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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Jul 13. 2023

덕질 - 2

우주에 끝이 있다 해도 덕질에는 끝이 없다


 집사들은 모디의 털과 수염을 모은답니다. 동거인이 빗질을 해주고 나서 제가 열심히 두 손으로 털뭉치를 말아서 공을 만들어내고는 하지요. 죽은 털들이 많아지면 집안 공기가 나빠지고, 모디는 털을 많이 삼켜 토를 하게 되며, 먼지와 뒤엉키면 청소하기도 까다로우니 정기적으로 빗질을 해줍니다. 당연히 모디는 빗질을 아주 싫어하지만 양치질처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조금씩 하고 있어요. 집사가 아닌 분들도 고양이 털이 정말 많이 빠진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서 아실 터입니다. 모디도 한 털빠짐하는 녀석이라 청소기를 매일 돌려도 다음 날이면 집이 어제와 똑같은 상태가 돼요. 마치 군대에서 제설작업을 할 때, 한참 눈을 쓸다가 뒤돌아보면 다 치우고 난 자리에 몇 분 전과 마찬가지로 눈이 왕창 쌓여 있는 꼴을 보는 것처럼요.

 



 빗질을 할 때마다 털이 뭉텅이로 나오는데 특히 모디가 그루밍하기 어려워하는, 궁둥이와 꼬리의 연결 부분에서 무더기로 쏟아집니다. 모디가 진절머리를 내고 도망칠 때까지 빗으로 긁고 나면, 꽤 크고 긴 제 손 위에 올려놔도 한 움큼이 될 정도로 많은 털들이 뭉치를 이루게 된답니다. 그 털뭉치를 전부 함께 말면 공 모양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동거인이 한 번 슥 털을 제거하고 제게 넘겨주면 그때그때 바로 말아내지요. 이때 힘을 너무 주어서 말면 동글동글 구 모양이 아닌 럭비공 모양이 되어버립니다. 마치 작고 약한 생물체를 쓰다듬듯이, 손 사이에 귀한 보석이라도 놓은 듯이 살살 조심스럽게 말아야 한답니다. 처음에 모양을 잘 잡아 놓지 않으면 아무리 털을 덧붙여 말더라도 계속 럭비공이 나오거나 이상하게 찌그러져 버리지요. 게다가 그 후에 억지로 눌러 모양을 잡을라치면 털뭉치 사이에 틈이 생겨 어딘가 푹 파인 구, 금이 가 버린 구가 만들어집니다. 흡사 부화 직전의 개구리알같은 모양새가 나타나지요. 모디님과 관련된 물건인데 그렇게 조악하게 만들 수야 있나요. 꾸준히 노력해서 요령이 좀 생기면 마치 명상을 하는 기분이나 기를 모은다는 기분으로 정갈하고 동글동글한 털공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털공 제조 장인이 되면 크기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날그날의 기분이나 털의 양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데, 원하다면 탁구공 크기 이상도 만들 수는 있겠습니다만 보관이 어려운지라 구슬 정도로 마는 것이 보통이지요. BB탄 크기도, 왕사탕 크기도 가능하기는 하고요. 중요한 것은 태도,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털공에는 집사의 진심을 담아야 한다는 태도랍니다. 그렇게 말아낸 털공이 벌써 수십 개가 되었습니다. 말아낸 털공은 향초를 담아 두는 금속 용기 안에 담아 두는데, 하나하나에 모디의 향기가 담겨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수집품이 없지요.


 수염을 모으는 일은 털공 모으기보다 어렵습니다. 털공은 집사들의 의지대로 모을 수 있지만 수염은 그야말로 하늘이 도와야 모을 수 있거든요. 어쩌다가 한 번씩 침대나 카펫 위에 떨어뜨린 수염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야 하는데, 시점이 잘 맞지 않으면 영영 발견할 수 없게 구석으로 들어가거나 청소기에 빨려 들어간답니다. 더구나 흰색이라 어두운 배경 위에 있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고요. 그래서 수염은 어떤 가공도 가하지 않고 그대로 금속 용기로 직행해 털공과 함께 보관하는데, 몹시 가볍고 탄성이 있어서 잘못하다가는 튕겨나갈 수 있으니 털공 사이에 꽂아 두는 방식을 사용하는 편입니다. 또한 떨어진 수염을 발견하고 줍는 순간에는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어야 해요. 고양이의 수염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속설이 있거든요. 저는 매번 꽤 크고 허황된 소원을 빌어서 그런지 아직까지 이루지는 못했습니다만 소박하고 현실적인 소원을 갖고 있으신 분들은 혹여나 이루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 집에 산 이후로 수염을 족히 십수 개는 모았기에, 용기를 열 때마다 자부심이 생긴답니다.


털공을 모은 흔적.



 

 하지만 털공과 수염은 집에 가서만 감상할 수 있으니 무언가 부족합니다. 덕후의 자세를 항시 유지하는 데에는 사진을 찍어 두는 방법만 한 것이 없지요. 제 스마트폰에는 모디 사진만 몇천 장이 있는데, 다른 집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단 여러 종류의 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반려동물이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담을 수 있으니까요.


 가끔 예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만 보통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표정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할 때, 즉 밑도 끝도 없이 못생겼을 때 스마트폰을 들이대고는 해요. 세상 모르고 퍼질러 자고 있거나 꾸벅꾸벅 졸거나 집사들을 응징하고 싶은데 귀찮아서 뒹굴기만 하는 시점에 모디는 아주 좋은 피사체가 됩니다. 정신없이 장난감을 부여잡고 허덕허덕 뒷발차기를 하는 경우도 그렇고요. 심심하지만 집사들에게 놀아 달라고 보채기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멀뚱멀뚱 눈을 뜨고 침대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지요. 이상한 냄새를 맡고 입을 헤벌릴 때, 혀로 몸을 핥다가 미처 혀를 다 집어넣지 못하고 하찮은 앞니 사이로 약간 빼물고 있을 때, 입이 찢어져라 하품할 때, 어딘가에 기대서 얼굴이 찌그러졌을 때 등등 사진을 찍기 좋은 때는 셀 수가 없답니다. 요즘의 모디는 나이를 좀 먹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집사의 덕질에 일일이 반응해 주기 싫은지, 스마트폰을 가까이 가져가면 휭 도망치고는 해요. 초상권을 침해당하지 않으려는 모디 때문에 작년부터는 이전처럼 사진을 많이 찍지는 못했지만, 틈만 나면 어떻게든 그 현란한 이목구비를 저장해 두려고 노력 중입니다.


적당히 좀 찍어라, 응?

 

 사진을 찍어 놨으면 주변에 영업을 하는 일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지요. 일을 가서도, 친구들에게도, 가족에게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모디를 영업해야만 합니다. 집사들에게는 자기 반려동물이 가진 지고의 귀여움을 세상 모두에게 알려야 하는, 거대하고 막중한 사명이 있답니다. 반강제로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영업을 하지 않으면 큰 벌을 받게 돼요. 그 좋은 것을 혼자만 차지하고 몰래 보려는 욕심과 집착 때문이지요. 영업을 하지 않음으로써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데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도 그러합니다. 그런 임무태만을 저지른다는 것은 매우 불경한 일이에요. 사람이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는 쉽지 않지만 고양이를 통해서라면 충분히 가능한데도, 단지 귀찮은 나머지 게으름을 피웠으니 혼이 날 수밖에요. 그러니 모두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도록 합시다.



 

 덕질의 마지막은 바로, 만수무강과 무병장수 빌기입니다. 생각만으로도 사랑스러운 존재의 건강을 비는 일로 덕질이 끝나야 옳지요. 잠들기 전 모디를 배 위에 올려놓고 턱을 긁어 주면서 파닥거리는 귀에 오래 살라고, 건강하게 살라고, 너는 집사들이 받은 가장 크고 값진 선물이라고 속삭이면 된답니다. 모디는 눈을 꿈벅거리고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조용히 집사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자기 자리로 내려가 평화롭게 잠을 청하지요. 덕질은 모름지기 당하는 쪽도, 하는 쪽도 만수무강 무병장수해야 아름다운 추억이자 영원한 현재로 남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사랑은 받을 때보다 줄 때 더 행복한 법이지요. 덕질하는 대상이 있으시다면 언제나 아름답고 적절한 사랑을, 조건 없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으로써 더욱 행복해지고 활력소 하나를 얻게 된다면 결국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니까요.


너무 건강하고 우람해서 딱히 안 빌어도 무병장수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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