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농담이 발표가 되는 순간
5학년 사회 시간, ‘임진왜란’에 대해 배우던 날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우리 반 제일가는 장난꾸러기인 하진이가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오늘 배운 내용 뒷부분을 재현이랑 같이 설민석 역사교실처럼 해봐도 돼요?”
순간 피식 웃음이 났지만, 아이들의 눈빛은 진지했고 동시에 대견한 마음도 들었다.
어떻게 하면 역사 수업을 좀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 왔고, 아이들에게 발표와 표현의 기회를 자주 주는 편이었기 때문에 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좋은 생각이야. 재헌이랑 준비해 와 보렴!”
그 말을 들은 하진이는 눈을 반짝이며 돌아섰고, 교실 뒤편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재헌이도 슬며시 웃었다.
둘은 이미 머릿속으로 계획을 짜고 있는 듯했다.
며칠 뒤, 수업 시간.
하진이와 재헌이가 준비한 발표가 시작될 순간이었다.
두 아이는 나란히 교실 앞으로 나와 당당히 섰다.
그리고는 이런 멘트로 수업을 열었다.
“우리 역사를 사랑하시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사 전문가 전하진, 조재헌입니다!”
순간 교실이 쿡쿡 웃음으로 물들었다.
너무도 익숙한 오프닝 멘트, 아이들의 말투까지 설민석 선생님과 닮아 있었다.
그 뒤를 잇는 설명도 단순한 흉내내기가 아니었다.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핵심을 정확히 짚고 넘어갔고,
친구들의 눈높이에 딱 맞게 구성된 내용은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집중을 단숨에 끌어당겼다.
아이들의 발표는 그야말로 몰입도 100%였다.
듣고 있던 친구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고, 나는 박수를 멈출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우리 반 사회 시간은 변했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맡은 주제를 발표하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응원하며 수업에 더 깊이 참여했다.
어느새 역사 수업은 ‘우리가 만드는 시간’이 되었다.
엉뚱함은 창의성의 씨앗이다.
그 씨앗은,
누군가의 허락과 지지 속에서 움튼다.
안중근 의사의 ‘누가 죄인인가’ 영상을 보여주던 날, 몇몇 아이들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교실은 금세 북적이고 시끌벅적해졌지만, 그 소란스러움이 싫지 않았다.
지적하기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그 순간을 즐겼다. 언뜻 보기엔 수업 흐름이 깨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건 아이들만의 방식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이고, 결코 방해되는 일이 아니다.
엉뚱함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여지는 우리 반에서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역사 시간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이나 사건을 소개할 때면 누구보다 생기 넘쳤다.
어떤 날은 설민석 역사교실을 패러디했고,
어떤 날은 ‘누가 죄인인가’를 개사해 뮤지컬 공연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교실이 조명이 되고, 칠판 앞이 무대가 되는 순간이었다.
“오늘 뮤지컬 공연에서 개사한 부분이 정말 기발했어.”
그 말에 아이들은 쑥스러워하면서도 뿌듯한 얼굴로 자리로 돌아갔다.
그 표정이, 공연보다 더 인상 깊었다.
교사의 말 한마디는, 아이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자리에 앉아. 조용히 하렴.”
“수업에 집중하자.”
“왜 자꾸 딴소리하니?”
그런 말들이 쌓이면, 아이의 말은 ‘장난’으로만 남는다. 그 안에 담겨 있던 창의적인 시도는 사라진다.
“좋은 생각이야. 재헌이랑 재미있게 준비해 보렴!”
그날 내가 건넨 이 짧은 한마디가,
하진이의 눈빛을 바꿨다.
그리고 그날의 발표가, 사회 시간의 분위기를 바꿨다.
엉뚱함으로 혼이 나던 아이가
칭찬 한마디에 창의적인 발표자가 되었다.
혼나는 기억보다, 인정받은 기억이
더 오래간다.
우리는 그 기억을 심어주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