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얼마 전 이직한 직장 후배 L대리 집에 회사 동료들과 함께 다녀왔다.
L대리는 정성스럽게 초대장까지 만들어 메신저로 보내왔다. 작년에 송년회를 했던 '절친끼리 모임' 멤버 2명에게 말이다. 이번에는 출산 후 육아 휴직 중인 S대리도 아들과 함께 참석하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멤버가 한 명 늘었다.
어려운 시기에 집을 사서 이사 간 후 줄곧 집들이 압력(?)을 받아오다가 이제야 초대하게 돼서 미안해했다. 그리고 절대 집들이가 아니라 '집초대'니까 부담 갖지 말고 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전 직장동료를 집으로 초대하는 분이 또 있을까?
우리는 1시에 만나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하고 나는 12시쯤 장애인 콜택시를 호출했다. 약속 시간에 10분 늦게 도착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내렸는데 입구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H대리였다. 남편이 모임 장소까지 먼 길을 차로 데려다주었다. H대리는 9개월 전쯤 출산 휴가 들어간다고 인사를 한 이후 처음 만났다. 품에는 왕자님이 안겨 있었다. 한편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며 인사를 건넸다. 초대받은 S대리다. 직접 차를 몰고 왔다. 자녀가 없어서 신혼처럼 재미있게 사는 후배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L대리와 인사하는 꼬마 숙녀가 보였다. 사진으로는 많이 봤는데 실물 영접은 처음이다. 훌쩍 커서 이제는 어린이가 되었다. 어린이집도 잘 다니고 발레까지 배운단다.
예쁜 딸의 격한 환영에 주인장과 인사하는 타이밍을 놓쳤다. 뒤늦게 남편과 인사했다. 신혼 초 회사 근처 아파트에 살 때 다른 직원과 함께 집들이 핑계로 갑자기 방문했었다. 그때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을 만나 인사한 기억이 났다. 오늘은 두 번째 만남이다. 남편은 친구와의 약속이 있다며 인사하자마자 외출했다.
L대리는 직장 생활과 육아를 동시에 해야 하는 워킹맘이다. 주말에는 쉬어야 하는데 우리 때문에 집안 정리하랴 음식 준비하랴 고생했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감사했다. L대리는 인사하자마자 조리대로 달려갔다. 음식 준비가 아직 안 됐단다. 배달음식도 괜찮다고 했지만 그래도 메인 디쉬는 조리를 해서 내놓고 싶다는 L대리의 따뜻한 마음이 감동이다.
아이들과 놀며 웃고 떠드는 사이 한 상 거하게 차려졌다. 우리를 초대한 L대리가 갑자기 식사 기도를 요청했다. 다들 교회도 다니지 않지만 기도 후에 '아멘' 소리는 꽤나 컸다. 동료가 사 온 화이트 와인과 함께 럭셔리한 식사를 함께 하며 그동안 각자 지내왔던 일상을 나눴고 우리와 함께 일했던 많은 분들을 언급하며 옛 추억을 맛깔나게 이야기했다. 지나고 나니 치열하게 해냈던 '일' 보다 함께 챙겨주고 재미있게 놀았던 것들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소중하게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시원한 커피를 먹고 싶다며 집주인에게 주문을 했다. 그런데 냉장고에 얼음이 준비되지 못했단다. 집주인이 통 크게 스타벅스 커피를 앱으로 주문했다. 아파트 앞에 있는 스벅에서 배달해 준단다. '요즘 젊은 분들은 집에서도 커피를 배달시키는구나' 문화 충격이었다. 조금 있으니 커피가 도착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돈만 조금 쓰면 정말 편한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스벅 커피와 함께 S대리가 사 온 명품 케이크를 먹었다.
오후 1시에 만난 우리들의 수다는 오후 4시를 훌쩍 넘길 때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아들과 딸은 떠드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깊은 낮잠에 빠져들었다. 오늘 모임은 특별한 주제나 목적이 없어서 좋았다.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날 괴롭히던 상사를 흉보기도 하고 수고하는 직원을 칭찬하기도 했다.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일했던 동료였다는 것이 그냥 좋았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월요일이 되면 다시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할 것이다. 그러다 보고 싶어지면 누군가 '우리 한 번 볼까요?'라고 메신저에 글을 남기고 시간 되는 사람끼리 다시 모여 수다를 떨겠지. 띠동갑 보다 더 세대차이 나는 선배를 초대해 준 후배들이 고맙다.
"다음에는 내가 초대해서 대접을 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