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덕질의 즐거움
요즘은 그야말로 덕후들의 전성시대입니다. 매체와 기술이 발달하고 취향의 범위가 다양해짐에 따라 소위 덕질에 빠질 기회도 많아졌기 때문이지요. 덕질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사용된 지 얼마나 지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무언가에 푹 빠져 볼 수 있다는 것은 괜찮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도 있을뿐더러 마음을 위로받게 되니까요. 물론 정도를 넘어선 덕질은 지양해야겠습니다. 덕질을 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행복하고 만족스럽기 위함이고, 행복과 만족은 언제나 적절한 테두리 안에서만 얻을 수 있으니까요.
저와 동거인에게도 어느 정도 덕후의 기질이 있지만 각자의 취향이 확고하다 보니 서로 이렇다 할 접점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겹치는 부분이 있다면, 둘 다 털짐승들에게는 사족을 못 쓴다는 것이지요. 침대에 턱살이 접힐 정도로 푹 기대 늘어져 있다가 한쪽이 갑자기 우어어 오호호 하는 소리를 낸 뒤 스마트폰을 슥 내민다면 십중팔구는 아주 귀여운 털털이가 화면에 나타나 있답니다.
보통 소셜 미디어를 통해 털짐승들을 찾아보는데, 피드를 가끔 들여다보는 것으로는 무언가 아쉬워서 집사분들이 자기 반려동물의 모습을 공유하는 각종 계정들을 팔로우하게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고양이와 강아지를 주제로 만화나 그림을 그리시는 분들의 계정도 팔로우하고 있었고, 나도 한 번 모디와의 일상을 공유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든 후에는 여차저차해서 여기에 글을 쓰고 소소하게 그림을 그려 덧붙이게 되었습니다. 단순 덕질에서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지경까지 이를 수 있었던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바로 우리 모디에게 있답니다. 사실 모디 덕질을 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로 털짐승들을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반려인들의 마음이나 관련 지식에 관심도 없었을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와 교감하고 사랑을 한다는 일이 어떤 경험인지를 전혀 깨닫지 못했겠지요. 두 편의 글로, 집사들이 아이돌이나 다름없는 모디를 덕질하는 방법들에 대해서 써 보고자 합니다.
열혈 팬들은 늘 자신들의 아이돌을 직관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가끔 놀러 오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인가 봐요. 멀리서 볼 때에는 공연장이나 경기장 관객석에 있는 느낌으로 모디를 직관한답니다. 어렸을 적부터 너무 오냐오냐 예쁨만 받아서 그런 관심이 당연하다 못해 귀찮은 모디는 차갑게, 예의 없게 대할 뿐이지만 보는 사람들은 그저 좋다고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단체로 환각이라도 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요.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놀러 와서도 모디의 부루퉁한 표정만 보았다 하면 사족을 못 쓰고 행복한 소리를 내지릅니다. 고양이 덕질이 정신에 이토록 강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니요. 아니면 그저 모디에게 특별한 매력이 있어서 그러할까요. 당연히 모디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그래도 이런 수준의 반응은 심각하다고 말할 수밖에요. 모디만 마주하면 다들 정신을 못 차리니 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또한 모디가 좀 멀리 있을 때는 응원을 하기도 하는데, 집사들은 모디가 무슨 행동을 하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팔을 위로 들고 소리를 칩니다. 양손에는 장난감을 각각 들고 팔을 빙빙 돌리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치즈빛깔 뚱뚱이! 부드러운 뚱뚱이! 말랑말랑 뚱뚱이!라고 외치지요. 또는 마치 인도 전통 무용을 하는 것마냥 목을 좌우로 움직여대면서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하고 소리를 칩니다. 보통 모디가 화장실에서 화닥닥 뛰쳐나와서 모래를 사방에 튀겨대거나, 물그릇을 엎거나, 캣폴에 뛰어오르다가 박자를 못 맞춰서 엉덩방아를 찧거나, 스크래처에 발톱이 끼어서 낑낑거리고 있을 때 그러한답니다. 관절에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나도 그 순간의 희열을 광란의 춤으로 표현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습니다. 그리고 가뜩이나 당황스러운 상태에서 집사들을 바라보는 모디의 눈은 마치, 와 너희들 가지가지하다가 드디어 미쳐버렸구나 하고 말하는 것 같지요.
한편 모디가 가까이에 있으면 날카로운 기자가 되어서 대담을 시도하기도 해요. 마이크를 들이대는 시늉을 하고 왜 그리 뚱뚱하신지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귀여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집사들이 먹이고 재우고 응가도 치우고 온갖 뒤치다꺼리를 다 하는데 이에 대해 전하실 말씀이 있는지?라는 중요한(?) 질문들을 합니다. 성질은 불같지만 대처 능력은 좀 떨어지는 우리의 모디는 정중하게 질문했음에도 불구하고 귀를 뒤로 잔뜩 젖히고 자리를 피해 버리거나 손을 깨물어서 응징을 시도한답니다. 그러면 모디가 결국 침이라도 퉤 뱉을 기세로 노려보다가 침대 밑으로 내려가 버릴 때까지 압박을 가하지요. 방금 기자 폭행에 대해 하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당당할 수 있게 만드는 본인만의 철학이 있다면? 자신이 귀엽다는 것을 어느 정도나 인지하고 있나요?라는 등의 질문을 하면서요. 진지한 대담 시간을 몇 번 가졌음에도 지금까지 모디에게 이렇다 할 답변을 들은 적은 없습니다만, 언젠가는 꼭 해명을 얻어내고 말 작정입니다.
모디를 실컷 직관하고 응원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팬사인회에 온 듯 기쁜 얼굴로 숭배의 절을 올리며 마무리를 합니다. 물론 뚱뚱이님 절 받으소서 하면서 정수리로는 일부러 모디의 얼굴을 꾹 누르기도 하고 그 틈을 타 포갰던 손을 몰래 내밀어 앞발을 만지기도 하고요. 팬사인회에 왔으니 반드시 사인을 부탁해야겠지요. 지금껏 심기를 거슬렀으니 이제는 분풀이를 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드려야 하겠고요.
모디의 사인은 다름 아닌 이빨자국이랍니다. 화가 나면 이빨부터 들이밀고 보는 모디는 물렸을 때 가장 아프고 통증이 오래 가는 부분만 골라서 물지요. 이를테면 손가락 끝이나 손가락 사이 같은 곳 말이에요. 투정부릴 때에는 종아리나 아킬레스건, 발가락 끝, 팔꿈치 살을 물기도 하고 심지어 집사들이 얼굴을 들이밀며 지나치게 질척거린다고 생각되면 코나 입술, 뺨을 물려고도 합니다. 이럴 때에는 손가락 마디뼈처럼 단단한 곳이나 손날 부분처럼 살이 많은 곳 등을 일부러 물려서 덜 아프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어요. 아무튼 어딘가를 물고 입맛도 짭짭 다셨다가 다시 더 깊게 물어대는 모디를 보며 집사들은 기쁨의 비명을 꺄아아아아아아아 하고 질러댑니다. 덕질하는 아이돌의 사인을 받았으니 날아갈 것 같으니까요. 사인의 강도가 너무 세면 정신이 홀라당 날아가 버리는 느낌이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실물을 그저 보기만 해서는 덕질을 완성했다고 할 수 없지요. 직접 대면하지 않을 때에도 늘 대상을 생각하고 있는 자세가 중요하겠습니다. 역시 덕질을 제대로 하려면 관련된 물건들을 모으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 열쇠고리, 폰케이스, 인형 등등을 모으는 일처럼요. 꼭 연예인에 관련된 물건들이 아니더라도 잘 관리된 물건들을 진열해 놓고 바라보면 아주 흡족해지지요. 어머니께서는 젊은 시절 우표를 모으는 취미가 있으셨다더군요. 우연히 그 우표들을 보게 되었는데 지금 우표들과는 다른 그때만의 특징들이 있어서 왜 모으셨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그 순간만, 혹은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을 계속 현재형으로 추억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지요. 다음 글에서는 모디의 어떤 흔적들을 모아 두는지부터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