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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Jun 13. 2023

사냥놀이

방구석 사냥꾼


 사냥을 시작하려는 모디의 눈은 블랙홀을 연상케 합니다. 목표로 하는 장난감을 빨아들이기라도 하려는 듯, 새까맣고 둥그런 동공이 그 큰 눈 전체를 채웁니다. 투실투실 살쪄 있고 게으른 모습만 보니 잊어버리고는 합니다만, 자연에서 진짜 사냥의 경험을 쌓았더라면 모디는 확실히 무자비하고 강력한 포식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디는 집에만 있고, 사냥은 모디에게만 진지한 행위일 뿐 솔직히 저와 동거인에게는 또 하나의 웃음거리입니다. 집사들은 모디가 너무 몰입한 나머지 보여주는 온갖 바보짓을 실컷 놀려 주면서 웃고, 열심히 장난감을 쫓는 모양새가 대견하고 신통해서 웃습니다.




 사냥의 시작에는 두 가지 양식이 있습니다. 동공만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면서 몸은 한동안 그대로이거나, 몸을 움츠리면서 바로 반응하거나. 전자일 때에는 모디의 흥미를 이끌어 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가령 낚싯대 장난감을 사용한다고 하면 먼저 이불 속에 장난감을 감췄다가 조금 꺼내 놓았다가를 반복합니다. 무언가 왔다갔다하니 모디는 눈을 최대한 뜨고 유심히 지켜보긴 합니다만, 아직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일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이때는 모디의 얼굴에 장난감을 부비적거리면서 도발을 가하거나, 장난감을 이불 위로 크게 움직이면서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줘야 합니다. 이 대치 상태가 3분 정도 반복되면 모디는 장난감을 향해 달려들고, 저는 팔을 뒤로 빼는 동시에 뒷걸음질을 치면서 모디가 적당한 거리를 뛸 수 있도록 합니다. 다음엔 장난감을 뒤나 옆으로 움직이는데, 뒤로 움직이면 모디가 점프를 하면서 휭 날아가게 되고 옆으로 움직이면 장난감을 따라 빙글빙글 돌게 됩니다. 시트에 발톱자국을 잔뜩 내면서 침대 위를 신나게 뛰어다니는데, 시점을 잘 맞춰서 마지막엔 항상 모디가 앞발로 장난감을 붙잡을 수 있게 해 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의 사냥 능력을 의심하게 될 테니까요. 강아지풀 장난감이나 레이저를 사용할 때에도 시점을 잘 맞추는 것이 필수인데, 특히 레이저는 앞발에 닿는 순간을 잘 노렸다가 바로 꺼 줘야 사냥에 성공했다는 표지를 줄 수 있답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어렸을 때는 한 시간을 이렇게 놀아도 지칠 줄을 몰랐습니다.


사냥의 시간인가!!!


 한편 후자일 때에는 예열 과정이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장난감을 보자마자 뛰어들어서 마구 돌기 시작하는데 이때 너무 흥분한 상태이기 때문에 침대 밑으로 떨어지거나 벽에 부딪힐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한 번의 사냥이 끝나고 나면 이번엔 반대편으로 가 다시 전 과정을 반복합니다. 분명히 잡았는데 왜 저것이 또 눈앞에 있는지 의아하다는 표정도 잠시, 뇌가 재가동되기라도 한 듯 필사적으로 장난감을 쫓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나서 코 앞에 손가락을 갖다 대 봅니다. 찬 콧바람이 자그마한 코에서 휭휭 나오면 모디는 만족스러운 사냥을 한 것이랍니다. 지쳐서 옆으로 드러누운 모디가 씩씩거림에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는 뱃살을 보면 오늘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야밤에 와당탕거릴 체력은 다 빼놓은 것이니까요. 모디도 이제 아저씨가 되어서 예전보다 훨씬 금방 사냥을 그만두지만, 능력을 증명하고픈 마음은 여전해 보입니다. 그러니 사냥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싶으면 장난감을 얼른 치우고 의기양양하게 사료를 먹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모디는 타고난 신체 능력이 대단한 편입니다. 우선 다른 고양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몸을 갖고 있어서 모디를 보러 오는 모든 손님들은 크기에 한 번 놀라고, 힘에 또 한 번 놀랍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따로 없습니다. 집 구조상 캣폴 발판이 창문에 아주 가깝게 설치될 수는 없어서 조금 틈을 두고 있는데, 그래서 모디가 밖을 보려면 발판 끝에 뒷발을 놓고 창틀에는 앞발을 올려 두고 몸을 쭉 늘여야 합니다. 앞다리를 엉거주춤 꼬부린 채 창밖을 응시하는 모디는 영락없는 티라노사우루스의 형상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때 모디가 햇살을 받으면, 가느다란 아래쪽 팔과 다리와 대비되는 거대한 위쪽 팔과 허벅지가 드러납니다.


 저는 모디와 함께 살기 이전에는 고양이라 하면 당연하게도 날렵하고 우아한 몸, 이를테면 발레리노와 같은 형태의 몸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렇게 우락부락한 근육이 털 속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가끔 모디가 사냥 중에 지나치게 난리를 피워서 선반 위에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떨어뜨리거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화장실에 뛰어들어가 볼일은 안 보고 온 사방에 모래만 튀기면서 뛰쳐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었다면 쥐어박고 싶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만 곧 그만두었답니다. 사람이 된 모디는 십중팔구 운동선수 수준의 신체를 갖고 있었을 텐데, 저는 이 녀석을 이길 자신이 조금도 없거든요. 그저 이 근육고양이님의 아드레날린 분비가 가라앉을 때까지 사냥 놀이를 해서 달래는 것밖에는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크아아아아아아!!!


 모디는 스스로의 힘을 과신해서인지는 몰라도 사냥 기술은 영 뛰어나지를 못합니다. 일명 냥냥펀치라고 하는 앞발 공격은 확실히 파괴력이 있습니다. 제 안경 정도는 코에서 손쉽게 떨어뜨릴 수 있고, 심지어 충격으로 코받침이 좀 휠 정도니까요. 그런데 힘과 기술은 서로를 뒷받침해주어야 하는 법.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사냥을 잘하지 못하는 고양이는 입부터 벌리고 본다는 말을 보았습니다. 어쩐지, 장난감을 쫓을 때야 엄청난 힘과 체력으로 민첩하게 달려가지만 막상 앞에 가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앞발로 붙잡은 다음 깨물기부터 하더라니.


 그리고 나서 뒷발로 걷어차는데, 자기가 뭘 잡고 있고 어떻게 제압해야 하는지 알기는 할까요. 그냥 죽어라 살아라 그렇게 하다 보면 사냥 성공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뒷발은 또 얼마나 옹졸하게 움직이는지, 그 움직임을 의태어로 표현한다면 아마 힝냐힝냐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엄숙한 사냥의 시간이니만큼 위엄 있는 말을 붙여 주고 싶어도 도저히 떠오르지를 않아서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한 모디는 꽤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만, 집사들은 대체 저래서 어디다 쓸꼬 하는 표정밖에는 지어 줄 수가 없습니다. 누가 봐도 최악의 사냥 기술을 갖고 있으니까요. 더구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앞구르기 뒤구르기 옆구르기까지 하는데, 제 힘을 못 이겨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모디는 놀리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로 바보스럽습니다. 또한 힘을 사용할 때를 차분히 기다릴 정신력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어요. 일단 몇 번 앞발로 장난감을 때려 보다가 분통이 터지면 바로 이빨부터 들이대는 녀석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어렸을 때부터 너무 애지중지한 나머지, 적절한 때를 찾기보다는 힘으로 두들기고 보는 급한 성격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힘만 센 모디를 실컷 놀리면서 집사들도 기분이 좋아지니, 어쩌면 모디가 사냥 기술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더 좋다고 해야 할지도요.




 때로는 사냥 놀이를 함께하기가 귀찮기도 하고, 모디가 잘 반응을 하지 않을 때도 있어서 김이 새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일 조금이라도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책임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늘 자식들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부모님들에 비하면 제가 하는 사냥 놀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 오늘도 집에 가면 또 재미나게, 최선을 다해 모디와 놀아 줘야겠습니다.


사냥 후 자는 잠은 몹시도 꿀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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