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냄새보다 향긋하다고요
모디의 몸에서는 여러 가지 냄새가 납니다. 저는 보통 발바닥 이외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쿠쿠리라고 통칭하고, 발바닥에서 나는 냄새는 쿰쿰이라고 부릅니다. 집사들과 부대끼고 침대 위를 뒹굴거리는 과정에서 집안의 냄새가 몸에 섞여서 그런 냄새가 나는 모양입니다. 예전에는 아무래도 남자 혼자 사는 집이다 보니 쿠리쿠리한 냄새가 들러붙은 줄 알고 조금 미안했습니다. 제가 체취가 강한 편이 아니긴 하지만 후각이 좋은 모디 입장에서는 충분히 강할 것이고, 하필이면 자기 몸에서 헙수룩한 아저씨의 냄새가 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동거인과 살게 된 후에도 쿠쿠리 쿰쿰이가 계속 나는 것을 보고, 이것이 모디 자체의 냄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말할 것도 없고 동거인도 다른 어떤 냄새보다 모디의 털냄새를 좋아합니다. 모디가 아저씨 냄새나는 고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고, 집사들이 모두 쿠쿠리 쿰쿰이 맡는 시간을 즐길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고양이의 침에는 탈취제 성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털냄새나 발바닥 냄새가 변할 만한 어떤 일이 있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바로 쿠쿠리와 쿰쿰이를 맡을 수 있답니다. 이전 집의 창문은 너무 부실해서 모디가 열고 나가는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너무 방심한 제 잘못이지요. 모디가 집 근처에서만 놀고 들어와서 별 문제는 생기지 않았지만, 그렇게 아찔한 상황을 겪고 나면 혹시 밖에서 병균이라도 옮을까 하여 목욕을 시켜야만 했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와서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었을 테고 저도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지요. 모디는 나가자마자 신나게 콘크리트 바닥에 몸을 부비며 탈출의 기쁨을 만끽했고 몇 시간 동안 놀았으니 족히 수십 번은 더 뒹굴었을 테니까요. 둘 다 지쳐 버리는 목욕 시간이 끝난 뒤 모디는 누가 봐도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민 얼굴로 몸단장을 시작했는데, 샴푸 냄새가 털에 배어 쿠쿠리 쿰쿰이를 묻어 버렸군요. 기력이 다할 때까지 털을 핥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점은, 다음날 창문을 완전히 봉쇄하고 나간 뒤 퇴근하면 어제의 샴푸 냄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쿠쿠리 쿰쿰이만이 폴폴 풍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짜릿한 자유의 한때를 회상하며 하루종일 털만 핥아 댄 것일까요. 다시 집과 하나된 냄새를 가지게 된 모디를 보면 신기하기도 했고, 밖에서 고생하게 해서 미안하기도 했고, 쿠쿠리 쿰쿰이를 되찾으려고 내내 몸단장에 열을 올릴 정도로 자기 냄새가 중요한 것인지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천연 탈취제를 갖고 있다는 점이 부럽기도 했지요. 사람은 세제니 섬유유연제니 향수니 하면서 본래 체취를 가리려고 부단히 애를 쓰며 사는데, 자기 침만으로 이토록 향긋한 체취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고양이들은 적어도 사람의 입장에서는 감탄이 나올 만한 동물들입니다. 비록 생존본능에 따른 습성이라지만요.
같은 쿠쿠리라도 부위별로 조금씩 다른 향을 갖고 있습니다. 모디의 머리털에서는 후추 냄새가 나지요. 왜 하필 후추 냄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후추처럼 알싸하고 살짝 까슬까슬한 냄새라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어요. 배 쪽 털에서는 치즈 냄새가 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치즈가 발효된 후의 깊은 향을 부드러운 털뭉치에 얇게 배도록 한 듯한 냄새가 납니다. 치즈에 대한 지식이 얕아서 무슨 치즈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렵겠습니다만, 아무튼 친근하고 편안한 냄새입니다. 마지막으로 등과 꼬리, 엉덩이 근처에서는 갓 구운 식빵 냄새가 납니다. 정말 막 오븐 안에서 나온 식빵, 커다랗고 포슬포슬한 식빵 냄새를 맡노라면 당장 잼이라도 발라서 한 입 베어 물고 싶답니다.
집사들의 중요한 하루 일과 중 하나는, 모디가 침대 위에 늘어져 있을 때 얼른 몸 여기저기에 코를 갖다 대고 킁킁거리는 일입니다. 겉부분에만 킁킁거려서는 소용이 없어요. 반드시 털 안으로 코를 박고 깊이, 아주 깊이 향을 음미해야 합니다. 그리고 코로만 향을 들이마시는 것이 중요한데, 입을 벌리고 있으면 애먼 털이 입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방해가 될 수 있답니다. 그렇게 쿠쿠리를 코 전체로 느끼고 나면, 바로 얼굴을 떼고 고개를 뒤로 젖혀 줍니다. 그러면 말할 수 없이 굉장한 기분이 들면서 저절로 크어어어 소리가 나오게 되지요. 무지막지한 희열이 느껴지고,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오늘을 버텨낸 것이라는 확신이 뇌를 가득 채웁니다. 몸이 꾸물렁꾸물렁 힘없이 늘어나는 듯해 자연스럽게 침대에 누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에는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틈날 때마다 털냄새만 맡고 싶다는 갈망에 지배당합니다. 쿠쿠리만 맡아도 배고픔, 걱정, 심지어 자아까지 잊어버리는 느낌이니까요.
쿠쿠리라는 단어 없이 내용을 다시 읽어 보니 마치 나쁜 약물이라도 한 후의 느낌을 써 놓은 것 같군요. 그렇지만 집사분들은 확실히 아실 것입니다. 중독되면 자의로 끊을 수 없다는 점은 같아도, 욕망의 끝에는 공허와 부작용 대신 사랑과 희망이 다가온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요. 게다가 맡을 때마다 새로우면서도 포근합니다. 아름다운 고향에 돌아가는 기분, 인간이라는 개별 존재가 아닌 자연의 일부라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무한한 영감과 소속감을 느끼는 기분이라고 하면 고양이 털냄새를 맡아본 적 없으신 분들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실는지요. 언어로 이 기분을 표현하려면 아마 여기에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야 할 지경입니다.
아무튼 쿠쿠리를 맡은 다음엔 모디의 표정을 살펴봐야 합니다. 모디가 잠에 취해, 눈만 슬며시 뜬 채 앞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직 무슨 상황인지 잘 깨닫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한 번쯤 더 킁킁거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옆으로 들고 집사들을 지그시 쳐다보면 냄새 맡기를 그만두는 것이 좋습니다. 잘못하다가는 뒷발차기를 당하거나, 머리카락을 쥐어뜯길 수 있거든요. 모디 입장에서는 무엄하기 그지없는 행동이겠지요. 일개 신하가 갑자기 왕의 옷자락이나 정수리에 코를 박고 히히거리는 상황일 텐데, 감히 왜 그랬는지를 물어봐도 별 이유조차 말하지 않습니다. 벌을 내려도 신하는 전혀 그만둘 생각이 없고,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냄새가 좋지 않았으면 이럴 일도 없다고 떼를 씁니다. 신하들도 왕께서 자기 몸과 옷을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매번 본능은 이성을 이기고 왕의 성질머리를 긁어놓게 됩니다. 가엾은 왕, 모디의 권위는 오늘도 집사들 앞에서 와장창 무너졌습니다.
쿰쿰이는 쿠쿠리보다 맡기가 더 어렵습니다. 우선 분홍색 발바닥을 볼 수 있어야 냄새를 맡든 할 텐데, 모디는 여간해서는 발바닥을 잘 보여주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집사들은 침대에 누운 채로 모디를 배 위에 올려놓고, 겨드랑이 부분을 잡은 다음 끌어당깁니다. 그러면 모디는 하찮은 집사들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아서 앞다리를 쭉 펴고 밀어냅니다. 이때 앞발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면, 이번엔 아주 쿰쿰한 냄새, 발효된 치즈의 향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냄새, 혹은 청국장 냄새를 100분의 1 정도로 줄이고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린 것만 같은 구수한 냄새가 납니다.
냄새를 맡은 결과는 같습니다. 희열로 가득 찬 시간을 잠시나마 경험하게 되지요. 모디가 늘어져 있을 때에 맡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하면 바로 뒷발차기로 응징을 당할 확률이 높아서 잘 쓰는 방법은 아닙니다. 아무튼 안겨 있는 모디는 얼굴을 돌리거나 허공을 쳐다보면서 아주 진저리를 치는데, 집사들이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러는지 설명이라도 해 달라는 눈을 하고 있습니다. 왕께서 신하가 자기 발냄새를 맡는 상황을 용납하실 리가 없지만 안타깝게도 신하들이 훨씬 힘이 세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런 눈으로 다른 곳만 쳐다봅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참아 주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배를 접어 뒷발을 올린 후 뒷발차기로 집사들의 손을 걷어차면서 깨무는데, 되도록 이렇게까지는 안 가는 것이 좋으니 한 번쯤 쿰쿰이를 맡고 얼른 놓아 드려야 합니다. 꼬리 쪽으로 착지하면 다칠 위험이 있으니, 알아서 이 상황을 벗어나실 수 있게 하면 좋습니다. 모디는 몸을 한 바퀴 빙글 돌려서 도망을 치고, 집사들은 그저 행복합니다. 쿠쿠리를 맡는 것보다 훨씬 고난도의 과정을 거쳐야 함에도, 분홍 발바닥의 말랑말랑한 느낌과 구수한 냄새를 맡을 수만 있다면 쿰쿰이에 도전해 볼 여지는 언제든 있답니다.
집사들은 자신의 고양이를 다양한 감각을 통해 그려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쿠쿠리 쿰쿰이는 언제까지나 떠올릴 수 있겠지요. 모디와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겠지만, 털냄새와 발바닥 냄새는 제가 다시 모디와 만날 때까지 늘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집에서도, 집 밖의 온갖 냄새들 가운데에서도, 식사를 하다가도 쿠쿠리 쿰쿰이가 코를 간지럽히도록요. 숨을 들이쉬지 않고도 얼마든지 맡을 수 있는 유이한 냄새들, 이제는 후각이 아니라 마음으로 맡을 수 있는 냄새들, 제가 지금까지 맡았던 냄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오래 남을 냄새들이 되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열심히 킁킁거리다가 잠들어야겠습니다. 모디를 온전히 사랑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합리화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