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가 아닌 주인으로서 살라는 말 우리는 이 말을 듣는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라고 타인의 기대나 사회의 압박에 휘둘리지 말라고 하지만 정말 우리는 주인인가?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주인의 삶에 종속된 노예다. 주인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우리를 옭아맨다. 성공해야 하고 자립해야 하고 책임져야 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관념 이게 새로운 속박이 된다. 진짜 주인은 주인이라는 개념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주인도 노예도 아니다. 그냥 있다. 역할에 갇히지 않고 정의에 매이지 않고 기대에 종속되지 않는다.
자유로워지라는 말 이것만큼 아이러니한 명령이 또 있을까? 자유로워지라는 것은 명령이고, 명령은 속박이다. 자유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건 이미 자유가 아니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가? 탐욕과 욕망으로부터? 하지만 탐욕과 욕망을 제거한 인간이 가능한가 욕망 없는 삶이 과연 살 만한 가치가 있을까? 탐욕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욕망, 욕망에서 벗어나려는 탐욕, 우리는 이 순환 속에서 끊임없이 맴돈다. 한 속박에서 벗어나려다 다른 속박에 갇힌다.
자유 그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져라. 자유를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이 새로운 감옥이 된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자유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물고기가 물에 대해 의식하지 않듯이 자유를 의식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자유롭지 않다.
이 모든 건 의식의, 논리의 함정, 말장난이다. 말로 풀려는 순간 얽힌다. 개념으로 잡으려는 순간 빠져나간다. 자유를 정의하는 시도 자체가 자유를 죽인다. 하지만 그 내재한 의미는 말장난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표현하려는 시도 개념화할 수 없는 걸 개념화하려는 몸부림 이것이 말장난이다. 그리고 이 말장난의 한계를 아는 순간 우리는 그 너머를 본다.
자유는 개념이 아니다. 자유는 경험이다. 설명할 수 없고 ,정의할 수 없고 가르칠 수 없다. 다만 살아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자유로워지려 하지 마라. 주인이 되려 하지 마라. 그냥 있어라. 말장난을 알아차린 순간, 논리의 감옥에서 벗어난 순간, 자유를 추구하는 걸 멈춘 순간 그때 어쩌면.