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보다 기억에서 더 많은 기쁨을 찾는 일상
2024년 6월 24일, 프랑스 니스 여행 3일째
니스역에서 샤갈 박물관 표지판을 따라 20분 정도 걷다 보면 골목이 있는 언덕길에 올라서게 된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는 길에 가방 검사를 마치면 올리브 나무가 가득한 정원이 있는 샤갈 박물관에 들어선다.
나는 여기저기 뭉클거리는 그리움이 느껴지는 샤갈의 그림을 좋아한다. 화면의 왼쪽에는 눈망울이 그렁그렁한 염소가, 오른쪽에는 샤갈의 초록색 얼굴이 있는 샤갈의 대표작 ‘나와 마을’을 보고 싶었다. 아마도 나만의 애뜻한 무엇인가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보고 싶은 그의 대표작 ‘나와 마을’은 여기 샤갈 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었다.
러시아 출생인 유대인 샤갈은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외로움과 스트레스, 꿈과 그리움, 사랑과 낭만, 환희와 슬픔 등을 눈부신 색채로 풀어낸 듯하다.
샤갈은 첫 번째 부인 벨라루스가 세상을 떠난 후반기에는 성서와 관련된 종교성 짙은 작품들을 그렸다. 샤갈 박물관에는 이런 성서 관련된 그림이 많았다.
그는 부인 벨라의 묘비명에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이다. 평생토록 그녀는 나의 그림이었다.”라고 새겼다고 한다. 사랑은 그의 그림과 색의 키워드였다.
그렇게 그의 사랑은 중력마저 거슬러 하늘을 나는 연인으로 탄생한다.
샤갈이 사랑한 마을로 더 많이 알려진 생폴 드 방스를 찾아갔다.
마을버스로 30분을 굽이굽이 올라가면 마주할 수 있다.
샤갈이 마지막 20년을 여기서 살았고, 마지막에 그곳에 묻혔다.
중세마을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다고 하는 성안에 그의 무덤이 있다.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며 돌을 얹어 놓 있다. 나도 돌 하나를 올려 놓았다.
동화속 미로 같은 마을,
마을의 좁은 골목길은 갤러리, 보석가게, 옷가게, 향수가게 등이 가득하고, 진열된 상품들은 골목길의 풍경이 된다.
찾아온 손님들이 많지만 왠지 발소리마저 조심스럽다.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산골 마을을 내려다보며 점심을 먹고 골목길을 서너시간 조용조용 걷다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사랑을 표현하고 확인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샤갈 박물관을 나와 니스역에서 기차를 타고 모나코로 향했다. 은막의 스타 그레이스 켈리와 모나코 왕세자 레이나 3세의 전쟁 같은 사랑과 삶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는 자그마한 나라, 분내 나는 모나코.
기차역에서 벗어나 몬테카를로 가는 길에서 마주한 모나코의 부유함에 살짝 흥분했다. 그러나 잠시 ‘와~’하던 흥분은 채 1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왕궁이 있는 한적한 언덕으로 도망치듯 가서야 숨을 편하게 쉴 수 있었다.
F1 경주대회, 세계 3대 카지노 중 하나인 몬테카를로에서 바라보면 성인지 요새인지 구분이 안 되는 언덕에 모나코 왕궁이 있다. 왕궁 언덕에 올라가면 모나코 전체를 조망할 수 있으며 그레이스 켈리와 모나코 왕세자 레이나 3세가 결혼했다는 성당과 공공기관, 잘 정돈된 상점들이 구석구석에 있다.
모나코를 여행하다 보면 그레이스 켈리와 관련이 있는 안내판과 장소를 자주 보게 된다. 오늘날 전 세계 여성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에르메스 켈리백은 바로 ‘그레이스 켈리’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예쁘길래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에 ‘그레이스 켈리’를 검색해 보니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때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한 분이 초록색 원피스에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 외출하는 모습이 보였다. 거리는 온통 명품 상점들로 가득하다.
그레이스 켈리는 화려하고 아름다웠지만 조금씩 ‘나’가 사라지는 현실에서 외로웠다. 그렇게 외로움과 사랑, 헌신과 책임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다 그녀는 52세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톨스토이의 질문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2024년 6월 24일, 프랑스 니스에서>
오늘 나는 같은 질문을 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