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인형 가지고 노는 아저씨
어렸을 적에 동생과 봉제인형을 가지고 놀면 늘 각자에게 하나하나 성격을 부여해서 이야기를 만들고는 했습니다. 발이 커다란 강아지 인형, 당근을 들고 있는 토끼 인형, 흰 털을 가진 강아지 인형, 부엉이, 하마, 곰, 돼지…. 아무튼 성격에 따라 이야기와 배경은 매번 달라지고 재미있게 놀 수 있었지만 인형들이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놀이를 할 때뿐이었지요. 놀이가 끝나서 부여한 성격들이 의미가 없어지면 그저 말없는 털뭉치들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나름대로 하나하나 살아 있는 것처럼 대해 주었고, 저는 여전히 봉제인형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한때는 제 집을 갖게 되면 거대한 인형부터 작은 인형까지 종류별로 사 모아 놓을 생각이었답니다. 부드러운 털뭉치를 잔뜩 놓으면 마음도 편안해질 것 같았으니까요. 물론 관리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고 포기했지만, 인형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요. 가끔 값싼 인형들을 사 오기도 했고, 몇 년 전에는 쿨쿨 자고 있는 개미핥기 인형을 갖고 있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집에 봉제인형을 들여놓으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인형이 제 발로 들어왔거든요.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인형들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인형이지요. 질투가 많은 인형은 가엾은 개미핥기를 물어뜯어서 안에 있는 솜을 전부 끄집어냈고, 결국 그것이 제 마지막 봉제인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새로 들어온 인형이 워낙 귀엽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소통과 교감이 조금은 가능하다는 점에서 잠만 자는 개미핥기보다 여러모로 낫더군요. 비록 나쁘기는 하지만 스스로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제가 억지로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는 점도 좋았지요. 중요한 점은 어떻게 이 인형을 가지고 놀 것인지인데, 조금만 신경을 쓰면 아주 다채로운 방법으로 인형놀이를 해볼 수 있습니다. 모디는 그 어떤 인형보다도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인형이니까요.
귀를 가지고 하는 놀이는 일명 마법사 놀이라고 합니다. 일단 모디가 배불리 간식을 먹은 다음, 제 배 위에 올라와서 고롱고롱 소리를 낼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손을 뒤통수 쪽으로 해서 모디의 귀를 안쪽으로 모으면 고양이가 한순간에 토끼로 바뀌는 마법을 볼 수 있지요. 이때 토끼!라고 주문을 외워 주어야 한답니다. 다음으로는 스코티시 폴드! 라고 외치면서 양쪽 귀를 앞으로 접어 주는데, 일명 코리안 숏헤어 종인 모디는 갑자기 스코티시 폴드라는, 바다 건너의 귀가 접힌 종으로 변해 버린답니다. 국적과 유전자를 뛰어넘는 마법이로군요. 반만 접으면서 스코티시 폴! 이라고 잘못 외치면 마법이 잘못 걸린 것이랍니다. 반만 접히면 모디가 배는 더 바보처럼 보이는 부작용이 생기니까요. 주문은 늘 끝까지 잘 외워 주도록 합시다. 귀를 양 손가락으로 흔들어 주면서 마법을 부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때는 카라칼! 이라는 주문을 외워야 하는데, 집에서 퍼질러 잠만 자던 모디는 야생의 위풍당당하고 훨씬 강한 고양잇과 생물로 변하게 됩니다. 일종의 강화 주문이라고나 할까요. 마지막으로 귀를 양손으로 잡아 감춘 다음 귀 없다! 하고 주문을 외우면 됩니다. 물체를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이지요. 보통 모디의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하는 놀이라서 그런지 매일 한 번쯤은 꼭 해볼 수 있습니다. 다른 마법들도 시도해 보려고는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중입니다만 잘 떠오르지 않는군요. 서른 넘은 아저씨의 내재된 창의력을 끌어내기 좋은 놀이인 것 같습니다.
모디는 기관총이 될 수도 있답니다. 모디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고 상반신을 끌어올린 후에, 두 앞다리가 마치 총인 것처럼 상상을 하면 되지요. 두두두두두두두 소리를 내면서 모디를 흔들어 주는데 그러면 모디의 뱃살이 출렁출렁 흔들리면서 정말 총의 반동처럼 느껴진답니다. 물론 그 반동을 체험하는 것은 모디총을 쏘는 집사들이 아니라 모디 자신이겠지만요. 재장전을 할 때에는 모디의 머리를 위로 쓸어 올리면서 찰카닥 소리를 내주면 끝입니다. 하지만 이 놀이는 모디가 싫어해서 겨드랑이 밑에 들어가 있는 손을 필사적으로 깨물거나 뒷발을 힘껏 들어 올려 걷어차려고 하니 너무 오래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쭉쭉이 놀이야말로 고양이의 유연성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수단입니다. 쭉쭉이 놀이는 모디가 사냥 놀이에 푹 빠져 있을 때에만 해볼 수 있는데, 정확한 시점에 시도해야 하기에 노련한 집사들에게만 허락되어 있습니다. 한창 뛰어놀던 모디의 얼굴과 어깨 쪽에 장난감을 부비적거리면 누운 채로 앞다리를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면서 장난감을 붙잡으려고 난리를 치지요. 처음에는 아직 장난감을 완벽하게 제압하기보다는 양발로 타격을 하는 데에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이때 쭉쭉이를 시도했다가는 큰일이 납니다. 두 번째로 부비적거리면 모디는 앞발을 구부려 장난감을 꽉 붙잡고 이빨로 깨물게 되는데, 모디가 얼마나 강하게 붙잡고 깨무는지를 알려면 집사의 역량을 발휘해서 장난감 손잡이로 전달되는 힘을 잘 가늠해야만 합니다.
적당한 시점이 되었다고 느껴지면 바로 뒷다리를 손으로 잡고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앞뒤로 왔다갔다하도록 만들면 됩니다. 저는 보통 쭉쭉이 쭉쭉 쭉쭉이 쭉쭉 쭉쭉이 쭉쭉쭉 하고 노래를 덧붙이는데, 강-약-중강-약-강-중강의 순서로 뒷다리를 움직이고 마지막 쭉은 강한 세기로 뒷다리를 길게 늘여 주지요. 모디는 정신이 팔려서 뒷다리가 희롱당하는데도 장난감만을 공략하기에 두 번 정도는 쭉쭉이를 해볼 수 있답니다. 세 번째부터는 정신을 차리고 바로 응징을 가하니 조심해야 합니다. 뱃살이 전부 드러나니 제가 쭉쭉이를 하면 동거인은 뱃살을 만질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당연하게도 너무 세게 해서는 안 되며, 뒷다리를 잡는 위치도 잘 설정해야 합니다. 모디가 아무리 유연하다지만 고무고무 열매를 먹은 것은 아니니까요. 지나치게 뒷발과 가까운 곳을 잡으면 관절을 다칠 수 있으니 뒷다리가 구부러지는 부분을 조심스럽게 잡고, 적당히 부드럽게 해 줘야 모디가 다치지 않겠지요.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릴 놀이는 스핑크스 대마왕 퀘스트입니다. 털복숭이 모디가 웅크리고 앉으면 그 모양새가 마치 스핑크스와도 같습니다. 신화에서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에게 목소리는 같지만 아침에는 네 개, 점심에는 두 개, 저녁에는 세 개의 다리를 가진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랬는데, 해결에 심오한 고찰을 필요로 하는 이 수수께끼를 모디가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스핑크스 모디는 아침에는 네 개, 점심에는 두 개, 저녁에는 세 개의 간식을 내놓아라! 더 주면 좋고! 이렇게 요구할 테지요. 테베를 드나들었던 사람들은 간식만 충분히 준비했다면 성문 앞에 웅크리고 있는 모디에게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이디푸스도 딱히 왕으로 추대될 만한 이유가 없어서 그저 지나가던 시민 1 정도가 되었을 테고, 우리가 아는 이야기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겠지요.
어쨌든 스핑크스 대마왕 퀘스트를 실행하려면 일단 모디가 웅크린 자세나 식빵 자세를 취해야 하고, 모디의 궁둥이 쪽에 제 얼굴을 놓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상태를 만들면 저는 스핑크스가 냈다는 날카롭고 새된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간식을 요구하고 동거인은 싫다, 간식을 주지 않을 테다, 여기서 더 살찌고 싶냐 이런 식으로 면박을 줍니다. 그리면 저는 모디를 붙잡고 동거인 앞으로 데리고 가서 고얀 것! 무례한 것! 하찮은 인간 주제에! 라고 말하며 모디의 앞발로 동거인을 툭툭 건드려 줍니다.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놀이에 참여하게 된 모디가 질색하면서 침대 밑으로 내려가면 놀이는 그제야 끝나지요. 저것들이 또 난리네 하는 표정을 짓는 모디를 보면서 낄낄 웃는 것이 사실상 이 놀이의 진정한 목적이랍니다. 막상 간식을 꺼내 들면 모디는 눈이 뒤집혀 버리기에 이런 상황을 만들 시간 자체가 없으니까요. 스핑크스 대마왕 퀘스트는, 평소에 뜸들이지 않고 간식을 주는 데에 대한 작은 보상 정도로 생각하고 있답니다. 모디가 너무 잘 쉬고 있을 때에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규칙도 지켜 주어야 하고요.
워낙 반응이 격하다 보니 놀려 주는 맛이 있어서, 모디와는 이외에도 수많은 인형놀이를 합니다. 털 반대로 쓸기, 아이돌 안무 따라해 보기 등등이 포함되지요.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이토록 재미있게 놀 수 있다니, 모디와 하는 인형놀이는 어렸을 적에 했던 어떤 인형놀이보다도 저를 즐겁게 해 줍니다. 하지만 실제 인형들에게 성격이나 인격이 없었음에도 하나하나 잘 관리해 주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는데, 확실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모디가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인형놀이를 하면 안 되겠지요. 매일 제 품에 안겨서 징징거리고 고롱거리는 모디를 보면 아직까지는 기억에 새겨질 정도로 화가 나지는 않은 모양이니, 앞으로도 인형놀이는 가끔씩만 빠르게 하고 끝내는 방향을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음까지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이 성질 더럽고 귀여운 인형과 언제까지고 재미있게 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