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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Dec 18. 2023

에필로그

시작을 위하여


 드디어 <본업은 화가입니다만>을 끝내려 합니다. 이 글들을 쓰게 된 연유는, 이 즈음이 하나의 분기점이 되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확실히 정리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앞으로도 한동안은 쓸데없이 계속 갈팡질팡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어려운 이야기들이었고, 생소한 이야기들이었기에 누군가가 읽어 주기를 바란다기보다는 제가 돌이켜 읽기 위해서 쓴 글들에 가깝습니다. 누군가는 읽어 주실 것이 분명하니 정말 복잡한 이야기들은 추려 냈습니다만, 주제가 주제인지라 제대로 되지는 못했고요.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털어낸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앞으로 제가 작업에 관련된 글을 이렇게까지 길게 쓰는 일은 없을 것이고, 글보다는 그림을 보여줄 기회가 더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화가로서 진정 원하는 바이지요.


 제가 사용하는 재료들부터 시작해서 작업이 마땅히 갖추고 있어야 할 정당성들, 겪었던 수많은 실패들 등을 죽 써 보니 10년 세월이 완전 적자는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동안 단 한순간도 다른 꿈을 가져본 적이 없고, 단 한순간도 최종 목표가 달라진 적도 없습니다.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시간을 그렇게 하나의 가치에 투자하며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지요.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이런 삶에 큰 변화는 없을 듯합니다. 잠시의 휴식기가 끝나면 또 다시 물감과 캔버스와 씨름하는 삶을 살 예정입니다. 나중에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서도 행운의 연속이었다고 씩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께 화가는 어떤 사람이라고,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알려드리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저 이외에도 수많은 화가가 있고 모두가 각자만의 방법으로 작업을 하며, 회화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 또한 무궁무진합니다. 화가가 아닌 미술 종사자들은 훨씬 많고 그들의 삶의 모습은 더욱 다양하지요. 이 글에는 그저 제가 어떻게 그림을 그려 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그려 갈 것인지만이 쓰여 있고, 그 과정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는지가 드러나 있을 뿐이랍니다. 저를 통해 미술 전체가 일반화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요. 여러분이 글을 다 읽으셨을 때, ‘이런 화가도 있다’는 감상 정도만 남는다면 저는 아주 감사하고 다행스럽게 여길 수 있겠습니다.


 힘겹게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예술가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나 여전히 빚을 지면서, 밥을 굶으면서, 재료가 없어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인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아무도 이 길을 선택하라고 종용하지 않았기에 책임은 스스로 져야만 하고, 다들 그렇게 시련을 감내하면서도 작업을 합니다. 여러분께 부탁드리는 것은 그저 약간의 관심, 그런 이들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가끔 떠올리고 기웃거리는 정도의 관심입니다. 그 작은 관심이 예술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으로 변하는지, 이 글을 통해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하등 쓸모없는 일일지라도, 관심이 있는 누군가에게는 큰 가치로 변한다는 것을요.



 그림 하나 첨부되어 있지 않은 화가의 글을 읽어 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러분만의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시간들로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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