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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청지기 May 26. 2023

천천히 산책하며 살고 싶다.

한울지 기고문



하나님의 은혜와 한울 가족의 기도로 직장생활 한지도 지난 10월 31일 자로 꼭 3년이 됩니다. 하루하루는 무척 힘들었지만 지난날들을 돌아보노라면 세월이 정말 화살같이 빠르게 느껴집니다.


처음 E회사 본부 전산실에 배치받고서 말단사원답게 궂은일을 앞장서서 했습니다. 저를 뽑은 이 회사에 결코 실망을 끼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고, 장애인이라고 의기소침해 있거나 특별한 대우를 기대하는 안일한 생각은 결코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먼저 입사한 분들은 모두 선배사원이었기에 철저히 예의를 다 했습니다. 보통 아침 8시면 출근하여 업무와 관련된 공부를 했습니다. 커피 심부름이나 복사, 신문 스크랩, 전화받기 등 귀찮은 일도 기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인사급여, 회계 팀에 소속이 되어 전 직원의 급여명세표, 급여봉투 출력하는 일 등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몇 개월 후 91년 7월부터 신규 브랜드의 판매관리를 지원하는 PC팀에 소속되어 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로 양평동, 답십리, 신도림, 구로구 등에 있는 신규 브랜드 사옥을 한 달에 2회 정도 방문하며 데이터 백업을 받고, 그들이 요구하는 사항에 관하여 의견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직접 하기도 했습니다. 요구 사항에 관해선 프로그램을 수정 또는 작성하여 공급해 주었습니다.


작년 여름입니다. 입사한 지 1년 반이 지나고 주임승진 교육을 한 달간 받으면서 무척 갈등을 했습니다. ‘내가 과연 입사할 때의 각오처럼 이 회사에 유익을 끼치는 일을 하고 있는가?’ 이때만 해도 직접 프로그래밍해 본 것도 없었고, 계속 팀장의 심부름만 하고 있던 터였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날 괴롭게 했습니다.


월요일마다 찬양과 성경공부를 하고, 겨울마다 스키장으로 4박 5일간 수련회가 있고, 가을마다 단풍 구경이 있으며, 매달 영화 관람 등 문화행사를 하는 회사, 휠체어 타는 동료 사원 1명을 위해 전국의 장애인 화장실 시설을 조사하여 그가 원하는 대로 해당 층에 화장실을 장애인 용으로 개조하고, 계단에 경사로를 설치하는 회사,.... 회사에 대한 불만은 없었으나, 입사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고, 함께 입사했던 친구들은 각 맡은 부서에서 제자리를 찾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볼 때면 회사에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회의와 실망이 무척이나 컸습니다.


결국 92년 6월 말 개인 인사고과표를 작성할 때 경리과로의 전환배치를 지원했습니다. 전산실장님과의 면담이 자연스레 이뤄졌고, 격려와 아울러 6개월만 더 일하면서 생각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해 10월 저의 팀장은 가정형편상 퇴사했고 제가 이 일을 홀로 떠맡게 되었습니다.


업무도, 책임도 몽땅 떠맡게 된 이 후로 몸무게가 쏙 빠질 만큼 열심히 일 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 소스를 출력해서 분석하고, 현장에서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공급해 주며, 퇴근 후에는 집에서 열심히 컴퓨터를 두들기며 부족한 부분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각 브랜드에서 발생되는 문제들을 직접 돌아다니며 해결해 주고, 회사 내 직원들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에도 강사로 나갔습니다.


변변한 실력도 없지만 열심히 뛰어다니고 공부하며 일해 가는 동안 각 브랜드에서 인정받게 되고, PC S/W와 관련된 문제만 발생하면 제일 먼저 저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금년 11월부터 신사복 사업부(구로동)에서 LAN (Local Area Network)를 구축하게 되어 책임자로 발령받게 되었다가 사내 출판팀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전산 전문인이 되길 포기하고 출판인의 새로운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E 회사에 취업 전 약 10개월간 인쇄업종 관련 일을 할 때 가졌던 전자출판업에 대한 꿈을 꾸었기에 3년간의 전산 경력을 포기하면서 까지 선뜻 출판계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오늘로써 출판사에서 일한 지는 4주가 됩니다. 겨우 업무인계를 받은 단계입니다. 그러나, 입사한 지 3년 만에 처음 맞은 한 팀의 팀장으로서 94년도 사업계획 작성 및 구체적인 업무 파악 등 오늘도 바쁘게 뛰고 있습니다.


비록 3년이란 짧은 직장 생활이었지만 저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처음엔 장애인이기에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장애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나를 선택한 회사의 유익과 나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회사 내에서 특별한 능력이나 기술이 있어서 서로 데려 갈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히 일하는 모습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프로 근성이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3년간의 전산 경험을 뒤로하고 새로운 분야의 출발점에 서서 막 출발했습니다. 이젠 제가 책임져야 할 사람도 생겼습니다. 모든 상황이 혼돈스럽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삶의 목표를 알고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을 신뢰하기에 가끔 쉬어가거나 넘어짐은 있을지언정 골인지점을 향한 저의 달음질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 이 글은 부산에 있는 한울장애인자활센터 6기생으로 1993.12.11 한울지에 기고한 글이다.




컴퓨터 파일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워드 문서 하나를 발견했다. "오늘도 뛴다"는 제목이었다. 파일을 열어 봤다. 내가 출판사로 발령받았을 때 쓴 글이었다. 전산실에서 개발자로 일하다가 출판사의 편집장으로 보직을 바꾼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나를 잘 아는 경영자의 비서 분이 출판사 편집장으로 추천했고 내가 동의했다. 그리고 최고 경영자 면담 후 승인함으로써 신속하게 인사 발령 처리가 이뤄졌다.


그저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책 읽는 것을 좋아했을 뿐 아무런 지식도 없었다. 어려서 그랬던 것 같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열심히 일했다. 번역자 섭외, 단행본 교정, 월간지 출판, 취재 및 기사 작성, 취재를 위한 지방 출장, 인쇄소와 비용 협상 등 실무적인 일은 팀원들과 함께 모두 의사 결정하고 진행했다.


함께 일했던 직원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딱 1년뿐이었다. 회사에서 출판사를 독립 법인으로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E 기업 소속 직원으로 일했지만 분사 후에는 새로운 법인인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게 되고 모든 급여 체계와 복지 정책도 출판사 기준으로 변경된다고 했다.


팀원들의 의견을 모아보니 일부는 E기업의 다른 부서로 전환배치를 희망했고, 일부는 남고, 일부는 개인 사정상 퇴사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해 결혼을 했기에 재정적 이유로 복귀를 결심하고 다시 전산실로 돌아왔다. 당시 신혼 초 아내는 회사로 복귀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전산실에서 일할 때는 업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나 출판사에서 일할 때는 표정도 밝고 매우 즐거워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나는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선택했고 30년이 지난 지금 그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안다.



이 글을 읽어보니 30년 전의 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나는 참 열심히 살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겁을 내지 않았었다.  어떤 환경이 주어지든지 나는 예스맨이었고,  모든 상황을 나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회사에서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고, 날마다 쿼리문을 짜고, 현장의 요구에 맞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개발자들과 소통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블로그 활동과 글을 쓴다.


주위의 친한 분들이 묻는다.


"글 쓰는 게 돈이 돼요?"


사람들은 '돈'과 연관이 되지 않는 '일'은 부질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돈'이 중요한 세상이니 틀린 생각도 아니다. 하지만 33년의 시간을 가장이라는 무게로 '돈'과 연관된 일에만 몰두했다면 이제는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해도 되지 않을까?  이제는 뛰고 싶지 않다.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정원의 꽃도 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천천히 산책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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