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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청지기 May 22. 2023

내가 업고 가겠습니다.

수학여행(8)




오늘은 경주의 유적지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고대 유적을 직접 와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구나... "


나는 평생 집, 학교, 교회, 병원만 다닐 줄 알았다. 집을 떠나 이렇게 관광을 다닌다는 것은 어린 마음에 상상도 못 했다. 태종무열왕능을 본 것에 좋았다기보다는 부모님을 떠나서 여행 왔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오후에는 반월성으로 올라갔다. 반월성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었다.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오르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많이 걸어야 하면 차에서 기다린다고 하래이.'


나는 선생님께 말씀 드렸다.

"저는 그냥 버스에 있을랍니더."


그러자 우리 반 반장이 나섰다.

"K는 내가 업고 가겠십니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니 괜찮겠나?

 내가 업고 가면 된다."


"아입니더. 저도 힘이 좋습니더."


"K는 나도 업을 수 있다."


반장뿐 아니라 여러 친구들이 앞다투어 나를 업겠다고 나섰다.


나는 결국 친구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반장의 등에 업혔다.

날씨가 더웠다. 당시 반장은 덩치가 좋았다. 하지만 나의 몸무게가 가볍다고는 하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땀을 뻘뻘 흘렸다. 한참쯤 갔을 거다. 옆에 있던 친구가 반장을 툭툭 친다.


"이제 내가 업을란다."


나는 그렇게 반월성에 올랐다.


우리는 반월성 잔디밭에서 둥글게 원을 그리고 앉아서 게임도 하고 장기자랑도 했다.


반 친구들의 사랑과 도움이 없었다면 모두가 웃고 떠들며 즐기던 반월성에서 관광버스에 홀로 남아 수학여행 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반월성 - 이 중에 어린 나도 함께 있다.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선생님도, 반장도, 친구들도 어느 누구 하나 나를 불쌍한 아이로 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저 몸이 불편한 친구일 뿐이었다. 내가 힘들어하면 손을 내밀어 주었고, 그래도 지치면 자신의 등을 내게 빌려 주었다. 내가 오늘날 사람 구실 하고 사는 것은 살아가는 인생 여정 속에서 내가 애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먼저 읽고 손 내 밀어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7년 5월 22일 (일) 맑음


오늘은 차로서 여러 고적들을 구경하였다.


관광버스를 대절하여서 석탈해 왕릉, 태종무열왕능, 황용사석탑, 포석정, 5능, 국립 경주 박물관, 화랑의 집 등을 견학하여 우수한 옛 조상들의 슬기와 재주를 공부했다. 어마 어마하게 큰 왕의 무덤들, 그중에서도 태종무열왕능은 푸른 동산을 연상케 했다.

특히 국립 경주 박물관의 여러 가지 진렬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다음의 석빙고, 반월성, 첨성대 등은 걸어서 견학하였으며 반월성을 가는 데는 종범이에게까지 업혀가기도 했다.

여러 고적을 답사하고 피곤한 발걸음을 돌려 경주 시내의 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같은 방의 친구들에게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를 해 주면서 오늘의 피로를 풀었다.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

아!

'어머니께서 지금도 나를 생각하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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