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없다 답이 없어
모디에게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못생겼다는 말입니다. 모디가 알아듣지 못해서 마음껏 할 수 있는 말이기는 합니다. 예쁘다는 말만 해도 모자랄 판에 왜 못생겼다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제 입장은 좀 다릅니다. 그 말은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고, 여러 가지로 생각할 여지를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디의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못생기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커다랗고 강인하게 위로 치켜 올라간 눈, 얼굴 가운데에 우뚝 솟아서 길게 뻗은 코, 위엄 있게 아래로 갈라진 입술, 적당하게 자리잡은 치즈빛 무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무슨 심적 변화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분명 어렸을 때에는 이목구비가 잘 보이는 선한 인상이었는데, 살이 투실투실 쪄 버린 이후에는 그냥 인상만 뚜렷한 악당이 되어 버렸어요. 지금도 얼핏 보면 상당히 잘생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못합니다. 매일 다채롭게 못생긴 모디는 미의식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의미의 미와 애정 간에는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지요.
일단 모디가 특히 못생겼을 때를 꼽아 보자면 어딘가에 머리를 기대고 잘 때, 식빵 자세로 졸고 있을 때, 집사들을 무엄하다는 눈으로 쳐다볼 때를 들 수 있습니다. 또는 입을 헤벌린 채 있을 때도 그러하지요. 모디는 기댈 곳만 있다면 염치없이 머리를 올려놓고 늘어지는데, 얼굴과 수염이 찌그러지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지요. 사람이 단잠에 빠져서 고개를 숙였는데 그만 턱살이 접혀 이중턱이 생겨 버리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식빵 자세로 졸 때에는 밀려오는 잠을 참을 수 없음에도 머리를 떨구지 않으려 애쓰는 와중에 짓는 표정이 있는데, 이목구비가 전부 얼굴 가운데로 몰리는 것 같답니다. 마치 전날 거나하게 마시고 숙취로 고생하는 아저씨처럼 보입니다.
집사들이 하도 기어올라서 엄히 훈계하고 싶을 때 모디는 얼굴 털을 잔뜩 부풀게 만들고, 입은 꾹 다문 채 눈을 부라리지요. 하나도 무섭지 않고 못생기기만 해서 오히려 볼살을 매만져 주고 싶습니다. 자기 털이나 발, 집의 구석, 혹은 집사들에게서 이상한 냄새를 맡으면 입을 애매한 넓이로 벌리고 혀는 살짝 내민 상태로 저를 빤히 쳐다봅니다. 소위 형용할 수 없는 아스트랄함이 느껴지는 얼굴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만 볼 수 있는 못생김이라 사진을 찍어 보려고 해도 매번 실패하는데, 언젠가는 꼭 성공하고 말겠습니다.
못생긴 모디를 보고 있노라면 <장자>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비유가 떠오릅니다. 아무리 사람이 아름답더라도 동물들에게까지 그 아름다움이 동일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비유 말이지요. 고양이가 어떻게 생겼든 외모에 대한 관점은 확실히 사람과 고양이 사이에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자기들끼리도 나름의 기준이 있을 것이고 사람과 같을 리도 없지요. 제가 알기로 수컷 고양이의 경우 머리가 크고, 몸길이가 짧더라도 다부지며, 굵은 선을 가진 고양이가 미남이자 대장의 자질을 갖고 있다더군요. 아무래도 과거 조상들이 살던 야생에서의 전투력이나 방어력을 기준으로 삼는 듯합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고양이 세계에서 모디는 확실한 추남입니다. 머리가 작고, 근육질이기는 하지만 몸이 길며, 전체적으로 낭창한 선을 갖고 있으니까요. 스스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미남의 조건은 단 하나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저와 동거인은 어떤 측면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저희 집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디의 외모를 찬양해 마지않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사람인 저와 동거인에게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모디를 보러 오기도 하지요. 제가 모디에게 못생겼다고 놀려줄 때면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이토록 예쁜데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역시 장자가 옳았습니다. 고양이들에게는 정말로 못생겼을지라도 사람에게는 모디가 못생겼다는 말이 전혀 와닿지 않으니까요. 무언가 크게 뒤바뀐 것 같기는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미의식이라는 관점이 얼마나 상대적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아무래도 저와 동거인은 아예 고양이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모디를 자주 볼 수 없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매일 붙어 있다 보니 좀 더 객관적인 미의식을 갖게 된 것이지요. 애초에 저런 심술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대체 어떤 고양이가 괜찮은 평가를 내려 주려나요. 장자의 말씀을 조금이나마 이해한 듯해서 기쁩니다.
하지만 못생겼다는 말이 꼭 놀리기 위한 말만은 아니며, 대상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사랑스럽다면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합니다. 그 말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면 반어법을 통해 애정 어린 관심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옛사람들도 이러한 반어법을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절에 아이가 귀신의 시샘을 받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라서 일부러 이름도 아무렇게나 지어 부르고, 예쁘다고 함부로 말하지도 않았다는 말이 전해져 오지 않습니까. 비록 대상은 다르지만 저희도 마찬가지로 모디가 건강하고 오래 살기를 간절히 소망하기 때문에 자꾸 못생겼다 말해 주는 것이랍니다. 너무나 귀하디 귀하게 여겨서 함께 있는 시간이 최대한 길기를 원하니까요.
그래서 저와 동거인은 시도 때도 없이 고양이의 입장과 사람의 입장 모두를 고려해서 모디에게 못생겼다는 말을 전합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도, 창 밖을 볼 때도, 기분 좋게 늘어져 있을 때도요. 이러한 반어법으로 인해 못생겼다는 말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해지며, 그 속을 사랑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된답니다. 고양이들은 어차피 사람 말을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 없으니 숨겨진 뜻과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할 텐데, 그런 의미에서 모디에게 못생겼다고 말해주면 줄수록 더한 사랑을 전달하게 되겠군요. 집사들은 말할 때마다 즐겁고 모디는 사랑을 듬뿍 받으니 일석이조입니다.
한편 귀여움은 너무나 강렬한 감정이라 일종의 중화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강렬함을 이기지 못하고 귀여워하는 아이를 꼭 한 번은 울린 다음,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지만 속으로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비록 방법은 잘못되었지만 그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는 해요. 저희도 뱃살을 꾹꾹 찌르거나 발을 쓰다듬으면서 모디를 괴롭히고, 모디가 성질이라도 낼라치면 다 네가 귀여워서 그러한다느니 원래 귀여우면 이럴 수밖에 없다느니 하고 적반하장으로 나서거든요. 그래도 모디를 울리고 싶지는 않아서 되도록 마지막 선은 넘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신 못생겼다는 말을 감정 중화 수단으로 쓰지요.
더 이상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괴롭히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이 타오를 때 못생겼다! 못생겼어요! 말할 수 없이 못생겼네! 해 주면 불길이 조금은 사그라드는 것 같더군요. 물론 얼굴에는 견딜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느라 히죽거리는 웃음이 가득해서, 모디가 보기에는 오히려 징그러울 수는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모디가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니 조금은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외적인 측면을 떠나서 모디가 내적으로 성숙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도 못생겼다는 말은 적합합니다. 무엇이든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니까요. 앞의 글들에서도 계속 이야기했듯 모디는 자신감이 과도하니, 꼭 조절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는 자신에게 하루 동안 몇 번이고 말을 건네는 노예가 있었다고 합니다. ’폐하는 인간이십니다’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심지어 개선식을 할 때에도 속삭였다지요. 역사적 사실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여부를 떠나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고권력자 역시도 언젠가는 스러져 버릴 인간이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철학자 황제라고 불리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도 자신이 인간에 불과함을 스스로 일깨우기는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그의 <명상록>을 읽으면서 참 많은 감동을 받았는데, 그토록 위대한 사고방식을 가진 이도 저렇게 어려워하는 일을 매일 뒹굴거리면서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내는 모디가 실천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저도 못 하는 일을 모디에게 하라고 하기도 우습고요. 그래서 저희는 모디가 자신의 귀여움에 지나치게 자만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그 노예가 했던 것처럼 하루에 몇 번씩이라도 말해 줄 작정입니다. 완전히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각심을 갖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이렇듯 못생겼다는 말은 아주 특별한 말이랍니다. 여러 가치들을 한꺼번에 담고 있는 위력적인 말이지요. 모디가 없었다면 아마 이런 생각들을 해볼 기회는 제 인생에 없었겠지요. 저는 스스로 외모에 자신감이 없는 편이라 못생겼다는 말 자체를 아예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편이지만 희한하게 모디에게만큼은 잘도 사용한다는 점이 신기합니다. 아마도 못생겼다는 말만큼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을 찾지 못해서 계속하는 것이고, 이만큼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해서 또다시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어차피 모디의 입장에서도 집사들의 생김새는 영 마음에 들지 않을 테고, 분명히 그 성격상 참지 않고 매일 집사들 못생겼다는 말을 해댈 것이 뻔합니다. 저희가 알아듣지도 못하니 더 열심히 하겠지요. 게다가 저와 모디는 닮기까지 했으니 서로 못생겼다고 말할수록 결국 피장파장, 사랑을 주거니받거니 하는 격이 됩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책에는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지요. 책을 쓰신 분이나 책에 나오신 분들이나 결코 못난 분들이 아니었지만, 제목만큼은 한 치의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못난 놈들끼리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삶은 매순간 흥겹고 사랑이 넘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