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뒷자리의 아이들

조금씩 가까워지는 마음들

by sweetmilk

3월 첫날, 나는 칠판에 이렇게 적어둔다.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세요.”

자리를 정해주는 학급도 많지만, 나는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준다.

어디에 앉는지를 보면, 그 아이가 지금까지 학교생활을 어떻게 해왔는지, 사람들과의 거리를 어떻게 두고 싶은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자리에 앉는 아이들은 대개 익숙하다.

선생님과의 거리도, 수업이라는 분위기도, 교실이라는 공간도. 눈빛이 선하고 자주 마주친다. 그런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도 곧잘 손을 들고, 쉬는 시간에도 곁에 와서 말을 건넨다.


하지만 내 시선은 자주 교실 뒤쪽으로 간다.

맨 뒷자리, 청소도구와 휴지통이 함께 있는 공간.

언제나 어딘가 조금은 비켜 있는 자리.

그 자리에 앉는 아이들은 대체로 장난기가 많고, 종종 ‘문제아’라는 말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나는 그 아이들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학년이 된 말썽꾸러기들은 그동안의 꾸중과 훈육 속에서 또래 집단과 더 강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자연스레 교사나 학급, 수업과는 심리적인 거리를 두게 된다. 이야기를 걸기보다 서로 어울려 장난치고, 교실보다는 운동장에서 더 생기가 돌며, 축구 같은 활동적인 놀이에 몰두한다.


그런 아이들이 앉는 맨 뒷자리는

교사의 시선에서 가장 멀고, 쉽게 손길이 닿지 않는 공간이다. 그래서 그들과 가까워지려면, 조금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먼저 아이들 곁에 다가가 자연스럽게 앉아 함께 웃고, 어울리고, 그렇게 마음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가는 시간들.


나에게 그 방법 중 하나는 ‘축구’였다.

어릴 때부터 남자 친구들과 공을 차는 걸 좋아했던 나는, 하루 수업을 마치면 조용히 풋살화로 갈아 신고 운동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향해 외친다.

“얘들아, 선생님이랑도 축구 같이하자~!”

아이들은 흔쾌히 나를 자신들의 공간에 끼워준다. 나도 아이들 틈에서 진심으로 축구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드리블 기술을 총동원해 현란하게 움직이고, 골을 넣겠다며 ‘독수리 슛’을 날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이들의 탄성이 터진다.

“우와, 대박! 선생님 축구 잘하신다!”

“크크, 그래도 오늘은 제가 이겼어요!”

“이야, 진짜 너희들 드리블 솜씨는 한 수 위네! 너무 멋지다~!”

“현서는 선생님 볼을 다 막으면 어떻게 해~ 완전 거미손이네!”

나도 아이들이 갈고닦은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진심 어린 칭찬을 보낸다. 서로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면 운동장 스탠드에 나란히 앉아 교무실에서 떠온 얼음물을 함께 나눠 마신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다시 6학년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마치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처럼, 순수하고 웃음 많던 그 여름날로.


그렇게 함께 뛴 시간은 교실 안 공기를 조금씩 바꿔 놓는다. 아이들과 추억을 쌓고 나면, 그들의 눈빛이 달라져 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반짝인다.

마치 나와 너만 아는 유대가 생겼고,
우리만의 이야기가 생겼다는 듯이.

그렇게 늘 맨 뒷자리에 앉던 아이들이 조금씩 앞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럴 땐 조용히 웃으며 말 건넨다.

“오~ 이번엔 앞쪽에 앉는 거야?”

그 아이도 싱긋 웃는다.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짧은 대화지만, 그 안엔 서로를 향한 작은 신호가 담겨 있다. 이제는 교사의 시선이 불편하지 않고, 가까이 있는 것이 익숙해졌다는 신호다. 그럴 때면 작은 안도와 함께,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교사의 역할이란 결국,

아이들이 자기 자리를 스스로 옮길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곁에서 눈을 맞추며 그 변화를 놓치지 않는 일이 아닐까.

그 자리가 앞줄이든, 가운데든, 아이가 마음 놓고 앉을 수 있는 자리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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