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은 설명이 아니라, 경험이어야 한다.
1학년 수학 시간, 숫자 세기를 배우는 날이었다.
책상 위에 펼쳐진 교과서 대신, 교실 한쪽에 있던 숫자 콘과 숫자 발판이 하나둘 꺼내졌다.
놀이 시간에 자주 보던 도구들이다.
기대 반, 의아함 반. 조용하던 교실이 순식간에 생기로 가득 찼다. 조별로 숫자 콘이 나눠지자, 아이들은 들뜬 표정으로 주변 친구들과 눈을 맞춘다. 누가 먼저 움직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손이 가고 몸이 움직인다.
각자 마음대로 숫자 콘을 옮기며 순서를 섞고, 친구들과 함께 퍼즐처럼 숫자를 순서대로 줄지어 맞춰 본다.
“이번에는 발판에 적힌 1부터 10까지의 숫자를 순서대로 점프해 볼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숫자 발판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하나, 둘, 셋… 열까지 정확히 순서를 외치며 점프하는 아이도 있고, 순서가 헷갈려 잠시 멈췄다가 다시 돌아가는 아이도 있다.
그 모습마저도 학습의 일부다.
“이건 5니까 그다음은 6이지!”
“7은 여기 있어! 내가 먼저 간다!”
아이들 사이에 숫자가 오가고, 몸으로 기억되는 수의 흐름이 교실을 가득 채운다.
이 날 배운 숫자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숫자는 책 속 기호가 아니라, 직접 뛰어넘으며 익힌 감각이 되었고, 손으로 짚고 발로 밟으며 기억에 남는 체험이 되었다.
몸으로 익힌 숫자는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는다.
수학의 첫걸음이, 재미와 놀이로 시작되었으니 그 기억은 더욱 특별하다. 그날의 수업은 교과서 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수학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 시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배움이 웃음과 함께할 때, 아이들은 배우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자라고 있다.
웃으며 배우는 수업.
기억은 그런 방식으로 남는다.
6학년 수학 수업, ‘입체도형’을 가르치던 날이었다. 교과서보다 먼저 꺼낸 건, 아이들의 상상력이었다.
“얘들아, 선생님이 손바닥을 이렇게 쫙~ 펴서 동그라미를 그리고, 한가운데를 콕 집어서, 꼬집듯이 올렸어!
자, 이제 그 모양을 머릿속에 그려볼래? 어떤 도형이 됐을까?”
아이들의 시선이 조용히 내 손바닥 위 허공에 머문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
이내 한 아이가 입을 연다.
“원뿔이요!”
“맞았어. 그 원뿔을 지금 예린이에게 건네줄게. 뾰족한 부분이 느껴지니?”
“앗! 따가워요!”
장난스럽게 대답하는 예린이의 말에 아이들이 킥킥 웃는다. 상상은 교실을 서서히 채우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그 원뿔을 굴려볼게. 어떻게 굴러갈까?”
“음… 앞이 뾰족하니까 뱅글뱅글 돌 것 같아요~”
“제자리에서만 맴돌 수도 있어요!”
대답이 겹친다. 각자 머릿속에서 원뿔이 도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다른 도형을 꺼내 든다.
“이번엔 꼬집지 않고, 둥근 밑면을 그냥 쭈욱~ 올려 세워볼게. 이얍!”
기합 소리와 함께, 허공에 커다란 기둥 하나를 세운다.
“그래~ 원기둥! 이걸 굴려볼게~ 교실 끝까지 굴러갈 수 있을까?”
“네! 원기둥은 옆면에 모서리가 없이 굽어있으니까 잘 굴러가요!”
나는 양손으로 무거운 기둥을 옆으로 눕히는 시늉을 하며, 교실 한복판으로 ‘원기둥’을 굴린다.
“얘들아, 원기둥 굴러간다~! 잘 피해야 해~~!”
아이들은 자리에서 점프하고, 발을 의자 위로 올리며 지나가는 상상의 기둥을 피하느라 바쁘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입체도형들이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아이들은 지금, 단순히 ‘도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도형의 성질과 움직임, 질감과 무게까지 함께 느끼고 있다. 그것은 교과서 위 평면 그림으로는 결코 전달할 수 없는 것들이다. 눈앞에 없지만, 마음속에는 또렷하게 입체도형들이 세워지고, 굴러가고, 느껴진다.
수학은 원래 그런 과목이다.
설명보다 경험이,
정의보다 감각이 먼저 와닿는 세계.
그래서 수업은 언제나 이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걸 어떻게 경험하게 할까?”
그날의 교실은 수학 교실이 아니라,
입체 도형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상상 놀이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