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지
함께 오랫동안 지내면 서로 닮아간다고들 합니다. 대상이 무엇이든지요. 심지어 물건조차도 사용자를 닮아간다는 말을 하는 이도 있는데, 각각의 손이 전부 다르듯 그 손을 탄 물건도 나름대로의 생김새를 가질 수밖에 없겠지요. 저와 동거인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전혀 다르게 생겼지만 사진이나 실제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둘이 몹시 닮았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꼭 외견만 닮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성격이나 습성, 사고방식도 어느 정도 비슷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저는 원래 성격이 아주 급하고, 투덜거리기를 잘하며, 움직이지 않으면 좀이 쑤셔서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대로 동거인은 성격이 굉장히 무던하고 정적인 데다가 마음만 먹으면 일주일 내내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오래 만나다 보니 둘 다 자기 안에 숨겨 두었던 면모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저는 이전처럼 제게 다가오는 일들을 모두 껴안느라 끙끙거리지 않아도 그럭저럭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최소한의 삶을 추구하게 되었답니다. 동거인은 말이 많아지고 좀 더 확실하게 자기가 표출하고 싶은 반응을 밖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되었지요. 또한 저는 빈둥거리면서 시간 죽이기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고, 동거인은 밖으로 나가 많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답니다. 각자의 성격 중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거나 힘들게 하는 점들을 천천히 제거하고, 안정을 찾는 방향을 잡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타고난 부분이 있다 보니 완벽하게 섞여들 수는 없겠지만 그런 점들은 서로 맞춰 나가면 잘 해결되지요. 함께 산다는 것은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니까요.
사람과 사람 간에도 이러하고, 고양이와도 마찬가지랍니다. 모디가 저와 외적으로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는 것은 이미 말씀드렸지요. 성격도 비슷하답니다. 저는 무엇을 정리할 때 글로 적거나 머릿속으로 다듬는 과정보다는 말로 중얼거리는 편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혼잣말이 상당히 많지요. 그나마 동거인과 살면서 혼잣말이 좀 줄어들기는 했습니다만, 모디와 둘만 살 때에는 매일 구시렁거리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답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도 생각 정리가 잘 되지 않아서 횡설수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라리 말을 계속할 수 있다면야 괜찮겠지만 저만 말을 늘어놓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 꼴을 늘 보고 산 모디는 집사가 자기에게 뭐라고 말하고는 싶은데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계속 저렇게 중얼거린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때부터인가 혼자 냐옹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볼 때도, 혹은 누워 있던 자리에서 다른 쪽으로 갈 때도, 화장실을 가서도 일단 목소리를 내더군요. 말이 정말 많아진 모디는 제가 잠에서 깰 때부터 자기가 잠들 때까지 쉴 새 없이 냐옹냐옹 꾸룩꾸룩 궤에엥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고양이 울음소리는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크게 울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렇게 말이 많은데도 한 번도 옆집에서 불평을 터뜨린 적이 없거든요. 만약 울림이 충분히 컸다면, 저는 아마 단독주택에 살거나 노숙을 했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모디는 덩치에 비해 정말 소심합니다. 겁도 많고, 사람을 대할 때도 재 가면서 친함을 드러내지요. 자기가 편하다고 확정을 내린 사람에게는 쉽게 다가가고 애교도 많이 부리지만,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가차없이 대합니다. 자기만의 선이 있다고나 할까요. 피가 날 정도로 물거나 할퀴지는 않지만 크게 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가장 강하게 응징을 한답니다.
사실상 모디가 대놓고 친근함을 표시하는 사람은 제가 유일하고, 제 동거인과도 아직 조금은 어색한 사이입니다. 그래서 생판 남이 모디에게 다가갈 때에는 조심스럽게, 천천히, 한 발짝씩 가까워져야 하지요. 문제는 그 선의 범위가 너무 좁다는 점입니다. 지나칠 정도로요. 모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순간 이성을 잃기 때문에 가뜩이나 좁은 그 선의 범위를 아주 세게 넘어 버리더군요. 만지고 싶은 뱃살과 궁둥이, 발을 앞에 두고 어떻게 그 유혹을 이기겠습니까만은, 모디가 그 기분들을 일일이 이해해 줄 리는 없습니다.
이런 모디의 성격도 저와 비슷합니다. 원래는 저도 사람에게 먼저 잘 다가가고 친해지는 편이었지만, 언젠가부터 그것이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 되어 버렸기에 집을 일종의 고립된 성역으로 만들어 버렸지요. 인간관계에서도 좋게 말하자면 선이 확실해졌고 나쁘게 말하자면 까탈스러워졌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사람을 초대하거나 들이는 일이 거의 없어졌고, 일 때문이 아니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지요. 그래서 모디는 동거인과 살기 전까지는 저 이외 다른 사람을 마주칠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만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조금만 수틀려도 참지 않고 바로 성질을 내더군요. 누군가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면 이후로는 누가 봐도 당사자를 싫어하는 눈빛으로 시종일관 경계 태세를 취하는데, 타고난 성격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제가 사회성을 더 떨어뜨린 것 같아서 착잡할 따름입니다.
하긴, 저도 사람을 오래 두고 보면서 마음을 열지 말지 고민하는데 덩치가 커 봐야 고양이에 불과한 모디에게는 커다란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겠지요. 겁쟁이 집사의 성격을 빼다 박아서 대체 어찌 살아갈지 걱정이면서도, 어차피 저와 평생을 살 것이니 제가 잘 다독이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게 모디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혹은 모디가 성질부리지 않고 마음을 열도록 조금이나마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저뿐일 테니까요.
동거인과 살면서 꽤 누그러지기는 했습니다만, 저는 원체 짜증을 달고 살았던 사람이라 쉽게 고쳐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성격유형검사에서도 확고하게 그런 쪽으로만 결과가 나오고, 제 스스로도 그렇다고 느끼고 있지요.
일단 하루의 계획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짜증이 나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몇 번을 말해도 상대가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짜증이 납니다. 계획은 얼마든지 틀어질 수 있고, 노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으며, 제가 설명을 제대로 못 했을 수도 있는데 말이지요. 이것이 참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결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모디도 저 못지않게 짜증이 아주 많아요. 제때 사료나 간식이 준비되지 않거나, 열심히 집사에게 말을 걸었는데 집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 주지 않거나 하면 바로 한 소리 하고는 하지요. 소심한데 짜증이 많은 이들의 공통점은, 다들 밖에서는 아닌 척을 하면서 안에서만 왕왕거린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고, 모디도 아마 자기가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니 저렇게 짜증을 내는 것이겠지요. 이 부분은 그냥 천성이 닮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모디 때문에 고생을 했지만, 동거인은 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짜증쟁이 둘과 함께 살면서도 하루하루를 별 흔들림 없이 넘길 수 있는 동거인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좀 본받아서 저도 나잇값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모디가 성격을 고치지는 않을 것이니, 저라도 고쳐야 동거인이 덜 고생하겠지요.
마지막으로 저와 모디는 둘 다 은근한 관심을 원합니다. 대놓고 관심을 주면 기피하고, 뒤에서 수군수군 관심을 주면 보이지 않게 씩 웃으면서 좋아하는 성격이랍니다. 소위 ‘관종’이라 하는 성격 중에서도 가장 악질이라는 ’낯 가리는 관종‘, ’은근한 관종‘입니다. 분명 관심은 받고 싶은데, 앞에서 관심을 표현하면 그 순간 도망치고 싶어집니다. 그렇다고 아예 들리지 않는 관심은 싫습니다. 어디선가 관심 어린 말들이 나오고 그것들이 제 귀에 작게나마 들려야 만족을 합니다. 정말 악질이네요.
모디도 직접적으로 애정을 주면 질색을 하는데, 머리를 툭 갖다대거나 부비적거리면서 신호를 보낼 때를 맞춰 관심을 주거나 멀찌감치서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면 좋아합니다. 이것, 병인 것은 확실합니다만 저의 경우에는 30년 넘게 맞는 약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고양이조차도 그런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생물종 전체가 걸릴 수 있는 병이며 오래 살아남은 병이라는 뜻이겠지요. 자존감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토록 찾기가 어려운지요. 이 부분 역시 아무래도 천성인 것 같으니 사람인 저는 저대로 열심히 스스로를 잘 다스리는 법을 찾고, 모디에게는 은근한 사랑을 더 많이 주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 주어야겠습니다.
아무튼 모디와 저는 천성이 닮은 부분도 있지만, 제가 모디를 바꿔 놓은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동거인과 지내면서 서로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듯, 모디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겠지요. 잘못된 부분은 고치려고 노력하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은 관리하면서 닮아가다 보면 더욱 행복한 고양이와 집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모디가 노력할 부분은 아니니 제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늘 힘써야겠습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할 수 있는 한 서로를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일이고, 고민은 저의 몫이니까요. 모든 집사분들과 고양이님들이 하루하루 행복한 닮음을 체험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