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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Jul 15. 2023

냥BTI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좀 시들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요즘에는 어디를 가나 MBTI 검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과장을 좀 보태서 인간관계의 시작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주한 사람의 성격을 깊게 파악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서로의 MBTI를 물어보면 어색한 사이일지라도 일단 무언가 할 이야기가 생기니까요. 고작 16개의 유형 안에 다채로운 성격들을 억지로 밀어 넣을 수는 없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재미로 알아보는 것이니 괜찮지 않을는지요. 그래서 모디의 MBTI 검사를 한 번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모디에게 시켜 볼까도 했지만 귀찮아할 것이 뻔한 데다가 별로 객관적인 편도 아니라서 차라리 제가 하는 편이 낫겠더군요. 스스로가 생각하는 근사한 고양이로서의 모습을 투영해서 검사를 진행하고 엉터리 성격 유형을 받는 꼴을 보느니, 그냥 제가 조금 수고를 들이기로 했답니다.


 10분 정도 진행하는 검사에는 참 다양한 항목들이 있는데, 7년 가량 모디를 지켜보면서 얻은 결과들을 최대한 진실되게 반영하려고 노력했답니다. 가령, 모디는 일견 충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일상을 지켜 나가는 계획적인 모습도 갖고 있기에 중립에 가깝게 선택한다든지요. 한편 집사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불편해하고 싫어하는 것이 역력하니 극단적인 선택지를 골랐지요. 미술이나 철학 등에 관심이 있느냐는 항목에도 일말의 고민 없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선택지를 눌렀답니다. 일일이 물어보면서 할 수가 없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숙고를 거쳐 제가 모두 처리해야만 했는데, 제 성격 유형을 검사할 때보다 더 꼼꼼히 체크하게 되더군요. 여차저차하여 나온 모디의 성격 유형은 바로 ISTP랍니다. 제 성격 유형은 INFJ가 나오는데, 내향성 빼고는 전부 다 반대라 잘못 검사했는가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납득이 되었습니다. 서로가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 주면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으니까요. 또한 반대가 끌린다는 말도 있으니 모디와 저는 확실히 연결될 운명이었나 봅니다. 저 정도로 반대일 줄은 몰랐지만요.


뭘 검사하겠다고?




 우선 내향성부터 검증해 봅시다. 모디는 확실히 I의 성향이기는 합니다. 집 안에 있어야만 마음이 편안하고 소수의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기 원하니까요. 자주 탈출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영역 관리를 목적에 두고 있었다고 짐작되니 그냥 밖에서 기운을 충전하기 위해 나들이 가는 마음과 같다고 볼 수는 없겠지요. 또한 모디는 저 혹은 동거인 이외의 모든 사람을 질색합니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아주 짜증스럽고 불안한 표정을 짓고는 하니, 확실히 저희 둘 빼고는 어떤 깊은 관계도 원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기가 빨리다 못해 증발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기운을 충전할 수 있는 것이 틀림없는 내향형 고양이입니다. 저를 간택했을 때에는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온 힘을 다해 외향성을 긁어모아서 내뿜었던 것이 아닐까요. 14% 남짓 나온 외향성은 그때 다 써버린 모양입니다. 사실 종족 특성상 대부분의 고양이들이 내향적이겠으니, 86%의 내향성은 크게 놀랍지 않은 결과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결과에 대해 고민을 좀 해야 했습니다. 현실주의형 S. 모디가 왜 현실적 고양이인지 처음에는 도무지 알 수 없더군요. 저렇게 마구잡이로 집사에게 응석이나 부리는 녀석이 현실주의적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관점을 달리해 보니, 징징거리고 포악하게 굴거나 부드럽게 가르랑거리는 일이 고양이 입장에서는 더없이 현실적입니다. 그래야 집사를 쥐락펴락하면서 배불리 먹고 게을리 뒹굴거릴 수 있으니까요. 그럼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배려 따위 집어치우고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아마도 귀여움을 받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확고한 자신감에서 비롯될 터입니다. 무슨 짓을 해도 곧 집사의 마음은 풀릴 테고, 다시 사랑을 받을 가능성이 100에 수렴한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니 어떤 부담도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겠지요. 이상주의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는 삶의 모습을 현실로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니, 저와 동거인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역시 모든 종족에게는 각자의 양식이 있군요.




 그렇다면 T가 나온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객관성이나 합리성, 효율성 따위는 간식과 함께 와구와구 삼켜 버렸을 것 같지만 절대 아니로군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자신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끝내주게 귀여우니, 집사들이 성심을 다해 자신을 보살피면서 그 귀여움을 유지할 수 있게 돕는다면 서로에게 이득이 됩니다. 또한 집사들이 자기를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 궁리를 하면 자연스럽게 모두의 삶이 좀 더 윤택해집니다. 사람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자신이 직접 무엇을 하기보다는 집사들이 그 일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율적이고요. 게다가 고양이는 그 존재만으로도 좋은 감정들을 불러일으켜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니, 다 함께 생존하려면 집사들이 스스로 방법을 깨우쳐서 힘껏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도 계산에 포함되어 있겠지요. 말할 수 없이 이기적이지만 아주 훌륭한 논리입니다. 결국 모디가 발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기심을 발휘하면, 그로부터 나온 귀여움이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저와 동거인도 모디의 귀여움을 계속 만끽하고 싶다는 이기심을 갖고 있는 것은 어차피 마찬가지니까요. 이것 정말 경제적인 자세로군요. 모디는 알고 보면 경제학에 일가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디는 이렇듯 철저히 계산적이지만 P의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이 정도라면 J와 연결되는 편이 더 맞을 텐데요. 탐색형 성격이 나타난 이유는 모디의 임기응변 능력 때문일 것입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즉각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측면을 판단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타고난 감각, 혹은 묘생철학을 적극 활용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모디는 집사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호한 응징을, 마음에 들면 후한 보상을 해서 자발적으로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만듭니다. 스스로의 매력에 근거를 둔, 단순하지만 강한 방법입니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이상한 소리를 내거나 바보짓을 해서 집사들에게 일부러 빈틈을 보여주었다가도 곧바로 위엄을 회복함으로써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계산은 하되 계획은 하지 않고, 관행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자기만의 독자적인 관리 능력을 발휘하다니, 일반적인 경험과 학습만으로는 감히 따르지 못할 경지입니다. 또한 근본적으로 위대한 고양이로서의 자각이 확고한 데다가 최고 서열에 대한 명백한 자부심까지 있으니 더 쉽고 진정성 있게 저런 행동들이 가능할 것입니다. 사람 관리와 전술을 짜는 능력은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데 역시나 모디는 실전에 훨씬 강한 탐색형 고양이로군요.


 종합해 보자면 모디는 내향적이지만 사고방식이 현실적, 객관적, 효율적이랍니다. 그리고 미리 짜 둔 계획에 의존하기보다는 융통성과 뛰어난 적응력을 통해 자기 삶을 잘 통제하지요. ISTP 유형은 장인이라고도 불린다는데, 일반적으로 장인의 풍모라 여겨지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자유자재로 집사들을 조련하고 있으니 어떤 측면에서는 확실히 높은 차원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귀여움 장인이라고 해야 하려나요. 모디가 하는 행동들에 다 나름의 이유와 방법이 있다고 여기고 쉬이 넘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제 성격유형 검사를 할 때보다 훨씬 더 몰입했던 시간이었습니다. MBTI는 바뀔 수도 있다고 하니 완전히 단정할 수는 없고, 심지어 고양이를 대상으로 했으니 정확하지조차 않겠지만요. 그래도 모디가 직접 하는 것보다는 올바르겠고, 재미삼아 해보기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냥BTI, 멍BTI 혹은 기타 반려동물의 성격 유형을 검사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떠실지요. 그리고 친구네 반려동물과 비교해 보는 것은 어떠실지요. 대화에서 단순하지만 괜찮은 주제를 찾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데, 이만한 주제라면 이야기꽃도 모자라 이야기나무 정도를 키워낼 수 있겠습니다. 제 주변에는 고양이와 함께 사는 지인도, 강아지와 함께 사는 지인도 다 있으니 그 녀석들의 MBTI 검사도 한 번 추천해 보아야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반려동물들이 만난다면 어떤 식으로 서로를 대할지 상상해 보는 것도 즐겁겠군요.


ISTP면 이렇게 천하태평 늘어져서 잠을 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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