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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Jun 06. 2023

모디라는 이름의 고양이

그 녀석의 프로필


생년월일 : 2017년 5월 12일(집에 쳐들어온 날 기준)


묘종 : 한국고양이(치즈태비)


몸길이 : 기지개 켤 때 앞발 끝과 뒷발 끝 사이 약 1m(!)


몸무게 : 6.8kg


특이사항 : 크다, 뚱뚱하다, 힘이 세다, 몸통에 비해 머리가 작다, 코가 길다, 눈이 노란색이다, 겁이 많다,

                  성질이 더럽다, 철이 없다, 뒷발톱 하나가 비뚤어져 있다, 눈과 코에 점이 많다,

                  목소리가 덩치에 비해 가늘다, 많이 먹고 많이 싼다, 닭가슴살 간식에 환장한다,

                  한쪽 뒷발에만 치즈색 털이 살짝 묻어 있다 등등.




 이상이 우리 집의 뚱뚱이, 서열 1위, 월세방의 패왕, 쓸모없는 식충이, 가엾고 애처로운 것 등으로 불리는 모디의 신상정보입니다. 모디라는 이름은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에서 따서 제 동거인이 지어 주었습니다. 존경하는 예술가의 이름이라 저도 이 녀석이 뭔가 예술적인 영감을 불러일으켜 주겠거니 하고 생각해서 동의했지요. 그런데 모딜리아니는 평생을 비참하고 가난하게 살다가 요절한 사람이었기에, 삶이 이름을 따라간다는 속설이 마음에 걸려 처음에는 좀 더 번지르르한 이름으로 바꿀까 싶었습니다. 이를테면 모 슈퍼카 브랜드의 이름을 따 ‘람보’, 혹은 ‘라리’라고 짓는다든지, 돈 많고 유명하고 오래 살았던 다른 화가의 이름을 따 ‘피카’라고 짓는다든지 말입니다. 하지만 어감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행복한 전원의 모습을 담았던 또 다른 화가인 모드 루이스(Maud Lewis, 1903~1970)의 애칭과 합쳐 그냥 모디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영어로 한다면야 다르겠지만 한국어로 하면 이쪽이나 저쪽이나 모디니까요. 모드 루이스는 넉넉지 못한 형편과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최소한 생전에 어느 정도 인정받기도 했고, 모딜리아니보다 훨씬 평안히 그리고 오래 사셨던 모양이니 걱정도 좀 덜 수 있었습니다. 물론 속설은 어디까지나 속설일 뿐이고, 지금 돌이켜보면 동거인이 참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집사들이 부자는 못 될지언정, 모디가 배불리 먹고 마음껏 뒹굴거릴 수 있도록 바지런히 돌아다니니 이 녀석은 분명 행복하겠지요. 또한 예술적 소양은 없어도 존재 자체가 예술이라고 할 수 있으니 정말 성공적인 작명이라 하겠습니다.


엄격, 근엄, 진지.




 올해로 모디가 7살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그토록 순진하고 겁 많아 보였던 모디는 무례하고 체통 없는 아저씨로 진화했답니다. 몸무게는 거의 2.5배로 늘었고, 몸길이도 1.5배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지요. 2017년 10월 12일부터 저와 살기 시작한 모디는 원래 3kg가 채 되지 않는 말라깽이였지만 지금은 왜 7kg가 넘지 않는지 궁금할 정도로 근육질에 덩치가 큽니다. 잘 먹어서 커진 것인지 원체 큰 체격을 타고났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저와 동거인은 가끔, 아무도 없을 때 진짜 모디는 자유를 찾아 탈출하고 다른 고양이가 그 틈에 들어오지 않았나 하고 의심을 해 봅니다. 하지만 사진을 비교해 보면 일종의 표식과 같은 네 개의 이마 무늬, 코 옆에 서로 다른 크기로 자리를 잡은 치즈색 무늬가 똑같아서 바꿔치기가 일어난 것은 아닌 듯합니다. 한때 보다 입체적인 형태를 잡아 주었던, 얼굴 양쪽에 짙게 나 있는 줄무늬도 여전합니다. 얼굴에 살이 쪄서 이제는 심술궂은 인상을 줄 뿐이지만요. 이외에도 많은 모디만의 털 특징들이 있는데, 왼쪽 앞발에만 반쯤 완성된 손목보호대처럼 치즈색 털이 나 있다거나, 왼쪽 뒷발에 살짝쿵 치즈색 털 점이 찍혀 있다거나(이것도 살이 쪄서 예전보다 배 이상 커졌습니다), 왼쪽 다리에만 치즈색 양말을 신고 있다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모디는 갈색 무늬가 뚜렷한 편이고 몸 왼쪽에 치즈색 털이 쏠려 있군요. 그리고 푹 삭은 치즈색을 띠고 있는 짝짝이 털들은 저와 동거인의 좋은 놀림거리가 됩니다. 양말 한 쪽만 신었네, 녹은 치즈에 코 잘못 빠뜨렸네, 치즈 허겁지겁 먹다가 뒷발에 튀었네 하면서 낄낄거리다 보면 시간이 참 잘 가더군요.




 또 다른 특징으로는 콧대 옆 왼쪽 눈 앞꼬리가 오른쪽보다 더 아래로 내려와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마치 고대 이집트 화장법처럼 눈 뒤꼬리가 길게 뻗어 있다는 것도요. 또한 친구들이 항상 모디가 사람처럼 생겼다고들 하는데, 그것은 아마 콧대가 유독 굵고 기다랗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나비족’처럼 말이지요. 모디의 얼굴이 결코 그들처럼 고상한 편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비슷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다들 이 심술 가득한 얼굴과 제 얼굴이 닮았다고 말하더군요. 심지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요. 저의 욕심쟁이 인격이 발현된 얼굴, 제가 독재자가 되었을 경우의 얼굴, 무슨 일을 크게 겪고 인간불신으로 가득 차게 된 얼굴 등의 의견이 있었더랬지요. 황당할 따름입니다. 어디가 닮았는지 모르겠을뿐더러 그 예시들도 하나같이 인생이 좋은 쪽으로 풀린 얼굴이 아니에요. 게다가 저만 빼고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라는 점에서도 분통이 터집니다. 그나마 모디의 얼굴에는 고양이 특유의 귀여움이 담뿍 담겨 있기에, 그 자체만으로는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할까요. 확실히 모디라는 이름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특징들을 갖고 있지만 그것들이 고양이라는 종족 특성에 의해 아름다운 방향으로 버무려질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모디는 목소리가 가느다랗고 맑은 편입니다. 사람이 변성기가 오듯 모디도 나이가 들면서 목소리가 좀 굵어지거나 탁해질 줄 알았는데, 어렸을 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길고양이들이나 친구네 집 고양이와 있을 때 울음소리를 잘 들어 보니 다들 모디보다 훨씬 두꺼운 목소리를 갖고 있더군요. 심지어 모디보다 훨씬 작은 고양이들조차도요. 평소에 모디가 미야아앙 냐아아앙 한다면, 그들은 무여어엉 녀어어엉 하는 느낌이랄까요. 딱히 정확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저렇게 썼습니다만,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모디가 조금 더 굵고 낮은 목소리를 낼 때는 밥을 너무 급히 먹었거나 털뭉치를 토해 내기 직전, 화장실에서 안심하고 일을 보기 전 저를 애타게 찾을 때, 제가 씻으러 들어가서 불안할 때 정도입니다. 토하기 전에는 으워어엉 무아아앙 울고, 화장실 가기 전에는 꾸우우웅 울고, 머저리같은 집사가 제 발로 물지옥에 들어가는구나 하고 통곡할 때에는 느야아아아아아아아오오오옹 하고 길게 울어대지요. 사람도 감정에 따라서 사용하는 언어의 높낮이나 느낌, 단어가 달라지는데 고양이도 그러한가 봅니다. 모디가 기분이 좋지 않거나 불안한 상황에서 목소리가 낮아진다는 사실은 데리고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지나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달쯤 지나서 바로 서열 1위와 월세방의 패왕 칭호를 획득했기 때문입니다. 모디는 그때쯤부터 자기 기분을 거리낌없이 표출해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저음을 자신있게 내기 시작했지요. 안타깝지만 제가 너무 오냐오냐 키운 탓입니다.

 

 또한 밖에서 비둘기 소리가 들리면 모디는 냐냥냥 잉엥엥 시이이익 하는 사냥 준비 소리를 내곤 하는데, 반대로 이때는 모디가 얼마나 높은 소리를 낼 수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잔뜩 신이 나서 초고음의 살벌한 미성을 내뱉고 있는 모습을 보면, 방송에서 슈베르트의 <마왕>을 부르셨던 모 카운터 테너 성악가님이 떠오릅니다. 세 등장인물을 각기 다른 음역대로 소화하는 엄청난 기량을 보여주셨는데, 마왕이 노래하는 부분을 부르실 때의 무서운 표정과 날카롭고 서늘한 목소리가 놀라웠지요. 모디가 저 소리를 낼 때면 정말 비둘기들을 노리는 마왕이 따로 없습니다. 모디의 인상적인 목소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장점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모디에게 간택을 받을 당시 창고나 다름없던 제 방에서는 간혹, 아니 꽤 자주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감각이 좋은 모디가 단번에 알아차리고 사냥 준비 소리를 냈기 때문에, 모디의 시선을 따라가면 바퀴벌레를 놓치는 일 없이 매번 잘 처리할 수 있었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는 차원 이동이라도 한 것마냥 눈앞에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모기를 찾을 때 도움을 받기도 하지요.  

 

 아무튼 저를 간택할 때도 온갖 불쌍한 척을 다 하며 가늘게 우셨던 마왕님은 제 방을 온통 점령하고 마계소굴, 아니 냥계소굴로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벌레들과 비둘기들은 <마왕>의 아들처럼 공포를 느끼겠지만, 사람이라면 끌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이 목소리는 어떤 고양이들과 섞여 있더라도 모디를 구별하게 만들어 줄 것 같습니다. 모디라는 존재를 제대로 알려준다는 점에서, 저 미성 혹은 마성의 목소리는 확실히 가치를 갖고 있군요.




 이외에도 집사들만 구별할 수 있는 특징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만, 하나하나 나열하기는 어렵겠습니다. 한 집에서 지낸 지가 벌써 7년, 이제는 눈을 감고도 모디를 완전히 떠올리는 것이 가능하지요. 그래도 다시 보면 또 새로운 부분들이 보인다는 점에서 고양이는 진심으로 흥미로운 생물입니다. 앞으로 모디에 대한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해드리고자 하는데, 비록 난잡하고 볼품없는 필력이지만 이 글들을 읽으실 모든 분들이 가끔이라도 모디를 통해 행복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모디 덕분에 행복을 얻고 있듯이요.


때로는 다소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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