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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Jun 17. 2023

춥춥이

언제쯤 아기에서 벗어날는지 쯧쯧


 모디님께서는 춥춥이라는 일과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수행하십니다. 바쁘신 몸이지만 춥춥이를 하지 않고서는 뭔가 개운하지 못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느낌을 받으셔서일까요. 춥춥이가 무엇인고 하니, 몸을 동글동글 말고 자기 꼬리를 입에 문 채 춥춥춥춥 소리를 내며 빠는 행동을 말합니다. 물론 고양이들마다 다르겠습니다만, 아는 형네 고양이 역시 꼬리를 사용하는 것을 보니 고양이들도 모두들 어느 정도의 비슷함은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춥춥이를 매일 반복하는 모디는 하루하루를 완전히 새로운 날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과 밤에 두 번 춥춥이를 하는데, 매일 똑같이 이 일에 일정 시간을 투자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에 강박 따위는 없어 보이니까요. 같은 행위를 어제도 했고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한다면, 사람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일에 어느 정도 무뎌지거나 질리기 마련입니다. 그와 다르게 항상 열정적으로 춥춥이에 임하는 모디는 그저 순간에 충실해 보여서 신기하기만 합니다. 수고로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럴 때만은 기꺼이 감내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요.




 춥춥이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습니다. 모디는 침대 위에 있다가 바로 춥춥이를 하러 제 다리 위로 올라오지 않고, 별 일도 없으면서 일단 침대 밑으로 내려갑니다. 집사들이 무엄하게도 잠을 깨우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출출해서 사료를 우적거리려고 할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요. 스크래처 위에서 괜히 기지개를 좀 켠다거나, 창문 밖을 보려고 한다거나, 침대 밑을 들쑤셔 본다거나 하면서 딴청을 피웁니다. 아니면 처음부터 스크래처 위에서 자다가 춥춥이할 시간이네 하며 올라오는 경우도 있지요. 침대로 올라올 때에는 아주 가볍고 날렵하게 뜁니다. 저 뚱뚱한 몸에서 어찌 저런 가벼움이 나올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부시럭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휭 날아올라 이불 위에 안착합니다.


 침대에 올라오기 전에는 무야앙 하는 소리를 내는데, 집사와 놀고 싶어서 내는 소리보다 훨씬 가늘고 중간에 한 번 꺾임이 있습니다. 때로는 올라옴과 동시에 무야앙 하는 바람에 마지막 앙 부분에서는 소리가 줄어들어 무야윽 하기도 합니다. 자랑스럽게 침대에 뛰어오르고 나면 고롱고롱 소리를 내기 시작하지요. 그리고는 미야앙 냐악 우르륵 이런 소리들을 고롱고롱 소리와 함께 내는데, 아주 다급해 보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다급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지는 않은지 집사의 무릎에 머리를 부비적거리거나 팔에 부딪히면서 주위를 돌아다닙니다. 침대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지요. 꼭 이불 더미를 한 바퀴 돌거나 동거인을 밟거나 하는데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 일이면 저럴까요.


집사야 나 춥춥이 하고 싶은데 올라가도 되냐.


 안아 올려서 다리 위에 놓아 주면 손가락, 팔, 심지어는 팔꿈치 살까지 깨물면서 이번엔 제 쪽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해 줍니다. 혹은 제 배를 깔아뭉갠다든지, 다리로 만든 울타리에 궁둥이만 넣고 주변을 휘휘 둘러본다든지 하는 이상한 행동들을 합니다. 완벽하게 안전한 상태를 만들어 놓고 싶은가 봅니다. 사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지요.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집사 위에 올라온 모디는 길게 늘어져서 마지막으로 집사의 상태를 살핍니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면 바로 일어나서 가 버리거나 침대 위 아무 곳에 눕는데, 몹시 실망했다는 눈빛으로 와앙 울거나 한숨을 푹 쉽니다. 불쌍한 동거인을 또 밟고 내려가는 경우도 있지요. 그래도 스스로의 강력한 의지로 올라온 몇 안 되는 경우이기 때문에 보통은 허탕을 치는 일 없이 춥춥이를 시작합니다.




 어렸을 때는 알아서 자세를 잡고 춥춥이를 했지만, 요즘에는 살이 쪄서 몸을 말려면 제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있어도 두 허벅지 위에서 춥춥이가 가능할 정도로 작았던 그때가 그리워지는군요. 지금은 양반다리를 해도 살집이 밖으로 넘쳐날 지경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몸을 동글동글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왼손으로 겨드랑이를, 오른손으로는 궁둥이를 받치고 두 손을 교차시켜 궁둥이가 왼쪽에 가도록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극도로 조심스럽게, 마치 신생아를 대하듯 움직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리 위에 안착시켰을 때 행여나 뒷다리가 제 다리 사이에 끼어 있어서도 안 되고요. 모디는 반드시 완벽하게 옆으로, 네 다리가 전부 편안한 채로 누운 상태여야 하지요. 불편해서 도망치는 동시에 뒷발차기라도 하게 되면, 뒷발이 닿는 위치가 위치인지라 남자로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맛보아야만 하거든요. 궁둥이를 들어 꼬리를 머리 쪽으로 밀어 주면, 그제서야 끙끙거리며 입에 꼬리를 넣습니다. 이때 말린 몸이 뱃살 때문에 풀리면 꼬리가 입에서 빠져나가서 신경질을 부릴 것이 뻔하니 최대한 궁둥이와 꼬리가 연결되는 부분을 왼손으로 잘 받치고 있어야 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되지요.


아기 시절에는 포갠 두 다리 위에서도 춥춥이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춥춥이를 시작한 모디는 그야말로 온 정신을 쏟습니다. 뱃살을 쿡쿡 찔러도, 귀를 만져도, 쓰다듬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춥춥이만 합니다. 자기 뱃살의 부피를 못 견뎌서 꼬리가 빠져나갈라치면 다시 붙잡기 위해 움직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상태 그대로 움직이지 않아요. 그러다 보면 제 오른쪽 허벅지에 있던 머리가 왼쪽 허벅지까지 가 있기도 합니다만, 강한 집중력만큼은 잃지 않습니다. 그것을 집사가 시간을 내 놀아 줄 때 쓰면 얼마나 좋을까요. 놀 때는 늘 신경을 끌어모으기 위해 온갖 난리를 부려야 겨우 사냥 놀이를 시작하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모디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면 이 집중력을 적절히 분산할 줄도 압니다. 신기하게도 모디는 춥춥이를 할 때만 꾹꾹이를 하는데, 결코 다른 경우에 꾹꾹이를 해주는 경우는 없고 오로지 춥춥이 삼매경에 빠져 있어야만 꾹꾹이를 받을 수 있지요. 기분이 아주 좋으니 고롱고롱 소리도 내셔야 합니다. 하루 중 들을 수 있는 고롱고롱 중 가장 우렁차고 깊이가 있답니다. 춥춥이에만 빠져 있느라 다른 것은 챙기지 못할 법도 하지만 고롱고롱, 춥춥춥, 꾹꾹꾹을 한꺼번에 하는 것을 보면 참 나름대로 용한 재주라는 생각이 듭니다.

 

 흔치는 않은 일이지만 모디가 가끔 몸을 살짝 뒤집어 놓고 춥춥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혀가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모습과 작은 아랫니를 볼 수 있답니다. 사납게 생긴 송곳니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잘 인식이 되지 않지만 고양이의 앞이빨들은 아주 가지런히 늘어서 있고 몹시 하찮게 생겼지요. 혀는 또 어찌나 그리 부산스럽게 움직이는지. 모디의 혀는 가시투성이인데, 자기 꼬리를 그렇게 물고 혀를 움직이면 꼬리가 아프지는 않은지 궁금합니다. 저를 핥아 줄 때에는 껍질 벗겨지겠다는 걱정이 들 정도로 따가운데 말이지요.




 잠시도 쉬지 않고 무려 10분 가량의 춥춥이를 끝내면, 모디는 힘든 하루를 비로소 끝마쳤다는 듯이 후루루룩 하고 큰 한숨을 쉽니다. 그리고 짭짭거리며 입맛도 다시고, 꾹꾹이하느라 앞뒤로 움직였던 앞발도 핥지요. 입 쪽으로 내내 당겨 놓고 있어서 뻐근할 꼬리도 축 늘어뜨린 다음 몇 번 탁탁 쳐서 풀어 준답니다. 때로는 그러다가 그대로 몸을 푹 기대고 잠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꼬리 끝은 다음날 아침까지도 푹 젖어 있습니다. 나중에 춥춥이가 엄마를 찾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들은 뒤에는 측은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지요.


 비록 몸은 커졌고 성질도 더러워졌으며 게으르기 짝이 없지만 지금까지도 춥춥이를 매일 거르지 않으니, 조금 이상하게 생기고 털도 꼬리도 없지만 저는 여전히 엄마고양이인 모양입니다. 아저씨의 몸을 한 아기인 모디를 보면 측은함과 걱정은 날이 갈수록 더하기만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 나이 먹고 아직도 아기처럼 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숨이 나오기도 하지만요. 모디와 헤어지는 그날까지도 춥춥이를 잘 받아 주려면 여러모로 저도 노력을 많이 해야겠습니다. 모디가 깔아뭉개는 다리를 강화하기 위해 운동도 좀 하고, 춥춥이 시간에는 침대에 자세를 잘 잡고 미리 대기하고, 무엇보다도 되도록이면 하루라도 모디와 떨어져 있는 날이 없도록 해야겠지요.


춥춥이가 끝났으니 잠을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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