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봄, 함께였던 당신 – 박지현 선생님 이야기

새로운 시작 앞에서, 마음이 닿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

by sweetmilk

1학년을 처음 맡게 되었던 해, 나는 낯선 긴장감 속에 서 있었다.
고학년을 주로 맡아오다 처음으로 맡은 1학년, 그것도 학년부장의 역할까지 겹쳐 맡게 되니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졌다. 학급은 여섯 반, 학년은 제법 컸고, 나는 매일 마음을 다잡으며 교실에 들어섰다.

다행히 함께하게 된 동학년 선생님들은 모두 친절하고 따뜻한 분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오히려 더 잘하고 싶었다. 내 역할만큼은, 실수 없이 해내고 싶었다.


그 무렵, 내게 뜻밖의 선물 같은 사람이 찾아왔다.

이름은 박지현 선생님.
당시 26살, 아직 정식 발령 전이었지만, 1년간 기초교육 협력강사로 우리 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기초학습을 도와주고, 동시에 임용고시도 준비하는 시기였다. 바쁜 하루하루였을 텐데, 지현쌤은 놀랄 만큼 성실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선생님, 도와드릴 일 없을까요?”
그 말은 마치 인사처럼 지현쌤 입에 늘 붙어 있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난 오후,
아이들이 떠난 내 교실은 연필 부스러기, 색종이 조각, 지우개 가루로 어수선했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공문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조용히 문이 열리더니 지현쌤이 들어와 아무 말 없이 청소도구함에서 빗자루를 꺼냈다. 그리고는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말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에요, 지현쌤. 이런 건 제가 할게요!!”

그러자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이것만 얼른 할게요~! 진짜 금방 해요!”

나는 웃으며 다시 말했다.
“안 돼요! 이러다 저 악덕 부장으로 소문나요!”

그러자 지현쌤이 쓱 눈을 피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럼... 게시판 꾸미는 건 제가 조금 도와드려도 될까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찡했다.
이렇게 먼저 다가와주는 사람이, 흔치 않다.
선생님들도 각자의 교실을 돌보고, 아이들과 씨름하며 하루를 가득 채운다.
서로 도와야 한다는 마음은 있지만, 현실은 늘 팍팍하고 시간은 부족하다.
그런데도, 말없이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라니.


방학 전, 연구실을 정리하려고 가보았을 때도 그랬다.
전기를 끄기 전에 냉장고를 비우고, 학습 준비물들을 다시 정리하는 일이 남아 있었는데—
그곳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냉장고 속도, 쓰레기통도.
지현쌤이었다. 임용고시 공부하느라 바빴을 텐데..

늘 자기 몫 이상의 일을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 시절 자꾸 떠오르던 노래가 있었다. 박진영의 ‘어머님이 누구니’.

“어머님이 누구니~ 도대체 어떻게 너를 이렇게 키우셨니”

그 가사가 머릿속을 맴돌곤 했다.


그해 겨울,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지현쌤이 임용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매일같이 우리를 도와주느라고 공부를 맘껏 못했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해 우리는 1학년 아이들에게 스마일 양말을 기념품으로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

기념 삼아 지현쌤에게도 한 켤레 건넸다.

그런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

지현쌤은 그 양말을 ‘행운의 양말’이라 믿고 실제로 임용시험 날 신고 갔다고 한다.

그건 아이들 발에 맞는 작은 양말이었다.

그 양말을 소중하게 여긴 그 마음이, 참 예뻤다.

그리고 참 따뜻했다.


발령을 받고 첫 출근을 앞두고,

지현쌤과 나는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긴장되고 설레는, 첫걸음을 앞둔 그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그날 나는 내가 겪었던 작은 시행착오들과 소소한 팁들을 전해주며 마음 가득 응원했다.

지현쌤이, 좋은 교사가 되기를.
아니, 이미 좋은 교사이지만, 상처받지 않고 오래도록 그 따뜻함을 간직하길.

교사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민원이 생기고,

그로 인해 마음이 꺾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아끼고, 스스로 움직이고, 따뜻하게 교실을 돌보는 사람이라면,
결국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오래도록 사랑받게 된다는 걸.


“선생님, 20년만 어려져서 선생님 반에 들어가고 싶어요.”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요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지현쌤과 함께할 아이들은 참 행복하겠다.'


나의 소소한 교직 이야기를 적게 된 이유

교단이라는 작은 세계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첫 발을 내딛고 있는

착하고 성실하고 귀한 선생님들에게 꼭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란다.

따뜻하고 성실한 교사가,
무탈하게, 상처 없이,
즐겁게 그 길을 걸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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