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곳에만 의심의 촉을 세우는 집사들
반려동물과 오래 살아 보신 분들이라면 요 녀석이 둔갑한 사람이나 그에 준하는 지성체, 또는 그 밖의 무엇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한 번쯤 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디도 고양이의 몸에 갇혀 있지만 저와 동거인의 말을 다 알아듣고(대부분은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희가 둘 다 밖으로 나가면 몰래 무언가 하거나 자기도 외출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매체에서 지성을 가진 반려동물들을 자주 접해서 그런 것일까요. 가필드, 스누피, 스쿠비 두, 크룩섕스와 같은 동물들이 마치 사람처럼, 때로는 사람보다 더 사람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내면에 소위 ‘합리적 의심’을 키우도록 합니다. 더구나 고양이들에 관한 의심은 아주 여러 방향에서 이루어집니다.
모디는 집사들이 출근하고 난 후, 방구석에서 슬쩍 스마트폰을 꺼내 전원을 켜지는 않을까요. 모디의 젤리는 스마트폰 화면을 조작하는 데에 아주 탁월한 기능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거든요. 어떻게 개통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발 불법으로 가지게 된 것만 아니었으면 합니다. 적발되면 제 지갑만 가벼워질 테니까요. 어쨌든 그렇게 스마트폰을 켠 모디는 종일 뒹굴거리면서 낄낄대겠지요. 누워서 보다가 얼굴에 떨어뜨려서 짜증도 내고, 충전해놓지 않은 채 그대로 잠들었다가 깨면 주섬주섬 충전을 해 놓기도 하고, 발열이 일어난 스마트폰은 따뜻하니 그 위에 식빵자세를 해 보기도 하고 말이에요.
그렇게 게으르게 하루를 보내다가 집사들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몹시 아쉬워하면서 얼른 방구석에 다시 스마트폰을 숨겨 놓겠지요. 저희가 퇴근하면 늘 스크래처 위에서 기지개를 켜는 것도 자기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고 능청스럽게 넘어가려는 수작에서 나온 행동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집사들이 깊이 잠들면 다시 꺼내서 화면 밝기를 최소로 줄이고 조용히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지겠지요. 밤새 스마트폰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해서 낮의 대부분을 잠으로 소일하는 것인지도요. 대체 어디에 숨겨 두는지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방구석 어딘가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어쩐지, 제가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을 때 쳐다보던데 그것이 다 부럽기 때문이었군요. 집사들은 대놓고 스마트폰을 하더라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니 말입니다.
주변 고양이들과 긴밀한 회의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스마트폰 메시지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래도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이미 저번 집에서 몇 번 다른 고양이들을 들여놓기는 했습니다만, 그때는 제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긴급 회의 중이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창틀이 튼튼한 집에 살아서 그렇게 극단적인 모임은 갖지 못하니 각자의 창문 앞에서, 혹은 담벼락 위에서 서로 틈틈이 정보를 교환하는 방향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설마 창문을 계속 보고 있는 이유가 길고양이들이 전달해 주는 최신 정보를 습득하기 위함일까요. 앞발을 핥거나 수염을 까닥거리거나 기지개를 켜거나 하는 고양이 특유의 행동들은 어떤 비밀스러운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암호 통신을 할 때처럼요. 그것도 모르고 저와 동거인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집사들은 그 모습도 귀엽다고 호들갑을 떨어대고 있었군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단체로 바보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비인간 생물은 고양이뿐일 것입니다. 주로 지구정복과 인간 노예화 방안에 관련된 것들이 회의 주제가 되겠지만, 성질 더러운 고양이들이 주재하는 회의라 그다지 결론이 빨리 나오지는 못할 듯합니다. 교과서에서 보았던, 토론에서 해서는 안 될 짓들이 전부 터지는 토론이 이어지겠지요. 갑자기 회의하다 말고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고, 졸리면 잠들어 버리고, 비둘기를 보면 정신이 팔려서 냐냥냥 소리를 내느라 방금 전까지 했던 말은 죄다 잊어버리고, 괜히 정보를 전달하러 온 길고양이에게 펀치를 날려서 둘이 싸움질을 하느라 회의가 진행될 틈이 없을 테니까요. 물론 스마트폰에 빠져서 회의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고양이들이 대부분일 것이고요. 인간이 어리석게도 고양이를 숭배한 지 몇천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고양이에 의한 지구정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가 저 제멋대로들인 성격 때문이라니, 자업자득이란 말은 이럴 때 써야 하겠습니다.
좀 더 비현실적인 의심은 어떨까요. 모디는 CG일지도 모릅니다. <매트릭스>에서처럼, 모든 것이 허상에 불과하고 모디도 저를 시스템 안에 잡아 두기 위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디를 구현하는 데에 기계들은 굉장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겠군요. 보송보송 털과 말랑말랑 뱃살과 쫑긋쫑긋 귀와 촉촉한 코를 표현하려면 수많은 계산이 필요했을 테니까요. 아니면 실제 모디는 별로 감동적이지 않은데 바라볼 때마다 경외와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기계들이 제 뇌세포를 조종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모디가 어딘가에 길게 늘어져 있거나 캣폴에 스핑크스처럼 도사리고 있을 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저토록 부드럽고 귀여운 것이, 어찌 저토록 쉽게 일상에 파고들어서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요. 혼자만 뚱실뚱실 이질적인 모습으로, 주변과 분리된 것처럼 존재하는 모디가 혹시나 정말로 CG는 아닐까 의심이 들면 한참을 쳐다봅니다. 그런 다음 모디에게 네가 CG가,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뱃살을 꾹꾹 찌르다가 혼쭐이 나기는 하지만요. 아직까지는 노이즈가 끼거나 뒤에 있는 사물이 비쳐 보이거나 갑자기 모디가 금속 덩어리로 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고차원의 시스템에게는 제 하찮은 눈을 속이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기에 그럴지도요. 하지만 만약 모디가 CG임을 알아챈다 할지라도 저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계속 평소처럼 살아갈 듯합니다. 파란 약을 먹고 여기에 남는 쪽을 선택할 예정이지요. 아무리 진실을 알 수 있다 한들 모디가 없으면 다 무슨 소용인가요.
의심이라고 하기에는 좀 이상하지만 모디가 전생에는 집사였고, 저와 동거인이 고양이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도 해 봅니다. 만약 그랬다면 저희는 사람이었던 모디를 상당히 심하게 괴롭혔던 모양입니다. 모디가 성질을 내는 꼴을 보면, 둘 다 전생에 꽤나 골치아픈 고양이였을 확률이 높습니다. 모디도 둘을 보며 다음 생에는 반드시 바뀐 상태로 태어나서 응징을 하겠노라고 이야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 그러고 있거든요. 만약 전생에 집사와 고양이였던 적이 없고 다음 생에 서로 바꿔 태어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조건 모디의 고양이가 되어 패악질을 부리고 싶습니다. 그러다가도 고롱고롱 소리를 내고 부비적거려서 마음을 녹인 후 다시 귀여움을 받는 삶을 살아 보고 싶군요. 동거인도 다음에는 고양이로 태어나고자 하던데, 그러면 사람이 된 모디는 매일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겠지요. 그것 참 깨소금 맛이겠습니다. 전생에 집사와 고양이로 만난 적이 결코 없어서 저희에게도 기회가 오기를 소망해 봅니다.
위에 나열된 의심들은 다 제가 실제로 해 보았던 것들입니다. 그마저도 다른 사람이, 특히나 고양이와 살지 않는 분들이 알아듣기에 무리가 없는 정도의 의심들이고 더 들어가면 끝이 없기에 나머지는 쓰지 않은 것뿐이지요. 의심을 하는 이유는 당연히, 모디가 지나치게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 세상 존재가 아닌 것처럼 보여서 그러하지요. 아무리 남들이 듣기에는 맥락도, 어처구니도 없을지언정 고양이와 오래 함께하면 이 정도는 결코 무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의심에 찬 눈초리를 하고 미간을 찌푸린 채 종알거리는 저를 한심하게 여기는 모디의 표정이 참 볼 만한 것은 덤입니다. 다른 집사분들도 오늘부터 다양한 부분을 의심해 보시면 어떨까요. 상상력이 과도하게 풍부해지는 경험을 해 볼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