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눈물
퇴근을 앞둔 시간 한 여직원이 지나가면서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 인사가 평상시의 인사말이 아니었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니까 책상 옆 보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다음 주 월요일까지만 나와요."
"네? 이동하시는 게 아니었나요?"
나는 이 직원이 이동 이야기를 이전에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전환배치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놀랐다.
"아니에요. 이동도, 이직도 아니고
진짜 퇴사. 집으로 갑니다."
우리 사무실은 모든 직원의 자리가 오픈되어 있다. 중간 칸막이도 커의 없다. 그래서 자기 자리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이 날은 대부분 외근 중이라 직원들이 많지 않았다. 우리 사업부에서 10년 차 이상된 직원이 많지 않다. 이 직원은 몇 안 되는 9년 차 직원이다. 물론 육아 휴직 등으로 중간에 쉬기도 했지만 말이다. 나와 개인적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 함께 일했다는 이유로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하나씩 이야기해 주었다.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라 여기에 쓸 수는 없지만 그동안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속상했을지 내 마음이 먹먹해지고 뭐라 위로할 수가 없었다. 함께 입사했거나 친했던 동료들이 하나 둘 퇴사하고 난 후 그는 무인도에 홀로 남은 사람처럼 외로웠던 것 같다. 일의 강도가 강해지고 업무량이 늘어나도 꼿꼿하게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의 힘이 컸는데 그 기댈 곳이 없어진 것이다. 얼마 전에 승진까지 했는데 승진 이후 받은 심리적 부담감은 배가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 도중 눈이 빨갛게 충렬 되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 이런 직원에게 내가 무슨 말로 위로할 수가 있을까. 직원은 겨우 눈물을 참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동안 고마왔다고 했다.
요즘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에서 아직 회복이 더디다. 특히 우리 업계는 치열한 경쟁 상황 속에서 성장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회사는 매출이 늘어나지 않으면 비용을 줄이는 방법 밖에 없다. 비용을 줄이기 시작하면 직원들은 힘들어진다.
실적이 좋지 않으면 보고서가 늘어나게 되어 있다. 직원들이 퇴사를 해도 그 빈자리를 쉽게 매우지 않고 매워진다고 해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하는 신입 직원이 들어오는 경우 많아 기존 직원의 업무량은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증가한다. 남아 있는 직원들은 더욱더 힘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매출이 줄어든다고 업무량도 함께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매출 신장을 위한 대안을 요구하고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다양한 시도를 주문하게 된다. 이것은 직원들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단순 반복 업무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반응이 좋지 않으면 피드백이라는 명목으로 자기반성을 요구한다. 직원들의 직급에 걸맞은 결과물이 없으면 보직을 변경하는 강수를 두기도 한다. 이 경우 상당수 직원은 상처를 받고 회사를 떠날 결심을 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한 워킹맘이 스스로 퇴사를 결심하고 우리 곁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육아를 위한 육아 휴직을 모두 소진하고 더 이상의 휴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회사는 비영리단체가 아니다. 반드시 이익을 내야 유지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성과를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 될 수도 있다.
육아를 위한 다양한 배려를 회사는 하고 있고 팀동료들도 그분의 일을 나눠 맡는 등 돕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팀원이 야근하는 중에도 그는 일찍 퇴근해야 했고 이것이 누적되면서 다면평가의 결과가 긍정적이지 않은 면도 영향을 주었다. 조직의 분위기가 우호적이지 않다 보니 회사는 보직 변경`을 제안했고 결국 이 직원은 퇴사를 결심했던 것이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안타까운 상황들을 많이 직면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동료가 좋지 않게 퇴사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깨진 것은 오래되었다. 자신의 몸값을 올리거나 더 나은 환경으로의 이직은 반대할 이유가 없다. 우리 회사가 보지 못하는 것을 타 회사는 인정해 주고 대우를 해 주겠다는 것이니까 개인에게 있어서 발전된 이직은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몸담은 회사에서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이후의 계획도 정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그만두는 것은 퇴직하는 직원이나 보내는 직원들의 마음이 많이 아프다.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다. 세상은 냉혹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기업이 새로 생겨나고 문을 닫는다. 기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익을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조직에 속한 직원들도 자신이 누리는 것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아야 인정받고 그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줄을 세울 수밖에 없다. 남들보다 낫지 않으면 그 자리에 머물 수도 없다. 뒤로 밀려날 뿐이다.
여기에 워킹맘의 아픔이 있다.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진 분 보다 무거운 짐을 하나 더 지고 경주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아이를 맡길 어른이 주위에 없는 경우 더욱 일과 육아의 딜레마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오늘과 같은 퇴사와 경력 단절은 막을 수 없고 이러한 것을 지켜본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경제 여건에 따라 부침이 심하지 않은 공기업이나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경영 상황에 따라 약한 고리인 워킹맘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현실을 해결할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회사, 직원, 그리고 당사자 모두 서로의 입장과 여건을 이해하고 그 해법을 꼭 찾아서 육아와 일을 걱정 없이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육아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렇다면 반드시 이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 내야 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가와 기업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부모를 우대하고, 이것이 특별 대우가 아니라 당연한 것임을 함께 일하는 모든 직원들이 공감하고, 혜택을 누리는 워킹모와 워킹부는 업무 시간의 질을 높여 생산성을 향상하는 등 각자의 역할에 책임을 다할 때 기업 문화로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