 어쩔 수 없지 뭐.”라고 했다.


"이 동네에서 햇볕이 잘 드는 집으로 이사 가면 되지 않아요? 계속 전세 살면 어때서?"

"조금만 나가면 평지도 많고 택시 타면 남산도 금방인데 왜 굳이 이사를 가려고?"


아내는 지금 이 동네를 떠나는 것이 너무 싫은 모양이다. 친구들과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이곳이 아내에겐 소중한 삶의 터전이 된 것이다. 하지만 원한다고 모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곽지역의 집값보다 더 비싼 전세를 부담하며 노후에 이사 다니는 것은 우리에게 버거운 일이 될 것이다. 아내 의견을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 안타깝다.


주말이면 햇볕 들지 않는 집에서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혼자 밥을 챙겨 먹는 생활이 평일에도 이어진다면 즐겁고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그래서 햇볕이 잘 드는 집에서 밝게 지내고 싶은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하지만 이것이 나만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아내에게 읽히나 보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불편해질수록, 삶의 질이 떨어질수록 사람은 점점 더 자신만을 생각하게 된다.


“당신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 마음도 좀 이해해 봐요.”


아내의 이 말이 내 마음을 깊이 찌른다. 모든 걸 다 이해해 줄 것 같은 부부 사이에서조차,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서로를 더욱 외롭게 만들고 움츠러들게 한다. 집에만 있으면 답답해하는 아내와 집에만 있을 수밖에 없는 남편. 고생스러웠지만 행복했던 그때를 그리워하는 남편과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진 아내. 우리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