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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Jul 17. 2023

고양이 곁에서 아침을

티파니는 없어도 고양이는 있다


 모디가 밤에 잠을 청하는 곳이 바뀌면 계절도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날이 더우면 캣폴이나 대리석 판 위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그대로 푸욱 잠이 들어 버리고, 기온이 서서히 떨어질 즈음부터는 침대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는 합니다. 그렇다고 이불 안으로까지 들어와서 잠을 자려고 하지는 않아요. 제가 침대 위에 이불을 덮고 누워 있으면, 모디가 자리를 잡는 곳은 늘 이불 위, 제 다리 사이랍니다.


 고양이와 함께 잠을 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손만 뻗으면 보송보송한 털과 투실투실하고 말랑말랑한 뱃살을 만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한편으로는 고양이와 같이 누워 있으면 어렸을 때가 되살아나서 좋기도 합니다. 베갯잇이 다 닳아서 찢어질 때까지 껴안고 잤던 베개의 느낌, 엄마가 세탁을 해 버리면 축축한 채로라도 껴안고 자려고 떼를 쓰다가 결국 빨랫대에 널려 버린 베개를 보며 울고 말았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니까요.


 가만히 모디 위에 손을 올려 두고 조금 기다리면 심장박동이 손끝을 타고 올라옵니다. 사람의 그것에 비하면 너무 작기만 하지요. 하지만 고양이가 집사의 보호와 관리를 평생 받아야 하는, 사람보다 훨씬 약한 존재임에도 고양이와 함께하는 밤에는 제가 오히려 보호를 받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신기해요. 고양이는 붕 떠 있고 텅 빈 하루를 보낼 일이 많은 사람들을 붙잡아 주는, 천사의 무게추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이르는 길은 가시밭길이라고, 천사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아주 고된 시험들을 거쳐야 한답니다.




 모디는 자연스럽고 조용히 침대에 올라오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고양이가 야옹 소리 말고도 다른 소리들을 자주 낸다는 사실을, 집사들 이외에는 잘 모르실 것입니다. 꿱, 냐악, 무아악, 먀아아아, 뭐 이런 소리들을 더 많이 내요. 이럴 거면 왜 야옹이라고 부르는지. 아무튼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기 때문에 침대 아래에 모디가 있으면 어디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데, 저런 소리들을 내며 뛰어 올라오면 깜짝 놀라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이 시험은 통과하기가 비교적 쉬운 편입니다.


 다음으로, 모디는 올라오자마자 바로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지 않는답니다. 일단 제 배 위에 올라와서 그대로 철푸덕 앉는데, 이때 고롱고롱 소리를 내면서 눈을 꿈벅거리고 저를 지그시 쳐다보곤 하지요. 내가 아주 기분이 좋다, 이제 잠에 들 것이다, 그러니까 완벽한 환경을 만들어 놓도록 하여라,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이때 잽싸게 턱과 볼살을 살살 쓰다듬어 줘야 하는데, 아직 뱃살이나 엉덩이를 만지면 안 됩니다. 뱃살이야 대개 고양이가 만지는 것을 싫어하는 부위이기도 하지만, 모디는 엉덩이를 만지는 것도 싫어해서 기분을 완전히 망칠 수 있거든요. 잘못하다가는 지옥문이 열리게 될 수도 있으니, 괜히 화를 자초하지 말고 얼굴만 잘 매만져 주도록 해야 합니다. 턱도 좀 긁어 주고, 볼살도 좀 만져 주고, 가능하면 얼굴을 아래로 조심스럽게 잡아 내려서 축 처진 눈을 만들 수 있는데 표정이 하회탈을 닮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즐거운 틈도 잠시, 곧 난관이 시작됩니다.


쓰다듬어 줘.




 모디 정도의 몸무게를 가진 고양이라면, 저는 족히 아령 하나 정도의 무게를 배 위에 올려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지나면 그야말로 저녁밥이 모조리 역류하는 느낌이 든답니다. 그리고 고양이는 자신이 가장 편안한 자세를 잡는 데에 전력을 다할 뿐, 집사가 얼마나 불편한지까지 생각해 주지는 않지요. 그 상태로 모디가 엉덩이를 움직이기라도 하면 이제는 내장들이 자리를 바꾸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허억 하는 고통스러운 숨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모디는 그걸 알 리가 없고요. 아니, 알아도 신경 쓸 거리가 안 되겠지요.


 조금 지나면 본격적으로 잠자리를 마련하려고 제 허벅지 사이로 몸을 돌려 내려가는데, 희한하게도 꼭 가로 방향으로 눕습니다. 집사의 다리는 세로로 뻗어 있는데 대체 왜 가로로 눕는 것일까요. 분명히 알고 저러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제 모디는 머리를 제 허벅지 위에 올려 두고 한껏 몸을 기댄 후에, 온몸을 아주 신중하고 세심하게 청소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자기 혀가 닿는 곳까지만 핥고 나머지는 무시해 버리지만, 나름대로 상당히 만족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여서 참 재미있답니다. 아무튼 한동안 열심히 핥아 댄 다음엔 고롱고롱 연주회의 마지막으로 꾸루루룩 소리를 내고, 그 다음에는 눈을 꾹 감고 잠에 들지요.




 그런데 모디는 기골까지 워낙 장대해서, 집사가 다리를 편안하게 놓고 자면 허벅지 사이의 공간은 이 녀석의 몸집에 비해 턱없이 좁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억지로 몸을 쑤셔 넣어 허벅지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내려고 하고, 힘도 장사라 저는 어쩔 수 없이 다리를 마름모 모양으로 벌리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밤중에 난데없이 요가 자세를 하게 되는 것이에요. 저는 요가와는 태생적으로 거리가 먼 사람이고, 학창 시절 체력장 때마다 유연성 최하점을 받은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제게는 지독하게 불편한 자세이지요. 게다가 저는 똑바로 눕지 않으면 잠에 들지 못하는 사람이라 다리를 좀 오므려서 어떻게든 쭉 펴 보려고 합니다.


 이미 오른쪽 다리는 혈액순환이 잘 안 돼서 마비가 올 것 같고, 하지만 모디를 깨우기라도 하면 혼돈이 찾아올 것이고, 그러니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리를 모아야 해요. 그렇게 열심히 자세를 바꿔 봐도, 모디에게 깔린 상태로 다리만 움직였기 때문에 이불은 이상하게 말려서 몸 밑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또 모디가 머리 위치를 바꾼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세가 좀 나아졌을 뿐 오른쪽 다리는 여전히 모디 머리 밑에 있지요.


 다음날 운이 나쁘면 저는 허리부터 엉덩이까지 배긴 채로, 한쪽 다리에 거의 감각이 없는 채로 눈을 떠야 합니다. 그나마 몇 년을 함께 살다 보니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잠을 편하게 자기 위해서 모디에게 다이어트를 시키거나 침대 위에서 잠을 자지 못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너 다이어트 해, 오늘은 다른 곳에서 자,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들을 녀석도 아니고요. 괜히 화를 돋워서 깨물릴 일만 늘어나게 만드는 셈이지요. 아무튼 여기까지 통과하면 모디는 아주 곤히 잠들게 되고 저도 겨우 잠을 청해볼 수 있게 됩니다.


맨날 이 자세로 자니 집사가 힘들지!!!



 

 그러나 걱정할 일은 늘 예상하지 못하는 시점에 찾아오는 법.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면 모디와 다르게 왕성한 번식 욕구를 갖고 있는 길고양이들은 영역 다툼도 하고, 사랑 싸움도 하고, 이런저런 어른으로서의 일들을 합니다. 평생 아기나 다름없는 모디는 밖에서 그런 소리가 들리면 갑자기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창문으로 호들갑스럽게 달려갑니다. 아마 제 딴에는 옆집에서 흥미진진한 막장드라마를 찍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또는 밤에도 잠들지 않는 비둘기들이 내는 소리도 모디를 깨우고는 합니다. 길고양이들 관전할 때와 마찬가지로 창문에 가는데, 이때는 오밤중에 냐냥냥 소리를 내면서 비둘기들이 쉬고 있는 곳을 찾으려고 열심히 두리번거립니다. 맹수가 대놓고 영역 관리와 사냥 준비를 하는 모습을 봐야 하니, 비둘기들은 얼마나 무서울까요.


 이밖에도 모디가 잠 못 드는 밤의 모습은 다양한데, 제가 이 상태로 잠들면 다음날 걷지도 못할 거라는 생각에 다리를 많이 움직여도, 옆집 사람이 늦은 귀가를 해도, 제 동거인이 화장실을 가도, 모디는 이내 잠을 깨고 침대 아래로 내려가 버립니다. 아니면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서 몸을 푸르르 떨고 침대 아래로 내려갑니다. 뭐 중요한 일이라도 있냐고 물어 봐도 대답도 없이 그저 사료 좀 먹고, 물 좀 마시고, 침대 밑 탐험 좀 하는 것이 전부랍니다. 이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요. 그새를 못 참고 잠들어 버린다면, 늙고 지친 집사의 신체 내구력 따위는 전혀 배려하지 않는 6.8kg 맹수의 점프에 바로 응징을 당할 테니 반드시 깨어 있도록 해야 해야 합니다.




 이토록 힘든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집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 중 하나, 고양이와 함께 잠들고 일어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디가 집고양이기는 하지만 모든 동물들에게는 야생의 습성이 남아 있고, 동물들은 자기 엉덩이를 신뢰하는 존재에게 맡긴다고 해요. 그렇게 서로 보호하고 보호받지요.


 하지만 모디의 커다란 엉덩이를 보면서 잠을 자고 깰 수 있다는 사실은 사람인 집사에게는 좀 더 숭고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일종의 신성한 보호막 아래에 들어와 있는 기분, 신이 인간에게 내려 줄 수 있는 가장 큰 자비가 무엇인지 깨달은 기분이에요. 세상 단 하나의 존재, 마음으로 낳은 자식인 반려동물과 평생 함께 잠들고 일어날 수 있다면, 집사들은 자기가 이룰 모든 위대한 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고 하더라도 기꺼이 그 행복을 선택할 것입니다. 시험은 늘 어렵지만, 아침에 모디가 잠에서 깨어나 몸을 쭉 펴고 이상한 얼굴로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치를 수 있어요.


 상반신을 일으켜서 잠이 덜 깬 모디의 향긋한 뱃살 냄새를 맡고, 눈을 게슴츠레 뜨고 저를 쳐다보는 모디의 턱을 긁어 주고, 볼살이 눈을 가리고 얼굴이 찌그러지도록 모디의 볼에 힘껏 입을 맞춰 줄 수 있는 것이 시험을 통과한 후의 보상이라면 말이지요. 천국은 아마 고양이와 함께라면 방 한 칸, 침대 하나 위에도 찾아올 수 있는가 봅니다.

흔한_천국의_풍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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